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이름을 과학계에서는 이렇게 명칭한다고 한다.
SARS-CoV-2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거야? (어색해.)
2002년 출현한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
일명 사스 코로나바이러스와 구조가 유사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스와 구조는 유사하지만 전파력은 (지금 매일 매일 확인하는 것처럼) 상대가 안된다. 100~1,000배 가량 높다.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허무해라~~)
다만 지난 봄, 여름을 거치며 경험적으로 알게된 팩트.
하나. 거리두기가 느슨해지면 감염자 수는 늘어난다.
둘. 초반 특이증상이 심하지 않다. 그래서 걸어다니는 감염자가 많다.
단순한 사실 몇 가지를 모아 이야기하자면,
초반에 크게 아프지 않아 걸어다니는 보균자가 많고!
우리들의 삶 자체가 도시를 중심으로 집중해 있기 때문에(거리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전파력이 높지 않으려야 그러기가 힘들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도시보다 시골, 세련됨보다 촌스러움, 밀도보다 여유, 스펙타클보다 심심함을 대표하는 뉴질랜드가 전 세계 최초로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데는 국가의 발빠른 대처도 큰 역할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기에는 적합한 문명적 토양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숙주로서 사람들이 너무 듬성듬성 있단 말이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파력만 높은 게 아니다. 카멜레온, 변신의 귀재다. 자기 복제는 놀랍게도 바이러스 세계에서 단순 복붙(복사+붙이기)이 아니다(요건 나중에 좀 더 설명하겠다). 유전정보를 바꿔가며 다양한 변이형태를 나타내곤 한다. "어이~요것 좀 복사해와." 그래서 복사했더니 원본과 다른 이야기가 새겨져 있는 거다. 그래서 치료제나 백신 개발이 쉽지 않다고 한다. 언제 독종이 생겨날지 알 수도 없다.
전파력도 높고, 변신의 귀재인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으로 대이동을 감행할 때, 그러니깐 갑자기 열이 올라 선별진료소를 방문해야 할 때를 상상해보자. 이때 우리의 몸은 하나의 전쟁터다. 숙주 대이동을 감행하려는 바이러스와 이를 막고자 하는 면역 세포 사이의 격전이 일어나는 거다.
그 과정을 좀 상상해보면, 일단 공기 중에 부유하거나 손잡이, 수건, 휴대폰, 의자 등에 잠자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코나 입을 통해 유입된다. 수가 적다면 면역세포들의 방어막을 뚫을 수 없다. 내 몸에 공존하는 면역 세포의 힘이 굉장히 셀 경우 이 역시 전진 앞으로가 쉽지 않다(여기저기서 면역력을 높이라고 이구동성 말하는 게 바로 이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수의 바이러스가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와 공격한다면? 설상가상~~ 내 안의 면역세포 힘이 세지 않다면? 방어막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몸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바이러스와 면역 세포의 전쟁, 여기에서 인간의 몸은 하나의 전쟁터에 불과하다(주인공도 경쟁자도 아닌 그냥 배경이자 종속변수). 이 전쟁에서 바이러스가 이긴다면 인간의 몸은 숙주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바이러스는 다음 숙주로의 이동을 준비한다. 물론 전쟁에서 이긴 바이러스 장군이 “이제 다시 이동을 준비하지!”라고 부하들의 마음을 다잡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바이러스를 움직이는 원시세계의 정령이 이동을 명령할 때, 바이러스는 스스로 이동을 할 수 없으니깐 숙주인 인간을 조정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원시의 세계에서 이런 사례는 많다. 가령 요층은 긁게 해서 퍼뜨린다는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인간조정 방법을 진화시켰다. 콜레라는 심한 설사를 일으키는 수인성 전염병이고, 말리리아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법을 사용한다(Moalem, 2007/2010, p. 144). 같은 맥락에서 코로나 19 역시 감염자에게 기침을 하게 하거나 콧물을 흘리게 하고, 사람들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모종의 방법을 유도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간도 멍하니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인간을 조정하려는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수천가지 방식을 인류는 진화시켜왔다. 재치기를 할 때 코와 입을 손으로 가리거나, 백신을 개발하거나, 상하수도 시스템을 진화시킨 것 등이 그 대표적 예일 거다. 일부 진화학자들은 인류가 낯선 사람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때문이라고까지 주장한다(같은 책, p. 148).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을 조정하려는 욕망 vs
인류가 바이러스의 조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
충돌하는 두 욕망의 기저에는 아마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명령이 있을 것이다. 이 전쟁에서 바이러스에게는 변이라는 무기가, 인간에게는 지능이라는 무기가 있다. 내가 볼 때 바이러스 대 인간의 전쟁이 제로섬 게임이라면 이 전쟁에 끝은 없다. 인간이 대응하는 백신과 치료제를 만든다면, 바이러스는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를 꾀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걸 누가 알겠쑤? 그냥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뭐가 최선인데? 누가 묻는다면 그 역시 답하기 어렵지만, 진화학자 폴 에왈드(Ewald, 1994)의 이야기는 나름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심플하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몸이 아픈 인간보다 건강한 인간 몸 속에 더 쉽게 살아남도록 만든다면?
