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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GH Apr 07. 2021

11. 모텔은 죄가 없다(feat. 여기어때)

"불투명 유리의 화장실은 싫지만…"

1. 숙박 앱 업계에는 볼드모트가 있다. 

숙박 앱 PR담당자에겐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볼드모트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입에 올리기 힘든 말, 바로 '모텔'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텔은 야합니다. 연인과 방문하는 공간으로 인식이 한정된 탓입니다. 아무래도 90년대부터 크게 유행한 러브 모텔의 잔재가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나 봅니다. 모텔을 들어갈 때는 괜스레 주변을 살펴야 할 것 같고, 모텔을 방문한 에피소드를 굳이 친구들과 공유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80년대생인 저에게도 모텔은 비밀스러운 사생활의 영역이었는데요. 모텔을 소재로 한 기사도 원색적인 댓글이 달리기 마련이죠. 숙박 앱의 볼드모트는 최근까지도 직접 언급하기가 힘든 존재였습니다.


모텔 대신 중소형호텔을 사용한 보도자료로 발생한 기사


모텔 광고 플랫폼으로 출발한 여기어때마저도 PR자료에는 '중소형호텔'이라는 대체어를 사용했습니다. 조직도에도 '모텔사업부'는 없고 '중소형호텔사업부'가 올라와있습니다. 종합 숙박 앱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한 후 모텔의 부정적 이미지와 거리를 둬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어때의 브랜드 가치가 모텔의 부정적 이미지와 연관되는 게 싫었습니다. 오히려 모텔 산업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중소형호텔이란 새로운 비즈니스 콘셉트를 구축하려고 했죠. 고객과 사회가 모텔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꾸겠다는 목표도 뚜렷했습니다.



2. 볼드모트의 이름을 부르는 해리포터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미 모텔을 바라보는 시선은 알아서 변하고 있었습니다. tvN의 프로그램 '온앤오프'의 방송인 김민아 씨 편을 보셨나요. 김민아씨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사이 뜨는 시간에 모텔을 방문했는데요. 대실한 방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반 쯤 지우고, 침대에서 TV를 보며 배달 음식을 먹습니다. 차에 앉아서 자는 것과 모텔 침대에 누워 휴식하는 것의 절대적 차이를 주장했죠. 91년생 김민아씨가 '요즘 모텔 사용법'을 보여준 셈입니다. 

출처 : tvN D ENT 유튜브 채널(https://youtu.be/RXVsXsCpZgw)


여기어때가 판매하는 모텔 상품은 주로 20대 고객이 많이 찾습니다. 특급호텔 대비 합리적 가격도 장점이지만 대실이라는 특수한 시스템이 한몫합니다. 길게는 6시간까지도 빌리는 모텔 방은 Z세대에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자 놀이터입니다. 깨끗한 인테리어를 갖춘 공간엔 맘껏 뒹굴어도 되는 넓은 침대가 있고, 대형 TV도 구비됐습니다. 넷플리스나 왓챠 같은 OTT는 이제 기본 서비스입니다. 게임이 하고 싶다면, 고성능 PC를 갖춘 룸을 선택하면 됩니다. 게다가 상권 좋은 곳에 위치한 모텔은 주변에 맛집도 널렸습니다. 2개의 맛집에서 주문한 배달 음식을 펼쳐놓으면 완벽한 모캉스를 즐길 준비가 끝납니다.


모텔의 방문 목적이 확장되자 동성 친구와 입장하는 고객 비율도 높아졌습니다. 여기어때는 20대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적 있는데요. 이들은 날씨가 궂은 날이면 거리를 걷고 싶지 않아서 친구와 그냥 모텔에서 쉰다고 합니다. "비가 오면 습한 날씨를 피해 모텔에서 무너진 화장을 고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보면서 맛집 음식을 배달시킨다"는 거죠. 모텔은 친한 동성 친구랑도 가는 공간이니까, "불투명한 유리문이 달린 화장실은 정말 싫다"는 불만이 이해가 되죠. 

