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리 높이 상승해도, 아무리 깊이 하강해도, 우리 자신의 감각을 넘어서 더 멀리 나갈 수는 없다.... 우리들 자신의 감각과 상상력을 이용해 스스로를 다르게 하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결코 다른 누군가가 되지 못한다... 세계의 모든 대양을 다 다녀본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은 단조로운 자기 자신을 돌아다닌 것에 불과하다.(Fernando Pessoa, 1999/2014, p. 252)
신트라의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늘은 파랗고, 주변은 고요하다. 세상의 시끄러움과 무관하듯 이곳의 시간은 느리고 조용히 흘러간다. 신트라역에서 버스를 탄다. 호카곶, 세상 끝으로 가는 버스. 버스는 2차선을 따라 마을 곳곳을 스쳐지나간다. 끝으로 가는 길은 곧게 뻗은 직선이 아니다. 구불구불, 산을 넘어 몇 개의 작은 마을과 시골의 투박한 버스 정류장을 지난다. 내가 원해서 타게 된 버스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시간. 버스의 속도도 방향도 바꿀 수 없고, 운전사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가는 길이 얼마나 꼬불꼬불 휘청휘청 될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버스가 호카곶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짙어진다. 버스가 어느 한 정류장에 정차한다.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 멀리 보이는 풍경 속에 여기가 호카곶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세상 곳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감정들과 이야기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에서 내리자 ‘어이 친구들’하고 반기는 것은 바람이다.
처음 포르투갈 여행을 생각할 때, 세상의 끝 호카곶을 떠올리며 내가 여행에 부여한 의미는 이런 거였다. 세상 끝에서 중년 이후 인생 후반전을 맞이하자. 뭔가 그럴싸했다. 그래 대서양을 마주하며, 세상 끝에서 지나간 과거를 잘 보내주고,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는 거야.
그러나 호카곶에 도착하자마자 이 생각은 곧장 머리 속에서 지워졌다. 무슨 새로운 미래, 그냥 여기는 추웠고, 대서양의 멋진 풍경은 구름에 갇혀 잘 보이지 않았으며, 그녀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세상의 끝에는 하늘과 절벽과 바다와 구름과 추위가 얽혀 있다는 사실만 마주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카곶에서 찍은 사진을 마주하다보면 일상 속에 막혀있던 감각과 상상력이 열리면서 어제의 나와는 조금은 다른 내가 되었다는, 되겠다는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누군가와의 관계 때문에, 어떤 이들의 태도 때문에 화가 나고, 그 화가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고 느낄 때, 그 분노가 내 평화로운 감정을 파괴하고 나에게서 잠을 빼앗아간다고 느낄 때,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호카곶의 사진은 영혼을 낭비하지 않게 도와줄 나침판이 되곤 한다. 누군가 때문에 화를 내고, 잠을 빼앗기고, 평화로운 감정이 파괴될 때 나는 그 누군가의 권력 아래 놓인 것이고, 그 권력에 패배한 거다. 이때 호카곶의 사진을 보다보면 이 관계에서 오는 분노가 내 삶에 독이 되는 게 아니라 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권력에 패배하는 게 아니라 그 권력을 넘어서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곳에서 마주한 바람, 구름의 감각으로 상상하게 된다. 나를 억누르던 모든 압제와 요구를 쓸어버릴 것. 거센 바람에 스스로를 온전히 맡기고 그 바람과 하나 되어 아무 것도 아닌 이곳의 관성과 요구와 압제를 훌쩍 넘어설 것.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이곳에 오기 전 나도, 그녀도, 그해 여름 상상 속의 드라마에서 타인에게 복수하는데 많은 힘과 시간을 낭비했다. 누군가는 시기했고, 원망했고, 미워했다. 왜 우리한테 이러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응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불가피하게 대응하다보면, 나 역시 비슷한 인간이 되는 느낌이 들고, 저 새끼를 죽여야겠다는 분노와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게 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다보면 스스로가 파괴되고 영혼이 한 움큼 낭비된 느낌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 세상 끝, 호카곶의 바람, 구름, 절벽, 바다는 그 모든 걸 내 마음 속에서 쓸어버리라고, 그 이상한 관계로부터 해방되어 평화를 얻으라고, 찌질하고 이상한 세상과 관계에 방해를 받지 말라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았다.
“추워~ 가자.”
