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겠지만 괜찮아질 거야.

by 해림

연기 입시를 준비하던 동생이 허리를 다쳤다.


비 오는 밤이었다. 갑자기 동생에게서 걷지 못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동생의 연락에 온 가족이 혜화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동생이 있는 연습실 문을 열자, 연습실 구석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동생이 보였다.


계속해서 말썽이던 허리가 결국 이 사단을 만들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통증이 심했는데,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큰 투자를 받다 보니 아픔을 참고 지금까지 버텼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걷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나니 동생은 처음으로 진심을 꺼냈다. 그렇게 동생은 연기 입시를 포기하게 되었다.


간절히 바란 무언가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다. 그것도 완전히 내 의지가 아니라 외부적 요인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이 무력해진다. 지금 내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하지만 괜찮지 않을 거다. 점점 입시 기간이 다가오고, 함께 입시를 준비했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마음이 더 힘들어질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가정 형편으로 교환 학생 파견을 포기했다. 출국까지 한 달 정도 남은 시기에 마지막 희망이었던 장학금 마저 떨어지자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장학생 선정이 되지 않았다는 메일에 마음이 쉽게 정리되었다.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꼭 가고 싶으면 어떻게 서든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괜찮다고 말했다. 늘 K-장녀처럼 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막상 나를 위해 이기적 선택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사람들에겐 코로나로 인해 파견이 취소되었다고 말했는데, 굳이 필요 없는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깔끔하게 둘러댈 이유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파견 취소가 확정되고 처음엔 생각보다 마음이 괜찮았다. 그동안 계속되던 걱정과 마음에 쌓아 둔 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지 않아 졌다. 갑자기 사라진 계획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고, SNS로 보게 되는 사람들의 일상에 부러움이 덜컥 밀려왔다. 어둠과 방황의 시간이 겨울을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때 했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후에 장학금을 3번이나 받았고, 공짜로 해외 탐방도 다녀왔다. 이뿐만 아니라 교환 학생을 갔더라면 얻지 못했을 소중한 인연과 경험이 많이 생겼다.




다행히도 백수라(?) 치료를 갔다 온 동생이 점심 먹을 때 옆에 있었다. 밥 먹는 동생에게 솔직히 말했다.


더 힘들어질 거라고. 괜찮지 않을 거라고.


동생은 지금까지 미뤄놨던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를 해야 할 거다. 또 갑자기 사라진 목표로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막막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괜찮아질 것이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오늘의 포기를 만회할만한 일들이 생길 것이다. 그때까지 일단 나아가면 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분간 동생 공부를 봐줄 것 같다. 다시 한번 백수라 다행인 것 같은 순간이다. 어쩌면 하루빨리 취업하는 게 내 앞가림을 위한 선택일 수 있지만, 나는 또 한 번 이기적 선택을 내려놓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보려 한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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