Ep.5
고등학교 2학년 때 지리 선생님을 (순수하게) 좋아했다. 선생님은 하얀 피부, 훤칠한 키, 스마트한 인상을 가지셨는데, 언뜻 차가워 보이는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실 때면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 되었다.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우리 반 수업을 맡지 않으셨다. 그저 먼발치에서 선생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구나 싶었지만? 기회가 생겼다. 지리 경시대회에 입상하면 선생님과 함께 지리 올림피아드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날 바로 도서관에 가서 문제가 나온다는 책을 빌렸다. 평소 지리 공부에 소홀했지만 경시 대회에 입상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자 갑자기 지리학과 지망생이 되었다.
결전의 날, 긴장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앞사람이 넘겨주는 시험지를 받아 한 문제 한 문제 풀어갔다. 그리고 느꼈다. 망했구나. 하지만 결과가 나온 날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두가 다 같이 망했구나. 장려상 수상자 마지막에 올라선 내 이름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노력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입시 외에 별다른 걸 꿈꿔본 적 없는 나였기에 이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에 꿈을 이루는 것에 자신이 생겼다. 돈이 없을지언정 꿈은 부족하게 꾸지 말자. 언제나 이루고 싶은 꿈이 가득했고, 그중 가장 큰 꿈은 아메리칸드림이었다. 모두가 유럽 여행을 이야기할 때, 나는 미국 땅 밟아보는 것을 바랐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미국과 아무런 연이 없었기에 그나마 내가 비빌 구석은 교환 학생이었다. 취업을 고민해야 할 시기에도 나는 교환 학생을 중심으로 대학 생활을 계획했다.
계산해 보니 4학년 1학기쯤 갈 수 있었다. 그 시절 가장 큰 꿈이었던 미국 대학의 교환 학생을 위해 나는 3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교환 학생에 필요한 어학 시험을 준비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노력 끝에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였고 미국에서 바라보게 될 하늘과 그 아래에서 펼쳐질 일들로 가슴이 벅찼다. 출국을 한 달 앞둔 시점엔 교환 학생 갈 준비로 바빴다. 함께 갈 사람들을 만나 얼굴도 트고, 중요한 정보를 서로 나누었다. 한 학기 동안 잘 지내보자며 서로 으쌰으쌰 했다. 학교 사이트에 가입해서 학번도 받고, 강의 계획서를 보며 시간표도 고민하다 보니 진짜 가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역시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
하지만 시련은 꼭 이럴 때 찾아온다. 코로나로 시작된 거리 두기는 자영업 생태계를 무너뜨렸고, 우리 집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무거운 얼굴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다. 이후에는 뻔한 이야기이다. 집안이 어려워져 교환 학생 가기가 어려워졌고, 하필 신청했던 장학금도 다 떨어졌다.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돈 몇 천만 원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하나도 없었다. 먼 친척이 갑자기 나타나 도와주겠다는 꿈같은 상황도 바랬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난생처음 노력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니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마치 오랫동안 믿어온 진리에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SNS 피드엔 교환 학생 간 사람들이 보고 있는 하늘, 내가 꿈꿔온 장면이 넘쳐났다. 핸드폰 화면 너머로 보이는 그들은 웃음 가득하고 꿈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방 안에 앉아 그 모습을 엿보고 있는 나 자신은 초라했다. 교환 학생 때문에 일 년 휴학했는데 이제 나는 어쩌지. 갑자기 증발하게 된 일 년이 허무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 새해가 밝았지만 내 삶은 깜깜한 겨울밤처럼 어두웠다.
그 겨울 나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사라졌다. 하는 거라고는 내 상황을 비관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둔지 얼마 됐을까, 문득 20살 때 제출한 에세이가 생각났다. 'pause'라는 제목의 글로, 꿈이 좌절된 상황에서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목적지를 찾는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갑자기 그 글이 궁금해져 노트북을 뒤져 에세이를 찾았다. 첫 페이지를 읽었을 때 닭살이 돋았다. 나름 글을 꽤 쓴다고 자부했는데, 엉망진창인 문장을 보고 있으니 이걸 읽고 평가하셨을 교수님께 죄송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계속해서 글을 읽는데 아까와는 다른 닭살이 돋았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시절의 나는 꽤 커다란 꿈을 갖고 있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경험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단편적인 꿈의 결말로 자신의 끝을 정해 놓지 않은 스무 살의 나는 당시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다. 아마 나는 그런 기대로 그 글을 떠올리고 읽게 되었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글은 꿈을 잃어버린 내게 꿈과 다시 동행할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꿈 때문에 웃기도, 울기도, 화내기도 한다. 꿈이 이뤄진다면 행복하지만, 꿈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망하게 된다. 정말 간절한 꿈이었다면 실망을 넘어 절망과 무력감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백세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 번의 실패에만 집착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 우리에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무한한 기회가 존재하지 않은가! 일 년에 한 가지만 꿈꿔도 100 가지의 꿈을 이룰 수도 있다. 여기에 꿈을 꾸는 횟수를 늘린다면? 매일 밤 눈을 감으면 다른 꿈이 펼쳐지는 것처럼 우리는 수만 가지 꿈을 바라고 이룰 수 있다.
인생은 참으로 얄궂다. 내 삶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부터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로 세상이 하루아침 변한 것처럼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그런 세상과 원활하게 지내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까? 내가 오늘 해야 하는 건 무엇이고,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꿈을 꾼다. 계속해서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는 세상이지만, 그 세상에 주눅 들지 않고 더 많은 꿈으로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