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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01. 2023

밥벌이, 주께 하듯 하라

묵상지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13년 11월 기고문

“교회에서 어떤지? 다 헛 거야. 밥벌이하며 보는 모습이 진짜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돈을 어떻게 다루는지, 약속을 어떻게 지키는지.”


다소 시니컬하게 그가 말했다. 십 년이 넘도록 동네에서 공부방을 해 온 친구는 온갖 종류의 학부모를 만나며 인간 군상에 통달한 듯했다. 하필 게 중엔 교회 분들이 워낙 많았고, 한국 사회에서 결국 자기 욕망과 본심을 숨기기 어려워지는 데가 자식 공부 문제라니, 공부방 선생에게 들킨 권사님 집사님의 속내는 좀 더 적나라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돈이 얽히면 종종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몇 개월씩 수강료를 내지 않는 이들, 그 중 거의 일 년을 기다린 한 집사님께 어려운 재정 상황 설명과 함께 다음 달부터는 강습이 어렵겠다 편지를 보내자 구역 모임에서 울며 불며 편지를 공개했다는 이야기, 몇 달 만에 수강료를 주겠다며 “한꺼번에 줄 테니 얼마로 하자, 선생님도 양보해라” 하고 터무니 없이 돈을 깎던 장로님의 얘기는 듣는 사람의 분통이 다 터졌다. 


같은 사람에 대해 공동체 안에서 보는 모습과 일터에서 보는 모습이 달라 느끼는 실망에 대해 종종 듣곤 한다. 별로 치사할 것도 더러울 것도 없는 공동체 관계 속에서와 매일이 지난한 밥벌이 전쟁 속에서 드러나는 ‘나’는 같은 사람임에도 오묘히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다양한 대의와 소명을 발견하기에 앞서 결국 일의 본질적인 목적은 ‘매일의 양식’을 채워 주시는 데 있고, 그건 사람에게 가장 첨예하고 원초적인 이해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다시 밥벌이에 전념하며 여름을 보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절반쯤 마치자 함께 일하는 선배에 대해 묘한 마음이 생겼다. (만삭인!) 내가 일을 조금씩 더 많이 하고 있으니, 아직 확정하지 않은 사례를 내 쪽으로 좀 더 가져오고 싶은 욕심이 은근히 끼어드는 거였다. 선배가 없었으면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일이므로 무조건 반씩 나누겠다는 애초의 당연한 마음이 흔들리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내 파트너에 대한 고마움이 땡볕 아래 드라이아이스처럼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불평과 피로가 늘었다.


다행히 그 주일 골로새서에서 만난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진심으로 하라”는 일갈이 “밥벌이하며 보는 모습이 진짜”라는 친구의 말과 공명해 내 모습을 거울처럼 비췄다. 얼마 되지 않는 돈에 손해를 따지고, 기계적인 균형감은 일을 최소한 하려는 쪽으로 기울고, 같이 일하는 이들을 두루 생각하기보다 자신부터 보호하려 드는 거울 속의 얼굴은 내가 혀를 끌끌 차던 어떤 이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매일 쌓은 경건의 힘, 예수를 닮고자 하는 의지, 성령의 열매를 맺고자 하는 소망의 ‘오늘’이 가장 환히 드러나는 곳이 밥벌이의 현장일지도 모른다. “주께 하듯 하라”는 말이 늘 손해만을 추구하고 미련하게 일을 도맡으라는 뜻은 아닐 테다. 그러나 우리네 모든 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는 이와 눈 앞의 이해 관계와 돈 너머를 보지 못하는 이의 태도는, 함께 일하고 공부하는 동료들에게 때때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사는 ‘의구심’의 종류가 여럿일진대, 시나브로 쌓인 나의 매일매일이 그런 긍정적인 ‘의구심’을 일으키는 삶이기를 다시 한 번 기도한다. 선배에게 보내는 감사의 선물과 함께 정확한 송금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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