내부가 비치는 문제의 화장실 인테리어(출처 : 네이버 블로그)

타깃 고객인 20대는, 특히 이중 여성은, 친구들과 모텔 정보를 공유한다고 합니다. 방문 리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그만큼 모텔이 보편적이고 심리적 허들이 낮은 소비 대상이라는 의미 같습니다. 이들은 모텔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도 그다지 느끼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모텔 다녀올게"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방문하는 것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최소한 친구끼리는 모텔을 가는 게 부끄럽거나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3. 모텔은 모텔이다.

여기어때의 20대 고객에게 모텔은 죄가 없습니다. 중립적인 공간이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대실 시간을 채우는 휴식 장소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텔이란 단어가 상품 구매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에서 중소형호텔을 유지할 필요가 적다고 판단했습니다. 소비자가 괜찮다는데 괜히 다른 단어를 차용해 개념을 흐리는 게 어색해 보였습니다. 모텔을 모텔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중소형호텔이란 단어가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중소형호텔은 비즈니스 호텔, 이코노미 호텔 같은 숙박 시설을 표현하기 위해 혼재돼 사용되기도 하거든요. 기사 제목에 걸린 모텔을 중소형호텔로 제발 바꿔달라며 출입기자를 붙들었던, 노력했던, 과거가 아득히 생각나네요.


여기어때의 PR커뮤니케이션은 이제 20대와 모텔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지난해부터 언론을 대상으로 앱 사용자의 설문조사 결과를 1달에 1번씩 보도자료로 안내하는데요. 대부분 20대가 모텔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이용 형태에 주목합니다. 물론, 기획자료나 취재 지원도 같은 키워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모캉스를 새로운 트렌드로 소개하고, 젊은 층이 즐기는 여가 형태라는 점을 알리고자 합니다.


브랜드 마케팅 측면에서 모텔에 대한 인식 개선을 붐업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대표적으로 아이돌 출신 유튜버와 함께 한 '모뽀걸즈'가 있죠. 다양한 방문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파티룸이나 글램핑 같은 신박한 시설을 갖춘 요즘 스타일의 모텔을 소개합니다.


출처 : 각 언론사 온라인 기사 화면(왼쪽부터 파이낸셜뉴스, 디지틀조선일보, 머니투데이)


4. 여기어때 앱은 언제나 '모텔'이었다.

재미있는 건 사실 여기어때 앱에는 과거부터 중소형호텔이란 상품 카테고리가 없었습니다. 꾸준히 모텔 카테고리를 운영해왔죠. 커뮤니케이션 채널에서는 한때 중소형호텔을 외쳤지만, 가장 중요한 앱 이용자에게는 "모텔 상품을 구매하세요"라고 추천했습니다. 대실 상품도 열심히 프로모션 했고요.


우리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타깃 소비자는 모텔 상품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또, 중소형호텔로 언어를 대체하기가 어렵다는 것도요. 우리의 주요 고객은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가 원할 때 깨끗한 모텔을 합리적 가격에 방문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의 취향에 집중하고, 대상의 도덕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Z세대의 특징이 반영될 걸까요? 변화한 모텔의 위상(?)을 알리고,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리딩 기업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게 효과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입니다.



+ 보너스) 요즘 모텔 사용법 - '모뽀걸즈'에 등장한 테마 모텔 소개


ⓐ 역삼 컬리넌(유튜브 영상 보기 ▶ https://youtu.be/Ze-tnWkXhNw)

 -대리석 욕조가 있는 룸으로 유명한 강남 모텔

 -주변 맛집에서 음식 배달까지 쉽게 즐기는 공간



ⓑ 의정부 stage79(유튜브 영상 보기 ▶ https://youtu.be/B2s4TsIfgaE)

 -노천탕과 글램핑 텐트가 있는 의정부 모텔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이색 경험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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