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평화를 위한 삶은 아름답다. 도루강.

by 오윤
위로를 주는 요소는 정말로 많다. 맑고 청명하며, 언제봐도 구름 한두점이 흘러가고 있는 저 멀리 푸른 하늘, 숲 속에서는 단단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도시에서는 5.6층에 널린 빨래들을 펄럭이게 하는 가벼운 바람, 날이 따뜻하면 따뜻함이, 선선해지면 선선함이 우리를 위로한다. 항상 어딘가의 창가에 서 있는 그리움의 기억이, 희망의 기억이, 신비한 미소의 기억이, 그리고 우리 존재의 문 앞에서 걸인처럼, 그리스도처럼 문을 두드리는 것들이 우리를 위로한다.(Fernando Pessoa, 1999/2014, p. 752)


렐루서점을 나와 어제처럼 <Leitaria da Quinta do Paço>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과 달콤한 에클레흐를 주문한다. 에클레흐 한 입을 베어 먹을 때 온 몸으로 느껴지는 달콤함,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날은 여행에서 기대하는 예외적인 에클레흐의 맛,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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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게 기억할만한 별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르투에 간다고 하자 한 선배가 추천한 현대미술관에서 오후 한 나절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신라면에 양파, 버섯을 잔뜩 넣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 기운으로 히베이라 거리를 관통하여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면 포르투의 옆 마을 빌라 노바 드 가이아가 시작되는데, 여기서 가장 높은 세라드필라드 수도원에 올라 해가 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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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다. 우리는 걸었고, 누군가에게 눈인사를 보냈고, 태양빛에 눈가를 살짝 찌뿌렸고, 큰 나무를 팔을 활짝 펴 감싸 안았고, 조용히 풀을 뜯는 소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었고, 붉어지는 하늘을 보며 흥분했다.


그 사이에 포르투의 어제를 담은 작품들을 미술관에서 구경했고, 작은 슈퍼마켓에서 거친 손으로 생수와 양파를 담아주는 아저씨와 인사를 나눴으며, 해가 기울어 가는 도루강을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잔디밭에서, 다리 위에서, 의자에서, 나무 그늘 아래서, 커피를 들고, 맥주를 들고, 음악을 들으며 감상했다.


“우리에게 아무 설명하지 않는 비밀이 진실이다.”

미술관 어딘가에서 발견한 문구다. 적어도 오늘, 이 시간 내가 발견한 진실, 아무도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은 비밀은 이런 거였다.

“평화를 위한 삶은 아름답다.”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인은 이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푸른 하늘, 청량한 바람, 넓은 공원, 작은 숲, 산책로, 농장, 한적한 거리, 이 배경을 아무 목적 없이 걷다보면 어느 순간 평화로운 기분이 되는 것 같다. 어느 정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배경에 동화되게 되고, 그러다보면 내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귀찮아지고, 그냥 걷고 걷게 된다. 아마도 평화란 이런 배경과 원칙 위에 성립하는 것 같다.


미술관에는 이런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상영 중이었다.

“네가 어느 편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네. 우리 모두가 죽고 죽인다는 사실 앞에서...”

수많은 역사적 배경 하에서 모두가 죽고 죽인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들 속에서 내편, 네편으로 갈리는 이념과 감정과 본능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편에 대해, 모두가 모두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비난하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잠깐 생각해본다.


포르투의 이 평화로운 날을 떠올리는 것. 석양이 지는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 현대미술관의 푸르른 공원을 천천히 걷던 시간을 떠올려보는 것. 세라드필라수 수도원에서 도루강을 내려다본 해질녁 풍경을 기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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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면 하나의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까?

“평화를 위한 삶, 평화를 빚어내는 풍경, 평화를 갈망하는 욕망은 아름답다.”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픽션에는 내 안의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같은 것이 표출되어 있다. 위대한 작가들은 이 기운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독약을 솜씨 좋게 처리해간다. 때론 희극으로, 때론 비극으로... 왜 그런 이야기들을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예의, 규범, 체면, 관계 등에 가려져 있지만 인간이란 본디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일 테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약자를 괴롭히고, 적을 죽이고, 강자를 시샘하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고... 소설이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멋들어지게 처리해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독소를 위로하고, 일시적으로라도 토닥이기 위해서일 거다.


그러나 이 토닥임이 좀 더 강력한 면역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좀 더 건강해져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맨날 책만 봐도, 맨날 드라마만 봐도 안 된다는 생각을 생뚱맞게 포르투의 도루강을 건너며 해본다.

어떻게 건강해질 수 있을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인생 후반전에서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고 포르투에서 마지막 날 내가 건져낸 잠정적 문장.

“평화를 위한 삶은 아름답다.”

이를 위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 쓴다. 읽는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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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기울어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포르투의 오래된 마을은 점점 더 붉어지고, 어두워졌다. 시야에 잡히는 것은 도루강, 붉어지는 하늘뿐이었다. 그 강 너머에 오래된 마을이 착 달라붙어 있다. 오래된 마을 사이로 시원한 바람과 붉은 태양 빛이 지나간다.

“해가 지는 저 끝이 보이지?”

“저기가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을 것 같아. 아무도 저 너머의 일을 몰랐던 거잖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그러다보면 지금 이곳이 세계의 중심인 거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여기가 세계의 중심이 아님을 온 몸으로 인식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분다. 해가 지고, 세월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우리는 그 사이에 달라붙어 있는 하나의 점이다. 뭔가 평화의 기운이 고조됨을 느낀다.


“해졌네. 좀 걸을까?”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수도원을 내려온다. 건너왔던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너간다. 그렇게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날이 조금씩 조금씩 저물어간다.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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