거센 바람에 어깨를 움추린 그녀가 옷소매를 잡는다. 비행기를 타고 15시간,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오기 위해 좁은 의자, 맛없는 기내식, 무료함을 버텨낸 이유를 단 한 마디로 말하면 호카곶이었다. 막상 그곳에 도착하여 머문 시간은 30분. 삶은 그런 게 아닌가! 삶에서 우리는 자주 의미와 목표를 푯대로 삼지만, 그건 막상 도착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에, 그래서 인생이라는 여정이 부조리하며 고귀하며 재미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후 1시. 호카곶을 출발한 버스는 30분 후 카스카이스 해변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카이카이스 해변에서 무어인의 후예로 보이는 호마리오가 담요를 팔고 있다. 그는 모래사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이 담요가 이 해변에 얼마나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며 실용적으로 유용한지를 시연하고 있다. 모래사장 위 산책로를 걷던 우리는 호마리오의 시연을 멀찍이 바라보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시연하던 담요를 둘둘 말아 어깨에 걸치더니 우리에게 다가온다.
“안녕~~ 오늘 날씨 좋지?”
“응 좋아. 담요 이쁘네.”
“이쁘기만 한게 아니라 오늘 같은 날에는 딱이야. 한 번 볼래?”
그는 수많은 종류의 샘플을 모래사장 위에 펼쳐놓는다.
“자 골라봐. 어때?”
“가장 왼쪽 것이 가장 좋은데..”
“보는 눈이 있어. 자 10유로...”
“10유로?”
싸다. 거래는 그렇게 완성됐다.
나는 그가 있는 모래사장을 향해 지폐 한 장을 던졌고, 그는 내가 있는 산책로를 향해 담요 한 장을 던졌다.
“탁월한 선택이었어. 페르시아 담요와 함께 카스카이스에서 멋진 오후를!!! 아름다운 오후야.”
그는 펼쳐 놓았던 담요를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모래사장 저편으로 사라진다.
해변으로 내려가 적당한 자리에 10유로자리 페르시아 담요를 편다.
오후 1시 30분,
우리는 세상의 끝, 대서양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해변 한 자락에 누워있다. 호카곶이 거센 바람, 짙은 안개, 가파른 절벽, 그리고 대서양을 마주한 십자가가 어우러진 공간이었다면, 거기서 버스로 30분 정도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온 카스카이스 해변은 따뜻한 바람, 파란 하늘, 부드러운 모래사장, 그리고 대서양을 마주한 다양한 색깔의 피부와 수영복과 탄생일과 인간들의 이야기들이 버무려진 공간이었다.
호카곶이 숭고하고 장엄하며 위엄있는 공간이었다면 카스카이스는 따뜻하고 유쾌하며 자유로운 공간이다. 우리의 담요 뒤에 자리 잡은 한 아주머니는 비키니를 벗고 반라로 누워 일광욕을 즐긴다. 바다로 뛰어들어간 이베리아의 연인은 파도를 타며 깊은 키스를 나눈다. 꼬맹이 몇 명이 우리 앞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중이다. 그 사이로 호마리오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여전히 담요를 파는 중이다. 이곳에 있다 보면 아주 단순한 진실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한 배에 탄 공동 운명체다. 우리가 모르는 항구를 떠난 그 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항구로 향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체여행자들이 그렇듯이 서로에 대해 예의를 지키고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같은 책, p. 367)”
예의를 지키고, 호의를 베풀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진심으로 간절하게 염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상쾌한 바람, 따뜻한 태양, 파란 하늘, 그리고 꽉 잡은 손. 추상적인 단어들, 관념적인 단어들은 먼지 쌓인 책장 위에 놓아두고 진심으로 간절하게 염원하는 것은 이뿐이다.
나른한 졸음이 쏟아진다. 한 낮의 고요와 평화가 내려와 담요 주변을 덮는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사라질 것이다. 한때의 감정, 한때의 위치, 한때의 욕망, 한때의 존재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거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우리 모두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존재함을 모르는 채로 존재할 것이고, 죽기를 원하지 않는 채로 죽게 될 것이다. 때론 불안하고 때론 불쾌하고 때론 분노하겠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태양은 뜨고, 구름은 흘러가고, 우리는 사라질 것이다.
“삶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받은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고양이의 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자는 행복하다. 태양이 비치면 빛을 좇고 햇빛이 없으면 어딘가에 있는 온기를 찾아간다. ,, 낯선 삶을 지켜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자는 행복하다. 타인들의 인상이 펼치는 외적 연기를 경험한 자는 행복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자, 그 무엇을 위해서도 제약받거나 사용되지 않을 수 있는 자는 행복하다. 농부, 소설의 독자, 순수한 고행자, 이들 셋은 삶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같은 책, p. 405)"
일상의 삶은 자주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 그러나 어느 해변에서의 오후, 이것으로 충분하다.
여기는 카스카이스다. 구름. 구름이 흐른다. 바람. 바람이 적신다. 태양. 태양이 비친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