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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드릭 Oct 22. 2023

문제냐 신비냐, 관점의 차이

아시시 순례 에세이: ⑦ 회복해야 할 경외심과 경이로움이라는 개방성

아시시 시내에서 바라본 마을의 저녁 전경 (2022년 4월)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


지극히 높고 강하며 선하신 주님, 모든 찬미와 영광과 존귀와 축복이 당신의 것입니다 오로지 당신, 지극히 높으신 당신 께만이 이것들이 합당합니다 그 누구도 지존한 당신의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습니다.


나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이 지으신 모든 창조물에게서 찬미를 받으소서 특별히 내 형제인 태양에게서 찬미를 받으소서 태양을 통해 저희에게 빛을, 새로운 날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태양은 아름답고 찬란한 광채를 띠우나니 당신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까닭입니다.


나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자매인 하늘의 달과 별들에게서 찬미를 받으소서 그들은 맑고 빛나고 아름다우니 그들을 지으신 분이 당신이신 까닭입니다.


나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형제인 바람을 통해, 공기와 구름과 맑고 고요한 날씨와 온갖 기후를 통해 당신은 찬미를 받으소서 그들을 통해 당신은 손수 지으신 당신의 창조물들을 살피십니다.


나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자매인 물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물은 쓸모 있고 겸손하며 맑고 소중합니다.


나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형제인 불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불을 통해 당신은 밤을 밝히나니, 불은 아름답고 장난스러우며 또한 열정적이고 강합니다.


나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자매이자 어머니인 대지로부터 찬미를 받으소서 우리를 지켜주며 다스리는 대지는 온갖 과일이며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합니다.


나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남을 용서하는 사람들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아픔과 고난을 참아 받는 사람들을 통해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을 바라보며 고요히 참아내는 이들은 복되나이다 그들은 월계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 나의 자매인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찬미를 받으소서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나이다 대죄를 짓고 죽음을 맞는 사람은 불행할진저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따르며 죽음을 맞는 사람들은 복되나이다 두 번째 죽음이 그들을 해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나의 주님께 찬미와 축복과 감사를 드리오며 지극한 겸손으로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아시시에서 ‘태양의 찬가'를 처음 접했을 때 자연을 나의 누이, 어머니 혹은 형제로 부른 프란치스코의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의 제자 보나벤투라(Bonaventure)에 따르면 프란치스코는 아무리 작은 피조물이라도 이들을 '형제' 또는 '자매'라는 이름으로 부르라고 제자들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아마도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경외심과 경이로움이라는 개방성 없이 자연과 환경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자연과 환경의 주인 노릇하며 소비자 혹은 무자비한 착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피조물들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찬미가 ‘태양의 찬가'는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 번째로 발표한 환경과 인간 생태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이 제목을 영문으로 번역하면 Praise be to you, my Lord)"에 큰 영감을 준 시이기도 하다.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회칙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환경을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남용하여 우리와 삶을 나누는 아름다운 누이이자 우리를 품어 안아주는 어머니와도 같은 자연환경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전 인류가 고통으로 탄식하게 된 지금의 현실을 지적한다. 이에 그는 전 세계인에게 미래세대를 생각하며 "신속하고 통일된 전지구적 행동"을 우리 모두에게 촉구하고 있다. 이미 1979년 11월 2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연을 신이 인류에게 준 놀라운 선물로 인식한, 존경할 만한 사람들 가운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매우 특별한 수호자"라고 언급하며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환경과 인간 생태를 옹호하는 이들의 수호자로 선언하는 교서를 발표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의 죽음 이후 생겨난 전설과 민화 모음집인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꽃들(The Little Flowers of St. Francis of Assisi)’에 의하면 프란치스코가 어떤 동료들과 함께 여행하던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그의 동료들에게 "내가 나의 누이들인 새들을 설교하러 가는 동안 나를 기다리라"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새들은 그의 목소리에 호기심을 느끼며 그를 에워싸고 그 주변의 단 한 마리의 새도 설교 중에 날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종종 새와 함께 묘사되는 것은 이런 일화와 연결되어 있다.


Ask the beasts, and they will teach you; the birds of the heavens, and they will tell you; or the bushes of the earth, and they will teach you; and the fish of the sea will declare to you. In God’s hand is the life of every living thing and the breath of all mankind. ― Job 12:7-10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비단 인간뿐 아니라 창조물 전체를 향한 것이리라. 통합적인 미래 비전과 위로와 희망의 구속적 이야기들이 절실한 지금, 가난하고 병든 자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 프란치스코의 영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귀하게 여겨진다. 그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에 따라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생겨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피조물과 소통하며 그것을 보살펴야 함을 소명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심지어 자연과도 놀라운 조화 속에서 단순하게 살았던 이 땅의 진정한 “순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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