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사소함을 아는 직관과 사소한 것으로 존재하면서 행복을 생각할 줄 아는 즐거움을 잊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Fernando Pessoa, 1999/2014, p. 146)
우버를 타고 리스보아의 허름한 골목에 내린다. 여긴 어디? 루시아를 만나기로 한 날. 사람들이 누군가를 마주하는 방식은 나무나 하늘을 볼 때와 다르다. 여행의 순간에 만난 루시아, 그녀는 이틀 동안 우리에게 자기 방을 빌려주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녀가 누구인지 보다 어떤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된다. 가령 여행자에게 친절하고, 따뜻하며, 조근조근 세세한 지역민만이 아는 맛집 정보를 알려주는 것. 그런 기대는 우버에서 내리는 순간 깨진다.
“어이 친구들..”
황량한 거리, 골목에 사람은 없고, 운전사 아저씨가 ‘여기’라고 내려준 곳은 도저히 ‘여기’라고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을 하고 있었다. 뭔가 여기 불안한데, 라는 생각이 왼쪽 귀로 들어와 눈 주변을 돌고 있을 찰나 하늘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를 찾는 거야?”
그건 천사의 목소리도 아니고, 가래가 잔뜩 낀 허름한 골목의 오래된 바 주인장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불안의 감정이 눈 주변을 돌다 오른쪽 귀로 나갈 때 즈음 고개를 드니, 한 아주머니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며 우리에게 손을 들고 있었다. 그녀가 루시아였다.
짐을 들고 그녀의 집으로 올라간다. 우리가 묵을 곳은 허름한 동네, 허름한 주택의 2층, 그녀가 사는 곳도 2층, 그녀의 남자친구인지 남편인지 반려남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상남자가 사는 곳도 2층. 그 2층에는 은둔형 외톨이 여행자도 묵고 있었다.
“저 친구, 우리 집이 조용하고 깔끔하다면서 한번 들어오더니 안나가고 있어. 리스보아 여행을 한다고 왔는데 우리 집 방구석에만 쳐 박혀 있는 거야.”
그렇게 2박 3일 동안 4인의 동거가 시작됐다. 주인장 루시아 아주머니의 일상은 그곳에 방문한 사람들을 자신이 만든 규칙이라는 거푸집에 어울리는 종자로 바꾸려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는 내 집이니깐, 여러분은 나의 기대에 맞추어 신발을 벗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주방을 이용해야 되는 거에요. 이런 속삭임이 집안 구석구석에 부유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부추기고, 응원하고, 칭찬하고 그랬다.
루시아의 잔소리를 들으면 담배가 생각났고, 담배를 물고 거리로 나서면 여기저기서 젊은 친구들이 말을 붙인다.
“어이 친구, 어디서 왔어?”
“한국”
“오~ 한국. 반가워. 리스보아 어때?”
“아 괜찮은데, 여기 집주인 아주머니가 좀 무서워.”
“아~ 저 윗집에 묵는 거야? 얼굴은 가늘고 입술은 부풀어 있고 금테 안경을 쓴 아줌마지? 그 아줌마, 이 동네를 미워해. 자기랑 어울리지 않게 천박하다고. 근데 너 돈 좀 있어?”
“아니, 지갑을 방에 놓아두고 왔어.”
“그래? 그럼 담배라도 하나 줄래?”
“이거 펴.”
“고마워.
인사와 함께 사라진다. 편견 없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은 가능할까? 태연한 척 했지만 순간적으로 쫄았고 이 친구의 다음 말과 행동을 예의주시하게 된다. 리스보아에 가면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어디선가 들은 풍문이 떠올랐고, 풍문이 이 친구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리스보아의 허름한 동네, 허름한 차림의 어릴적 동네에서 본 적 있는 바보 형 친구는 이질적인 이방인이 되고, 이 친구와 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만들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보 형 친구는 담배 한 대를 문 채 유유히 사라진다.
짐을 풀고 명하와 저녁을 먹으러 간다. 일요일 저녁, 허름한 후미진 동네에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다. 발길 가는대로 우리로 치면 왠지 1990년대의 청계천 8가가 떠오르는 동네를 걷는다. 시간이 멈추어 선 느낌이 든다. 후미진 마을의 정적 속에 시계바늘이 멈춘 느낌이 든다. 삶이 나를 미래로 데리고 가지 않다는 감각.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이런 말은 변기에 버려버리고 지금 이 순간이 조용하고 고용하게 직조되고 있다는 감각.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기차깃 옆 오막살이 같은 곳에 문을 연 한 식당을 만난다. 어릴적 동네 변두리에서 100원에 12개의 떡볶이를 퍼주던 작은 분식집 같은 곳이었다. 거기에서 몇몇 동네 친구들이 땅콩에 오징어를 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사장님 저녁 먹을 수 있어요?”
“물론. 여기 메뉴판.”
“저희 포르투칼어 못하는데, 혹시 영어로 된 메뉴판 있어요?”
“주변을 봐. 여기서 영어 쓸 수 있는 놈이 얼마나 될 것 같아.”
“네..”
메뉴판을 앞에 두고 구글을 켜 하나하나 검색해본다. 그리고 정어리구이와 바깔라우, 동네 맥주를 시킨다. 맥주는 골이 띵할 정도로 차가운 맥주였고, 정어리구이와 바깔라우는 서울의 생선구이집만큼 맛있었다. 허름한 리스보아의 동네, 적막한 저녁, 고향을 멀리 떠나온 중년의 동양인 남자와 여자, 테이블 위의 맥주, 그저 그런 인생, 그저 그런 저녁. 사소한 것으로 존재하면서 행복을 생각할 줄 아는 여유와 즐거움. 그러면 됐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