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인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다... 여행? 존재 자체가 이미 여행이다. 나는 매일같이 내 몸이라는 운명의 기차를 타고 이 역에서 저 역으로 향한다. 혹은 거리와 광장에서 사람들의 얼굴에서 얼굴로 여행한다. 마치 차장 밖의 풍경처럼 항상 똑같으면서 다르기도 한 그것들을 바라본다. (Fernando Pessoa, 1999/2014, p. 747)
일요일 아침, 리스보아 여행책을 펴면 바이샤 지역(Baixa)과 1,2위를 다투는 바이루 알투(Bairro Alto)라는 거리를 걷고 있다. 어제 걸었던 테주 강 주변의 지역을 바이샤 지역이라 부르는데, 바이샤(Baixa)는 영어로 번역하면 low, 낮은 지역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대비되는 푯말을 가지고 있는 거리가 지금 걷고 있는 바이루 알투다. 바이루 알투가 뭐냐고? 높은 지역 되겠다.
‘어이 친구 지금 어디야?’
‘난 지금 높은 지역을 산책 중이지.’
‘아 그렇군. 나는 낮은 지역에서 브런치를 먹고 있지.’
‘우리 그러면 그 사이에서 볼까?’
‘중간 지역 말인가?’
‘그렇지’
리스보아는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도시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언덕과 언덕의 마주침으로 빚어진 도시라고 할까? 그렇다고 이 언덕이나 오르막길이 아주 가파르거나 그렇지 않다. 그냥 평지보다 약간의 힘만 더 허벅지에 주면 되는 정도다. 언덕을 오르고, 벽화들을 감상하고, 파란하늘을 올려보다, 3~4층에 널린 빨래들에 눈이 멈춘다.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들을 보다보면 어린 시절 살던 동네가 떠오르고, 가난하지만 인정많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떠오른다.
어디서든 낮은 지역에서 높은 지역으로 산책을 하다보면 꼭 만나게 되는 십자로가 있다. 시아두다. 시아두에는 시간의 흔적이 짙에 묻은 카페와 부티크, 그리고 현대적인 쇼핑몰이 이질감 없이 섞여 있다. 그 가운데에 작은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16세기의 풍자시인 안토니우 히베이루의 동상이라고 한다. 그는 이 공간에서 매일같이 자작시를 낭송하고 기분이 좋으면 노래도 부르고, 유명 인물들을 성대 묘사하던 괴짜였다. 그가 판을 깔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곤 했는데, 그의 목에서는 늘 식식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래서 사람들은 ‘어이 식식이’라고 그를 불렀고, 그 식식이가 이곳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로 치자면 펭수의 ‘펭하’가 한 동네의 이름이 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시아두 지구에서 한 블록만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면 조금은 을씨년한 골목에 페른난도 페소아의 동상도 마주할 수 있다. 그 역시 평생 이 거리를 떠나지 않았던 포르투칼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높은 지역(Bairro Alto)에서 히베이루의 농담과 유머가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면, 페소아의 농담과 유머는 대중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홀로 거리를 걷고, 홀로 글을 쓰고, 혼밥을 먹는 친구였다. 낮에는 직물회사의 보조회계원으로 일했고, 밤에는 홀로 거리를 걷고 글을 썼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가 죽은 후 방에 쌓여있던 수많은 종이더미를 누군가가 발견한 이후다. 살아생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세상에 알려지길 욕망하지 않던 그는 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느낀 감정은 하나 ‘자유’였다.
“종종 나는 생각한다. 도라도레스 거리를 영영 떠나지 못할 거라고. 글로 쓰자마자 이 생각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다.. 즐거움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며 권력도 아니다. 자유, 오직 자유다. (Fernando Pessoa, 1999/2014, p. 79)”
그는 평생 도라도레스 거리, 리스보아의 거리, 시아두 지역을 떠나지 않았으며, 바로 거기에서 글을 쓰고 꿈을 꾸고 삶을 살아간다. 그는 120개의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던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일관성이 없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고 삶의 위로를 받게 된다. 즐거움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오직 자유. 매일 똑같은 가면을 써지 않아도 된다는 작은 위로.
