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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고 쓰다

노동의 틈새

커피믹스

by 지야



엄마는 커피를 좋아한다. 어릴적 살던 셋방 부엌에 빨간색 뚜껑의 맥심, 같은 빨간색으로 물결치듯 흘려 쓴 프리마, 병 입구에 굳어서 결정처럼 단단하게 뭉쳐 있던 하얀 설탕. 이렇게 병 세 개가 졸졸이 서 있던 것이 기억난다. 먼지 없이 단정하게 닦여 있던 유리병들이 햇빛에 부딪혀서 빛나던 반짝반짝한 기억이다. 엄마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만 엉덩이를 붙이고 쉴 수 있었다. 하루 세끼 밥 먹으러 들어오는 신랑과 두 살 터울의 자매를 돌보기 위해 작은 발과 작은 손으로 종종거리며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다. 그래서 셋방 쪽마루에 다리를 펴고 앉아 향긋하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는 엄마를 보는 일은 어린 내 눈에도 휴식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커피가 항상 궁금했다.


아빠도 커피를 좋아한다. 새벽같이 택시 운전을 하러 나가던 아빠의 작은 일가방에는 잠을 깨게 해준다는 까만 포장지의 껌과 손님에게 받은 꼬깃꼬깃한 지폐와 낡은 동전들이 가득했다. 그 속에 캔 커피가 들어 있는 날도 많았다. 매일 잠과 전쟁하는 아빠는 밥을 다 먹고 나면 항상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커피 세 숟갈, 프리마 두 숟갈, 설탕 두 숟갈, 적당히 넣은 뜨거운 물. 하얗고 작은 잔에 엄마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고 나면 커피 값이라며 엄마에게 천원짜리 지폐 몇 장을 주었다. 그 지폐는 엄마의 커피 병 옆 사랑방사탕 통 속에서 차곡차곡 모였다. 아빠가 주는 엄마의 용돈이었던 그 돈이 모이고 모이고 또 모였다. 그 돈이 내 침대가 되고, 냉장고가 되고 우리의 새 집이 되고 그랬다.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보니 더 이상 졸졸이 늘어선 커피병들을 볼 일이 없었다. 세상 맛있는 커피 믹스가 등장한 것이다. 아파트 현관문 다 열어 놓고 살던 시절. 엘리베이터 없는 6층 아파트의 2층이었던 우리 집은 동네 아줌마들의 방앗간이었다. 날 따뜻하고 바람 선선한 계절에는 노란 커피믹스 여러 개와 뜨거운 물이 계단을 지나 화단가에 앉은 아줌마들 앞으로 갔고, 햇볕 따갑거나 찬바람에 코가 빨개지는 계절에는 거실에 앉은 아줌마들 사이로 얼음을 띄운 혹은 김이나는 커피잔들이 오고 갔다. 엄마는 커피만큼이나 사람들을 좋아했다. 어떤 날은 남편 성토의 장이 되고, 또 어떤 날은 자녀 교육의 상담소가 되어 우리집 작은 거실을 사람으로 채웠다. 엄마는 그 속에서 피붙이 하나 없는 낯선 동네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 가고 없는 조용한 집. 해가 길게 들어오는 베란다 쪽마루에 까만 라디오를 켜놓고, 뜨개질을 하고, 마늘을 까고, 부업을 하던 엄마의 동그란 등. 그 옆에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 하나가 있다. 길지 않은 엄마의 조용한 시간이다. 밥 때 되어 들어오는 신랑, 유치원 끝나고 학교 끝나고 차례로 집으로 들어오는 삼남매들. 엄마의 시간이 가족의 시간으로 변하는 순간 엄마의 쉼도 끝났다.


남동생의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엄마는 직업인이 되었다. 아빠의 알량한 벌이로는 우리에게 해주어야 할 것들에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리라. 학교 급식소에서 습기와 열기 속에서 녹초가 되어 갈 때도 엄마에게 직접 힘이 되어 준 건 커피였다. 노동과 노동 사이 잠시의 틈에서, 커다란 양푼에 커피믹스를 쏟듯이 붓는다. 물은 믹스가 녹을 만큼만, 얼음은 양푼 가득.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저마다 비슷비슷한 이유로 육체노동에 뛰어 든 그녀들과 엄마는 한숨 돌려 쉴 수 있었다. 어제의 속상한 이야기, 내일의 희망이 될 이야기들이 오고 갔으리라. 그 커피 덕에서 그녀들의 아들과 딸이, 엄마의 딸과 아들이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했다.


엄마의 쉼뿐이었을까? 먼 길이든 가까운 길이든, 험한 길이든 편한 길이든, 엄마의 여행 가방에선 요술처럼 커피믹스 봉지가 나왔다. 노란봉지였다가 빨간봉지이기도 했다가 갈색봉지에 정착한 이 커피믹스들은 잠시 앉은 장가계의 벤치를 따뜻한 휴식으로 바꾸기도 했고 등산로의 바위를 시원한 휴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한 여름 오른 산에서 뜨거운 물에 탄 커피가 시원한 커피로 변하는 요술은 지금도 신통방통하다.


동네 유명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만큼 세련되게 변한 엄마지만 이제 엄마는 커피를 전처럼 마시지 않는다. 아니 마시지 못한다. 허리살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늘어나는 것이지만, 혈압이 조금씩 올라서 체중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기보다 풀 쪼가리 좋아하고, 과자보다 과일 좋아하는 엄마에게 (심지어 운동량도 나보다 훨씬 많다. 적어도 만보는 걸으시는 듯) 체중 조절을 위해 줄일 수 있는 것은 커피 밖에 없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친구는 필요할텐데, 20년을 넘게 산 작은 아파트에서 이사 나온 지도 5-6년은 되었고, 퇴직하여 일터에 나가지도 않는 데 누가 엄마의 커피 친구가 되어주고 있을까? 아들 딸 다 떠나버린 집에서 혼자 마시는 커피는 씁쓸하지 않을까?


엄마는 드디어 생긴 조용한 엄마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아니다. 엄마의 시간은 조용하지 않다. 작은 앞마당에 꽃을 심는다. 꽃이 예쁘게 핀 길을 걷는다. 아픈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고 어린 손녀의 얼굴을 전화기를 통해서 본다. 요리가 손에 익지 않은 딸을 전화 통화로 조종해 음식을 하게 하고, 혼자 나가 사는 아들의 끼니를 챙긴다. 그 와중에 아빠는 아직도 세번의 식사를 위해 집으로 온다. 엄마의 삶은 분주하다. 그래서 하루에 한 잔만 마시는 믹스 커피의 맛은 더 달콤할 것이다.



그렇다. 엄마의 고단한 삶에서 잠시 앉을 여유를 주는 것은 여전히 커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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