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이 굴거나 어쩔 줄을 모르거나 혹은 뭔가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생을 살면서 그런 불운한 경우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내면의 낙천적인 빛을 발휘하여 그것이 불행이 아니라 일종의 여행병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 세계의 여행자다. ... 우리는 어차피 길 위에 있는 것이니 도중에 만나게 되는 이런저런 불편, 혹은 고르지 않은 길바닥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생각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그저 나 자신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한들 마음이 편안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너무 따지지 않는다. ... 위로를 주는 요소는 정말로 많다. 맑고 청명하며, 언제봐도 구름 한두 점이 흘러가고 있는 저 멀리 푸른 하늘, 숲 속에서는 단단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도시에서는 5.6층에 널린 빨래들을 펄럭이게 하는 가벼운 바람, 날이 따뜻하면 따뜻함이, 선선해지면 선선함이 우리를 위로한다. 항상 어딘가의 창가에 서 있는 그리움의 기억이, 희망의 기억이, 신비한 미소의 기억이, 그리고 우리 존재의 문 앞에서 걸인처럼, 그리스도처럼 문을 두드리는 것들이 우리를 위로한다. (Fernando Pessoa, 1999/2014, p. 752)
리스보아에서 마지막 날 저녁. 15박 16일의 포르투칼 여행의 마지막 밤. 유로스타 호텔에서 마지막 글을 남긴다. 다시 돌아온 리스보아는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있었다. 오후 3시 체크인을 한 호텔은 5성급 히스토리칼 호텔. 테주강가 광장의 지척 거리에 있는 곳,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데 두 번째 온 거라고 모든 게 익숙한 거다. 그러나 익숙한 거리와 달리 마지막 이틀 동안 느낀 리스보아는 처음 3일동안 느낀 리스보아와 사뭇 느낌이 달랐다.
처음 리스보아가 페소아, 불안, 사우다드 등 리스보아에 도착하기 전 얻은 정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면 다시 돌아온 리스보아는 평화, 자유, 여유의 공간이었다. 한편에서는 마리아나를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이 목소리가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마리아나’
‘노우~’
‘해프어나이스데이’
롤러스케이트를 탄 레즈비언이 춤을 추면 거리를 지나가던 꼬맹이들이 따라 춤을 춘다. 언니, 오빠,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흐르면 몸이 움직이고 함께 그 공간의 리듬을 탄다.
‘내 가게 앞에서 시끄럽게 하지마!’
한 가게 주인이 나와 롤러 위에 서있는 레즈비언을 쫓아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야유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는 레즈비언의 손을 옆 가게 웨이터가 잡는다.
“야 오늘은 우리 가게 앞에서 추는 게 어때?”
마리아나를 팔던 친구들도, 아이들도, 관광객들도 롤러 위의 올라 선 레즈비언이 주도하는 버스킹에 함께한다. 리스보아는 그런 곳이다.
해질 녁 테주강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코메르시우 광장에 앉아 있었다. 유람선이 지나가고, 강이 흐르고, 연인들의 사랑이, 가족들의 웃음이 ,잘생긴 청년의 고독이, 버스킹하는 아저씨의 기타 반주와 노래 소리가 시간의 풍경이 된다. 하늘의 색깔이 파랑에서 붉은색으로 붉은색에서 보라로 보라에서 검은색으로 변한다. 하늘 색깔이 짙은 검정으로 변했을 때 우리는 광장에서 일어났다. 광장 왼편에 눈에 띄는 야외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주문한다. 웨이터는 유쾌했고 건배를 외치는 사람들은 저 아프리카의 청년부터 알래스카에서 온 듯한 어르신까지 실로 당야하다. 그 사이로 아이들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뛰어 다니고 있고, 유머차를 밀려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밤 11시에 말이다. 인생의 양지와 같은 하루. 누군가 이 장면을 그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눈을 떠 조식을 먹으러가니 한 할아버지 웨이터가 무서운 얼굴로 패스워드가 뭐냐 묻는다. 패스워드? 그게 뭐냐고 당황해하니, 이 할아버지 갑자기 함박웃음을 지며 ‘봄디아’하고 외친다. 호텔 곳곳에서 굿모닝 하와유 봄디아 오브리가도가 넘실대고, 거리를 나서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시아두 거리의 고서점을 지나 리스보아 대지진에 무너진 카르모 수녀원에 도착해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한 공간의 누적된 시간이 대지진으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 그게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카르페디엠, 이 말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생각해보면 지난 15일은 카르페디엠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것,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페소아와 주제 사라마구와 테주강을 마주한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바람 태양 하늘이 있었다. 다채로운 색깔과 무늬들. 리스보아 신트로 호카곳 카스카이스 오비두스 나자레 코임브라 포르투 아베이루 코스타노바 다시 리스보아. 15일의 여정에서 내가 얻은 게 뭘까, 생각해본다.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다채롭게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유머러스하게 좀 더 당당하게 앞으로 1년을 카르페디엠하면 살아야겠다.
포르투갈~ 오브리가도~~ ^^
<참고문헌>
Pessoa, F. (1999). The Book of Disquiet. 배수아(2014). 불안의 서. 통영: 봄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