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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1. 2023

삶의 단계를 받아들이기

묵상지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13년 10월 기고문

아프리카 잠베지 강에는 다섯 단계의 급류가 있다. 순차적으로 올 리도 정확한 구간으로 나뉘어 있을 리도 없이 크고 작고 길고 짧게 닥치는 급류들을 넘나드는 래프팅은, 종일 그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겪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노를 젓지 않으면 배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만큼 고요한 구간을 지나 곧바로 ‘악마의 변기’라고 불리는 소용돌이로 뚝 떨어지기도 하고,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은 그 격랑을 빠져나오면 기분 좋게 튜브에 몸을 싣고 흘러갈 만한 물살이 나타나 체력을 비축하게 하기도 한다.


종종 그 잠베지 강을 떠올릴 때가 있다. 특히 임신을 하고 난 후, 선배들이 우리를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때 그렇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겪게 될 것이다!” 


입덧이 지나고, ‘이 정도면 임신 열 번도!’하고 언구럭 떨던 중기, 슬슬 배가 부르며 숨이 차고 체온이 올라 잠을 설치던 후반부까지 열 달 꼬박, 나는 익숙한 내 몸 하나를 예상할 수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임신에 적잖이 당황했다. 언제나 뱃속의 아이를 먼저 생각하며 몸을 사려야 하는 게 점점 답답해졌다. 그러다 태담이랍시고 ‘이것도 너의 운명’이라 배 한 번 쓰다듬고 하던 대로 일을 진행하거나 약속을 잡으면 곧바로 몸에 탈이 났다. 물론 그 전에, 한층 질겨진(?) 운명공동체의 한 축인 장군이 적극 나를 제어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선배들은 다시 회심의 미소를 보였다. “힘들지? 그런데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할 때야!” 그러면 다시 잠베지 강이 떠올랐다. 우리 앞에 놓인 저 급류는 과연 어떤 단계란 말인가!


진학, 취업, 결혼 등 인생의 모든 시기가 예측불가능한 성질을 지녔지만, 부모가 되는 것만큼 ‘닥쳐 봐야 아는’ 일이 또 있을까. 어떤 아이가 태어날 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할 지, 그 동안 무심히 해 왔던 일들 중 무엇을 지속할 수 있고 없게 될 지 어느 것도 짐작하기 어렵다. 짧게는 시간과 관심과 체력의 안배를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시절의 시작, 길게는 세상 끝까지 결코 끊을 수 없는 새로운 관계, 새 여정의 시작. 익사 위험 없이 이 급류를 탈 줄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러다 문득, 래프팅 내내 숙련된 조교들과 구조 요원들이 옆에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예측 못한 격랑에 휘말려 허우적댈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고집을 부리다 보트가 뒤집혀 물 먹는 순간에 옆에서 손을 내밀어 주었던 사람들. 삶도 마찬가지이리라. 누구도 대신해 줄 수는 없으나, 그래도 앞서 그 파도를 지난 선배들과 진심 어린 공동체의 지지와 돌봄이, 다양한 인생의 급류를 보다 잘 겪도록 단련시켜 주지 않던가.


가까운 믿음의 선배들은 새로운 급류 앞에 선 우리에게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살떨리게 멋진 꿈과 계획도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기본적 라이프사이클 안에서 도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정하는 중이다. 시간이 없는 듯해 조바심 나는 건 이 쪽의 사정일 뿐, 영원을 소유하신 하나님은 당최 급하실 게 없으니  ‘당장 하지 못하는 일들’에 성마르게 굴어봤자 물살에 휘말려 꿀꺽꿀꺽 물만 먹게 되리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이 인생과 세상의 주인 되심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이 부모됨의 맨 첫 장임을 배우고 있다.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믿음으로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삶의 매 단계 앞에 선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태도임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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