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벨렝지구, 나는 결국 내가 아닌 것들이다.

by 오윤
나는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는 무의식의 신선한 바람을 얼굴에 한껏 맞는다. 풍경을 본 다음 눈꺼풀을 닫고, 바람을 느낀 다음 내 얼굴을 잊는다.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달라진다. 나를 보는 것은 나를 나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 나는 거의 미소를 지을 뻔했다. 나 스스로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시화된 무처럼 텅 비고 드넓은 창공에, 전체 우주로부터 남겨진 작은 구름 한 점이 떠 있다. (Fernando Pessoa, 1999/2014, p. 705)


오전 10시. 햇살이 녹색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베르사유 파스텔리아 카페에 앉아 있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리스보아에서 월요일 아침을 연다. 살다냐(Sladanha) 역 앞에 자리한 이 카페는 100년이 넘는 시간을 머금고 있다고 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수백 종류의 과자들이 전시되어 있고, 할머니부터 아이까지 난 오늘 무슨 과자를 먹겠어, 고심하며 쿠키 1~2개와 커피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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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학원같은 루시아 아주머니의 집을 빠져나와 베르사유 카페까지 오는 길은 허름한 동네, 기찻길, 파란 하늘, 정원, 흰 타일, 빨래줄, 봄디아를 스쳐가는 길이었다. 신선한 바람을 한껏 맞으며 도심을 걷는데 빗질을 하는 한 포르투칼 남자의 등이 불현듯 앞에 나타난다. 순간적으로 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솟구친다. 파란 하늘의 월요일 아침, 그 배경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평균치에 해당하는 애정이 가슴 한 켠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주일을 마치고 월요일 아침 일을 시작한 가장이라는 진부한 일상성, 가난하지만 행복한 그의 가정에 대한 상상, 그의 삶에 불가피하게 침투해 있는 기쁘고도 슬픈 이야기들, 그리고 옷으로 감싸인 그의 등에서 풍기는 소박함. 이런 느낌이 아침 산책 길 위에서 빚어지는 거다. 월요일 아침, 누군가의 일상인 공간을 낯선 이방인으로 낯선 여행객으로 걷다보면 기도하는 순례자의 마음이 된다. 그리고 누구든지 보편적인 층위에서 애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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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보아는 소소하고 사소한 색채의 도시라는 생각을 한다. 촌스럽지만 투박하지 않은 색깔, 사람, 풍경이 스치듯 다가왔다 무심하게 지나간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풍경은 누군가의 움직임과 멈춤이 만들어낸 색채들이다.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고, 빨래를 너는 사람들. 길을 걷다 멈춘 사람들. 누가 먼저 봤는지는 몰라도 누군가 ‘어이 친구!’ 부르면 상대방이 활짝 웃으며 ‘봄디아’하고 응수한다. 그리고 가던 길을 멈추고, 널던 빨래를 놓아둔 채, 한참을 서로 응시하며 웃고 떠든다. 인생이라는 게, 월요일 아침이라는 게 부지런히 앞으로만 가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면서 삶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일 수도 있구나,하는 어떤 감각이 울렁거린다. 이 감각을 만들어낸 거리의 배경에는 테주강과 언덕과 전차와 파두와 페소아와 아줄레주가 있고, 그 배경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지만 유쾌했다.


