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저렴한 메뉴를 선택해서 식사를 했고 다 먹은 뒤에는 직접 만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식당에 있는 다른 손님들을 관찰했다. 그것은 의심하는 시선이 아니라 매우 큰 호기심을 담은 시선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연구해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다른 인간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태도였는데,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이나 외모를 기억 속에 새겨두겠다는 뜻은 없어 보였다(Fernando Pessoa, 1999/2014, p. 18).
포르투칼의 이미지는 강렬하지 않다. 포근하다. 따뜻하다. 순수하다. 여기엔 강렬한 색채나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지난 여름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흐릿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거리, 식당, 호텔, 공원을 관찰했다하지만 기억 속에 남은 이미지는 거의 없다. 그만큼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릴 적, 꿈에서, 어디선가 마주한듯한 기분 좋은 풍경. 낯설지만 익숙한 꿈의 무대. 잊었던 느낌에 대한 탐닉.
바람, 하늘. 강. 구름, 올라(Olá)~
내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하며 인사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중년이 되면서 하곤 한다. 어떻게 인사하고 기도해야 하는 걸까?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어느 선배가 자신의 기도 방식을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이 기도문은 내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됐다.
그래, 삶은 불쌍한 것이고,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었고, 이럴 때는 이 기도문을 조용히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리스보아를 걷는다는 것은 이 기도문을 읽는 행위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리스보아의 거리를 걷다보면 과거의 잃었던 이웃사촌도 만나게 되고 골목에서 바보 형과 착한 누나도 마주하게 된다. 빨래를 너는 아주머니와 베란다에서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는 할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포르투칼은 그런 땅이다.
“나를,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를 조용하게 읊조리게 되는 땅.
Lisboa. 고대 페리키아어로 좋은 항구라는 뜻이다. 리스보아 사람들은 한 번도 이베리아 반도의 드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스페인을 열망하지 않았다. 피레네 산맥 너머의 프랑스나 이탈리와 같은 유럽의 중심부를 갈망하지도 않았다. 그들 앞에는 바다가 있었고,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대륙의 논리와 달랐다. 가깝게는 북아프리카의 서해안을, 멀게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돌아가는 행로를 개척한다. 그 시잠점이 리스보아이었다.
바다를 상대로 하는 자는 하루하루 목숨을 걸어 살아간다.
카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이게 몸에 벤 종족들이라는 거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거기서 고기를 잡고, 상품을 교환하고, 전쟁을 벌인다. 언제 어떻게 만나고 헤어질지 모른다. 거대한 바다를 배경으로 수없는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고, 수없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그런 일상이 중첩되면서 리스보아, 항구만의 독특한 정서가 만들어진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사우다드. 그리움, 향수,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카르페디엠.
이 달콤 쌉싸름한 감정 때문일까? 리스보아는 빵과 과자의 도시이기도 하다. “달콤함”을 삶에 충전시킬 베이커리들과 카페들이 시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 집에 하나 건너씩 빵과 과자를 취급하고, 과자와 빵이 담긴 진열장을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울이 커피의 도시라면, 리스보아는 스낵의 도시인 거다.
리스보아와 관련한 여러 책자를 보다보면 색다른 과자와 빵을 파는 수많은 카페들을 마주하게 된다. 리스보아에서 처음 맞이한 아침, 창문을 활짝 여니 호시우 광장 주변으로 동서남북 카페들이 즐비했다. 맥도날드부터 시작하여 역사와 정통을 자랑하는 카페 니콜라, 파스텔라리아 수이사(Pastelaria Suica)까지. 카페 니콜라는 시인 마누엘 보카즈(Manuel Maria Barbosa du Boncage)가 자신의 거실처럼 이용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여행책에 쓰여져 있다. 리스보아의 힙한 이야기, 트렌드, 소식을 듣기 위해서는 니콜라에 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니콜라는 지금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북적북적 수많은 사람들로 분주하다. 그러나 여전히 이곳이 힙한 공간인지는 잘 모르겠다. 별로 그래보이진 않았다.
카페 니콜라의 맞은편에 위치한 파스텔라리아 수이사(Pastelaria Suica). 수이사가 스위스를 의미한다고 하니 이곳은 스위스 과자점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자유정신의 상징으로 읽히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20세기 오랜 독재 정권 시절, 반대 운동을 조직한 주된 아지트 중 하나였다는 거다. 독재타도, 반정부를 외치던 스위스 과자점 옆에는 지하철이 생겼고, 현재 이 과자점은 그냥 지하철역 앞의 허름한 카페 정도로 보인다. 한때 힙한 이야기가 넘쳐나던 공간도, 한때 자유정신의 상징이었던 공간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한 감각과 뿌연 이미지만 남는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사람은 많다.
스위스 과자점에서 왼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호시우 광장 동북쪽 귀퉁이로 돌아가 보면 5대째 운영 중인 작은 바가 나온다. 리스보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바, 진지냐라는 곳인데 이 공간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1유로를 내면 허름한 테이블 뒤에 서있던 할아버지가 무심하게 종이컵에 진지냐를 따라준다. 술맛은 촌스럽게 농밀하다. 종이컵에 무심히 담긴 촌스러운 농밀함을 원샷하면 나른한 졸음이 쏟아진다. 시차적응이 덜 된 채, 리스보아의 나른한 빛깔 위를 걷다 진지냐 한잔을 마시면 호텔로 잠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단잠이 쏟아지는 거다.
첫날 오후, 나는 그녀와 함께 호시우 광장에서 코메르시우 광장까지,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테주강을 따라 주제 사라마구가 묻힌 곳까지, 거기에서 페소아가 자주 갔던 카페까지 걷고 걷고 걸었다. 중간 중간 벼룩시장을 만나기도 했고, 카페 영업을 준비 중인 20대 흑인 여성과 잠깐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주황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반가운 얼굴로 맥주와 해물밥을 전해줬고, 멋들어지게 턱수염을 기른 아랍계 청년은 리스보아 특산품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 사이로 테주강이 흐르고, 테주강 한 켠에서 턱수염이 멋드러진 할아버지는 돌을 쌓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리스보아의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을 뒤로 한 채 진지냐의 촌스러운 농밀함에 빠져 꿈의 세계로 천천히 이동 중이다.
시차 적응이 아직 안된 첫날 오후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눈이... 감긴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