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저녁의 고요와 파두를 사랑한다, 알파마.

by 오윤
햇살을 주는 태양에 감사하고 아득함을 가르쳐주는 별들에 감사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소유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 굶주린 자의 음악, 눈먼 자의 노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방랑자의 기억, 사막을 가는 낙타의 발자국, 그 어떤 짐도 목적지도 없이... (Fernando Pessoa, 1999/2014, p. 97)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얼마나 잤을까?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는 리스보아의 거리로 서둘러 나갔다. 오후에 걸었던 거리를 다시금 걸어 상조르주 성으로 향한다. 거리가 자아내는 느낌과 비슷한 삶의 빛깔이 걸음 사이 사이에 함께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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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도 조금씩 익숙해진다. 호시우 광장을 가로질러 아우구스타 거리로 들어선다. 노천 테이블이 저녁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우구스타 거리를 뒤로 한 채 오래된 길을 따라 동쪽으로 향한다. 오후에 스쳐지나갔던 리스보아 대성당이 보이고, 언덕을 내려오는 노란 전차가 보이고, ‘어 저 언덕을 올라가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무작정 언덕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인적이 드문 길이 나오고, 그렇게 걷다보면 리스보아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이자 파두의 발생지인 알파마 지구와 마주하게 된다. 해가 곧 질 기세다. 어디에서 석양을 봐야 하지? 여행 책을 보니 상조르주 성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부랴부랴 근처 지명을 검색해보니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라는 곳이 눈에 보인다. 일단 거기로 가자. 어디지? 어라, 바로 옆이잖아.


여행 책에는 이 전망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아름다움은 심장을 저리게 하고 숨을 멎게 한다. 새파란 하늘, 아래로는 테주강, 오르내리는 기선들, 눈앞 가득 펼쳐진 붉은 지붕과 흰벽의 건물들, 창가의 제라늄, 가난한 빨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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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느낌이긴 하다. 그러나 사진으로 보나 실물로 보나 해질녁 한강에서 찍은 사진이 이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숨을 멎게 하는 아름다움이라는 문장은 과장이다. 이런 전망에 숨이 멎는다면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해질 녁 나는 매번 숨이 멎을 거다. 다만 인상적인 것은 침묵이었다. 고요 속에 해가 지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이럴 때 한 손에 맥주 한 병이 있어야 제격이다. 구멍가게에서 맥주 두 병을 산다. 층계에 앉아 노란 조명등 아래에서 맥주 한 모금씩을 홀짝 거린다. 그러면서 어둠이 깔리는 낯설면서 친숙한 공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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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참 묘하지 않아?”

“친숙해.”

“어릴 적 놀던 동네 같아.”

해질녁 거리가 자아내는 느낌과 비슷한 기억의 느낌들이 맥주 병 위에 자막처럼 머무른다. 우리와 이 거리 사이에 어떤 이질감도 없다는 느낌, 우리 모두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은은하게 노란 조명 사이로 흐른다. 어디선가 파두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음악을 따라 좁은 골목을 지나다 허름하고 어두컴컴한 집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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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화장에 삶의 무의미함을 간직한 표정으로 목놓아 부르는 파두를 들으며 와인 한 병을 마신다. 여기에 오기 전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파두를 반복해 듣곤 했다. 그녀는 부둣가 노동자들의 노래였던 파두에 포르투칼의 시인들을 끌어들인 장본인이라 한다. 평생 가난하고 허름한 무대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노래를 불렀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은 유튜브에서 전해 듣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음악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운율과 리듬과 목소리가 전하는 이야기는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헛된 꿈, 그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작은 희망을 차마 파기하지 못하는 수백만 영혼의 이야기. 거기에는 만족도 아름다움도 없다. 다만 지저분하게 얼룩진 화장 위에 가난한 삶의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매순간 목이 터져라 간절하게 그리움을 희망을 삶을 노래할 뿐이다. 이 허름한 공간에 들어서면 파두 음악과 그것을 목놓아 부르는 퇴락한 동네의 가수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은 일상이고 여행은 예술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번지수만 다를 뿐 일상의 삶만큼 단조롭다. 해가 지면 옷을 갈아입고, 짙은 화장을 하고, 목놓아 노래를 부르는 거다. 영혼을 다해 노래를 듣는 거다. 일상과 예술이 다른 게 있다면 다른 장소에 놓여 있을 뿐. 무엇이든 매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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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리스보아에서 첫날 밤이 깊어가고 있다. 그녀는 와인 한 병 더를 외치고 있고, 거리 곳곳에 들뜬 목소리와 노래가 흘러 넘친다. 지금 이 공간이 예술이다! 의식도 해석도 없는 무의식과 감정들이 부유하는 곳, 그 속에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뒤섞인다. 이것이 삶인 거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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