특히 이곳 카페와 식당에서 만나는 웨이터들의 표정은 가볍고 자유롭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고, 유머와 유쾌함을 잊지 않는다. 그들의 집에는 자주 회오리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총총거리는 가벼운 발 위에는 묵직한 삶의 무게와 그림자가 있겠지만, 그 그림자를 뒤로 한 채 나온 일상의 영역에서 이들의 손짓, 발짓, 움직임, 목소리는 묘하게도 가볍고 밝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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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나와 굴벤키안 박물관으로 향한다. 아르메니아 출신 사업가 칼루스트 굴벤키안이 노년에 포르투칼에 정착하면서 평생 수집한 수집품을 모아 놓은 곳인데, 그가 모은 수집품을 보다보면 그가 자신의 고향을 참 사랑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라비안나이트의 배경에 나올법한 소품들, 양탄자, 촛대, 도자기들이 이베리아 반도 끝자락, 리스보아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박물관도 있고 미술관도 있고 맛있는 카페테리아도 있으며, 멋드러진 정원과 오솔길도 일품이다. 특히 카페테리아에 줄을 서 음식과 음료를 주문한 후 테라스에 앉아 리스보아의 철이, 영이, 철수와 함께 점심을 먹고, 미술관 옆 잔디에 앉아 라파엘과 조세와 더불어 일광욕을 즐기다보면 뭔가 리스보아와 한 걸음 가까워지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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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벨렝지구로 향한다. 버스는 리스보아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이동한다. 벨렝지구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중심으로 드넓은 공원과 테주강을 배경으로 한다. 우리로 치자면 여의도를 배경으로 한 한강 고수부지 정도 되는 느낌인데, 한강고수부지에 세월의 흔적이 깊게 묻은 수도원, 세월의 흔적을 넉넉하게 품어내는 거대한 예수상, 수도원과 예수상을 잇는 드넓은 공원과 높고 긴 다리가 한 도화지 위에 그려진 곳이라 보면 되겠다. 원래는 벨렝지구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의 상징이자 포트투칼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고 모든 여행책이 극찬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들어가려 했는데 월요일은 휴관일이었다. 휴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여행도, 삶도 늘 기획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니고, 그럴 때면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다음 스텝에 좋다고 생각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드넓은 공원과 테주강변을 걸어 벨렝탑으로 향한다. 바람이 분다. 대서양의 태양이 따갑다. 사소한 움직임, 소소한 바람, 따뜻한 빛의 변화, 돌돌 말린 마른 잎새,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와 발걸음, 천천히 흐르는 흰 구름. 천천히 흐르는 요트, 벨렝탑 밑에서 테주강에 발을 담근 아이들, 잔디와 벤치와 계단에 앉아 오후 한나절을 보내는 사람들. 나에게 속하지 않은 이 모두가 내 둔감한 사색을 사라 잡아 어제와 다른 나를 만드는 느낌이 든다. 이 풍경을 배경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흘러갔을까?


난 왜 이 대륙의 끝에 오게 된 걸까? 굴벤키안 박물관에서 만난 수천 년 인간의 삶과 문화를 떠올리다보면, 대항해시대 테주강의 방어 요새였고, 19세기초 자유주의자를 투옥하던 지하 감옥이었다는 벨렝탑을 바라보다 보면, 지금 여기의 삶은 하나의 점일 뿐이고, 그래서 조금은 가볍게 이 시간을 즐겨야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저 멀리 서 있는 바스쿠 다 가마를 중심으로 행해졌던 동방 항해의 성공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세워졌다는 수도원과 이를 기념하는 기념탑을 바라보며 그 시절의 작은 점들을 생각하게 된다. 누가 알았을까? 자신의 움직임, 항해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건이 될지.. 매번 소소하고 가볍지만 새로운 항해를 떠나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어린 아이같은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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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존재가 된다는 의미다. 어제 느낀 것처럼 오늘도 똑같이 느낀다면 그것은 느낌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 하루의 모든 내용을 칠판에서 지워내는 일,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을 사는 일, 우리 감정의 처녀성을 반복해서 부활시키는 일, 그것이 오직 그것만이 존재와 소유의 가치가 있다... 도시의 높은 언덕들! 거대한 건축물들을 붙잡아 더욱 거대하게 만드는 가파른 비탈들, 계단 모양으로 쌓여 뭉쳐 있는 갖가지 색의 건물들, 그림자와 화염으로 이루어진 햇빛이 건물들을 모아 무늬를 짠다. 너희는 오늘이다. 너희는 나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너희를 보고 있기 때문에. 내일 너희는 내일의 내가 될 것이다. 두 척의 배가 엇갈려 지나갈 때 서로 알아차리지 못한 그리움을 뒤에 남겨두듯이, 뱃전에 기대선 나는 그렇게 너희를 사랑한다. (같은 책, p. 186)"


그렇게 나는 벨렝탑에 앉아 새롭게 마주한 너희를 사랑한다. 나는 결국 내가 아닌 것들이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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