페소아를 생각하며 시아두 거리를 걷는다. 한편으로는 고급스런 상점이, 반대편 비탈진 곳으로는 파두하우스와 식당과 카페가 즐비하다. 거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중 하나인 베르트랑 서점과 페린 서점이 있고, 리스보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서점인 사 다 코스타 서점 (Livraria Sa da Costa)이 있으며, 리스보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카르무 수녀원(Convento do Carmo)이 있다. 서점에 들어가 낡은 서가와 인테리어만 봐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특별할 것 없는 폐허가 된 수녀원을 보다보면 삶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어디선가 털썩 벤치에 주저앉아 페소아의 책을 열면 이런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인간을 위해 일하는 인간들, 각자 조국을 위해 치고받는 인간들, 문명의 족속을 위해 생명까지 내놓는 인간들에 대해, 바닥을 알 수 없이 지독한 경멸의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 유일한 실제는 자신의 영혼뿐이고 나머지 외부세계와 타인들은 전부 정신의 소화불량으로 인해 야기된 미학적 쓰레기이며 꿈인 척하고 나타나는 악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해 구역질나는 경멸을 느낀다. ...무언가를 이루고야 말겠다고 그악스럽게 애쓰는 행위라면 나는 어떤 것이든 거부감을 느낀다. 전쟁, 결연한 노동, 다른 이를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행동. 이 모두가 나에게는 뻔뻔함의 산물로만 여겨진다. (같은 책, p. 79)"
계속 길을 걷는다. 인간을 위해 일하는 인간들, 국가를 위해 이념을 위해 치고받는 인간들, 무언가를 이루고 말겠다며 애쓰는 인간들, 그냥 걷는 인간들, 빨래를 널며 대화하는 인간들을 스쳐지나간다. 페소아는 이 길을 걸으며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여기 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부여된 쓰레기 환영과 실제로 타협할 수 있는 내 비겁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같은 책, p. 82)"
그의 질문은 비겁함만이 아니다. 항상 똑같은 삶에 달라붙어 있으려는 고집도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매일 저녁 샤워를 하듯이 우리의 운명 또한 매일 씻어내야 하고, 매일 속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삶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대개의 일상은 이 사실에 저항하고, 오물에 달라붙어 있으려는 고집을 포기하지도 않는다는 게 그에게는 중요한 화두다. 늘 매번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으려는 관성에 대한 문제의식. 페소아는 이 고집과 관성과 진부함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도 일이 끝나면 거리를 걸었고, 사람들과 사물들을 관찰했고, 글을 썼고, 다시 길을 걷곤 했다.
그 날 그 오후, 여름날 태양빛이 따뜻했던 일요일 오후, 나는 페소아가 걷던 윗 동네를 걷고 걸으면서 줄곧 그를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가 16세기 흑사병을 물리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상 호케 성당(Igreja de Sao Roque)이래.’
‘여기가 어떤 작가가 극찬했던 에스트렐라 정원(Jardim da Estrela)이야. 벼룩시장이 열렸어. 구경해보자.’
‘저 성당 좀 봐.. 이름이 바실리카 다 에스트렐라 (Basilica da Estrela)야. 별의 성당이라 불리는 곳인데, 정말 장대하네. 지금 일요일 미사가 시작되나봐. 우리도 들어가볼까?’
줄곧 그를 생각하면서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벼룩시장을 둘러본다. 잘 되지는 않지만, 어제까지는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나를 호출해 본다. 조금은 흥분되는 산책이고, 평화로운 걸음이다.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그의 책 어딘가를 펼쳐 읽어본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이 문장은 내 안에 그대로 남아 내 영혼을 채우고 있다. 이 문장에 나는 모든 느낌을 기댄다. 그러자 내면으로부터 솟아난 형용하기 어려운 평화가, 바깥 도시 위를 비추며 점점 퍼져나가는 냉엄한 달빛처럼, 내 존재 위에서 말없이 나를 비춘다. (p. 99)."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테주강을 사랑한다. 파란 하늘을 즐긴다. 그 강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고, 그 하늘을 언덕 위에서 올려다본다. 찬란한 햇빛을 받은 도시 리스보아의 다양한 색채. 그 어떤 꽃의 아름다움도 따라갈 수 없다. 자연과 인공 사이의 조화, 어제와 오늘의 조화, 이 조화로움에 몸도 마음도 흥분되게 평화로운 주일 오후다.
여기는 리스보아 윗동네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