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고려당 버터롤
고려당의 버터롤. 내가 사랑하는 빵이다. 이 빵은 길쭉한 은박 접시에 들어 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두께의 빵이 차곡차곡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데 그 모습이 꼭 커다란 애벌레가 은박 접시에 몸을 구겨 넣고 있는 듯 꼬물꼬물하다. 잘 구워져 노릇노릇한 칸칸의 빵 사이로 노르스름하고 반짝이는 것이 언뜻언뜻 보이는 데 표면에 잘 발라진 연유이다. 이 빵의 다른 이름은 연유 브레드. 빵의 질감이 야들야들해서 은박접시를 뜯고 빵을 찢어내면 한 칸의 빵이 찰랑거린다. 입 안에서는 야들과 쫄깃의 질감이 우물우물 하는 사이에 없어진다. 그 질감과 함께 짙은 버터향, 그리고 녹진녹진한 연유의 달콤함이 어울어진다. 꽤 큰 그 빵 하나를 다 먹는 것은 일도 아니다. 폭신하고 말랑한 빵을 갓 나왔을 때 먹으면 한껏 긴장되었던 어깨근육이 연유처럼 녹아내린다.
두어달에 한 번 있는 나의 친정행은 고려당으로 시작한다. 친정집 문을 열자 짐을 던져 놓고 그곳으로 향한다. 좁아 터진 골목길에 겨우 우겨 넣어 주차를 한다. 벌름거리며 빵냄새를 갈구하는 내 코는 이미 가게 문을 열었다. 2대짼가 3대짼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안주인이 나를 맞이하면 그날은 횡재수가 있는 날이다. 몇 개의 빵을 사 건 나의 입은 시식용 빵으로 미어 터진다. 이것저것 담다 보니 오늘도 이-삼만원을 훌쩍 넘는다. 버터롤의 은색 접시가 뾰족히 두 개가 보이면 됐다. 그래봐야 2박3일이 끝나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식빵을 사러 나선 어느 날. 동네 체인점 빵집에서 발견했다. 반짝이는 은색 접시, 노릇노릇한 연유 자국 틀림없는 고려당의 버터롤이었다. 호레이! 두 말 할 것없이 계산대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정작 사야할 식빵이 없었다.) 드디어 내가 우리 동네에서도 이걸 먹을 수 있구나, 기분 좋을 때면 흥얼거렸던 어느 밴드의 데뷔 곡을 흥얼흥얼거리며 집으로 왔다.
삼층 계단을 후다닥 올라와 커피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까딱까닥,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커피랑 먹어야 맛있지~’ 하며 기다리는 동안에도 예전의 달콤함이 솔솔 올라왔다. 힐끔, 빵 한번 쳐다보고, 주전자 한번 보고 또 힐끔, 빵 한 번 쳐다보고 하다가 결국. ‘커피는 빵 먹고 먹어도 맛있지~’ 하며 빵 봉지를 열어 버리고 말았다. 맛있게 그을린 갈색 빵 껍질 위로 찐득해진 연유가 노르스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흘러 넘친 연유는 은박 접시에서 굳어서 ‘나 정말 맛있오.’ 하고 있었다. 접시를 잘라내고 빵의 한 칸을 뜯어 입에 넣었다.
읭???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은 온데 간데없다. 버터의 풍미? 혀의 미뢰 세포를 아무리 예민하게 굴려도 찾을 수 없었다. 입 안에 남은 것은 가슬거리는 빵과 기분 나쁘게 들쩍지근한 단맛뿐. 주인 아저씨의 빵솜씨를 믿은 나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래봐야 체인점인 것을… 물을 다 끓인 주전자가 탁 소리를 내며 꺼질 때 나도 탁하고 꺼졌다. 어떻게 이 동네는 직접 빵을 굽는 빵집이 하나도 없는지. 어쩌자고 나는 이런 동네에 시집을 와서 이 맛없는 빵에 설레어 했는지. 속상한 마음이 눈으로 차올랐다.
집 앞 상가 구역에 옆 도시 유명한 빵집의 분점이 생겼다. 건물을 짓는다 어쩐다 할 때부터 마음이 부풀어서 내내 생각했다. ‘아침마다 빵굽는 냄새가 찰랑이겠지.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들어가서 빵 하나를 사와야지. 아이도 빵냄새를 궁금해 하겠지. 그러면 잘 달래서 하원하는 길에 먹고 싶은 빵을 고르게 해야지.’ 한참을 기다린 끝에 문을 연 가게는 오전 11시에 본점에서 구운 빵이 배달된다고 했다. (그래도 파바는 굽기라도 한다!!!) 빵이 없는 빵집에서 커피만 한잔 사왔다. 정말 쓴 맛이었다. 그래도 이번 가게는 꽤 오래 버틸지도 모르겠다. (가게 주인이 건물주다.) 그건 그렇고 나 이 동네에 사는 동안 갓 구운 빵을 먹어 볼 기회가 있긴 한걸까?
빵은 순하다. 독~하게 마음먹고 달다 달다 엄청 달다를 아무리 많이 넣어도 날카로운 단맛이 나지 않는다. 다디단 재료들을 폭신한 밀가루 반죽에 싸서 숙성시킨다. 그렇게 구워 나온 빵들은 달달하다. 둥글둥글한 단 맛이다. 마음이 모나고 뾰족해지면 빵을 먹는다. 삐죽삐죽 밉게 나온 못난이들이 빵에 쌓여 두리뭉실해지다가 녹듯이 사라진다. 그렇게 빵은 나를 순하게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버터롤은 나를 여러 번 순하게 해주었다. 그런 순한 빵을 가까이에 두고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