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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고 쓰다

여름의 선물

복숭아

by 지야







여름이었다. 신랑이 커다란 복숭아 상자와 함께 들어왔다. 과일 가게에서 조막만한 복숭아를 사 먹던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큰 복숭아가 여남개 들어 있었다. 갓난아기 머리통만한 복숭아였다. 이렇게 큰 게 아삭한 복숭아일 리 없었다.


“이거 말랑한 거지?”


신랑은 코웃음 쳤다. 복숭아 산지를 우습게 보지 말란다. 잔소리 말고 먹어나 보란다. 아삭한 복숭아가 이렇게 클 수 없다며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칼을 댔다. 칼 틈으로 풍겨 오는 향이 내 입을 다물게 했다. 아름다웠다. 화장품이나 젤리류에 입혀진 복숭아향은 허울이었다. 진짜는 더 싱싱하고 더 건강했다.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가 상상되는 향이었다. 무릉도원이 왜 복숭아로 가득해야 했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먹는다’가 아니라 ‘밀어 넣는다’ 수준으로 먹었다. 나와 신랑은 일어날 줄 모르고 현관 앞에서 복숭아 너댓 알을 삼켰다.


복숭아는 한 알 통째로 먹어야 한다. 크게 한 입 베어 물 때 ‘아사삭’하는 시원한 소리로 여름에서 살짝 도망친다. 이 사이에 흘러넘치는 과즙에서 복사꽃 향 맡으며 잠시나마 봄에 도달한다. 한 알 통째로 먹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단단하게 잘 여문 복숭아 흐르는 물에 씻는다. 복숭아는 아무래도 그 털이 성가시다. 미끄러지지 않게 야무지게 잡고 흐르는 물에 두어바퀴 돌리듯 씻으면 그나마 좀 낫다. 껍질이 얇아서 껍질째 먹기도 하지만 역시 가슬가슬한 껍질은 깎아야 한다.


껍질 깎기는 꼭지에서 시작한다. 돌돌돌돌 분홍색 껍질 한 줄이 팽이 줄처럼 돌돌 쌓인다. 칼이 지나간 자리는 크림색의 살결이 드러난다. 오른쪽 왼쪽으로 나눠 주는, 꼭지에서 시작한 가운데 홈도 덜컥하면서 그 위에 돌돌 쌓인다. 깎다 보면 크림색 과육 사이 사이로 분홍색 반점이 보인다. 이 정도면 중간은 가는 맛이다.


아삭한 복숭아는 첫 한 입 베기가 힘이 든다. 너무 크게 베면 아랫니가 따라오다가 여린 잇몸이 상처입기 쉽고, 너무 작게 베면 과육에 미끄러져 윗니 아랫니가 쾅 부딪히고 만다. 그래서 나는 가운데 줄 기준 삼아 칼을 길게 꽂았다 빼고 각을 살짝 주어 또 꽂았다 뺀다. 떨어져 나온 한 조각으로 손에 든 복숭아를 점친다. 복숭아 향이 나는 무인지, 아닌지.


그럴 바에 차라리 말랑한 복숭아를 먹으라고 한다. 거의 백퍼센트 보장되는 맛에 이를 갖다 대면 갖다 대는 대로 벨 수 있으니 좋지 않으냐고. 나는 좋지 않다. ‘거의’에 속하지 않는 그 ‘가끔’이 주로 나에게 당첨된다. 잘못 고른 아삭 복숭아는 향 나는 무라도 되지 말랑 복숭아는 잘못 고르면 맛이 다 우러난 육수 속 무다. 그건 사람이 먹는 게 아니다. 심지어 말랑 복숭아는 한 알 통째로 먹을 수도 없다. 한 입 베어 물면서부터 내 팔꿈치를 향해 흐르는 과즙은 이 여름에 느끼는 공포다. 그게 씻을 수 없는 곳이라면? 물티슈마저 똑 떨어지고 없다면? 밀려오는 끈적임과 짜증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다시 여름이다. 신랑이 복숭아 한 상자 들고 퇴근했다. 동료의 처가가 복숭아 과수원이란다. 올해따라 강매 아닌 강매를 하길래 모르는 척 한 상자 샀단다. 결혼 초에 먹은 그 탐스러운 복숭아가 이 집 복숭아였다. 그때보다 씨알은 작았지만 때깔은 여전했다. 매미 소리 쟁쟁하고 뜨거운 바람 휙휙 부는 더운 날의 연속이다. 칼만 갖다대면 이 더위에서 잠시 도망치게 해줄 복숭아가 냉장고 서랍 속에 한가득 있다. 냉장고에서 시원해진 복숭아 한 알 꺼낸다. 이 여름을 겨우 견디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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