그치. 퇴치나 박멸이 아니라, 그러면 되는 거지.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폴 에왈드 박사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 숙주(인간의 몸)를 파괴하는 수준(이를 병독성이라 한다)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를 바이러스가 한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이동하는 방식에 있다고 본다.
이동방식은 크게 세 가지.
첫째, 감기나 성병처럼 공기나 신체 접촉을 통해 감염이 가능할 정도의 근접 비행을 통한 방법.
둘째, 말리리아나 발진티푸스처럼 모기, 파리, 벼룩 등 중간 매개체를 운송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
셋째, 콜레라나 장피푸스처럼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해 이동하는 방법.
여기서 병독성, 숙주를 파괴하는 수준이 가장 낮은 것은 첫 번째 이동방식이다. 두 번째 운송수단을 이용할 경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숙주를 파괴하는 게 바이러스에게는 유리하다. 왜? 가만있어야 모기한테 물리지! 세 번째 운송수단을 이용할 경우 숙주가 일상적으로 취하는 물과 음식을 더럽게 하는 게, 바이러스에게 유리하다. 폴 에왈드(Paul Ewald)는 두 번째, 세 번째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첫 번째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질병의 파괴 수준이 적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운송수단을 이용할 경우 병독성을 멀리하는 진화압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심플하다. 숙주가 미생물을 품은 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숙주를 만나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Moalem, 2007/2010, p. 151~157). 함부러 죽이거나 몸져 눕게 하면 안되는 거다.
그렇다면 코로나 19의 병독성이 점점 더 낮아지는 방식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 19는 기본적으로 첫 번째 이동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말라리아나 콜레라 등에 비해 치사율은 낮다. 그러나 좀 더 독성을 낮추어 감기 수준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딱 한마디로
사회적 거리두기.
접촉을 피해 바이러스의 이동을 어렵게 해야 한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된다. 지난 몇 달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반복된 손 씻기, 기침예절 지키기, 마스크 쓰기, 사람 많은 곳 피하기, 아프면 집에서 쉬기, 밀집 행사 자제 등은 모두 바이러스의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기제가 되는 거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라는 적에게 대응하기 위한 미봉책이 아니라,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의 진화를 병독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이끄는 거의 유일무이한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숙주간 거리가 멀어져 이동이 어려워지면 바이러스는 한 숙주 안에 오래 머무는 방식, 공존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코로나 19 자체를 박멸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덜 해로운 존재로 진화시켜 나가는 길로 살살 유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어쩌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 유도등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단기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코로나 19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전제조건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진화의 속도, 병독성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코로나 19의 진화, 그것은 빨리빨리에 익숙한 기존 문명의 리듬감에 비추어 답답하고 느리게 이어질 수밖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를 새로운 문명의 시대로 이끄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걸 언컨택트로 부르든, 뭐로 부르든...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는 빼박의 디폴트값인 시대가 된 것이다.
<참고문헌>
Moalem. S. (2007). Survival of the Sickest. 김소영 역(2010). <아파야 산다>. 서울: 김영사
Ewald. P. (1994). Evolution of infectious disease. UK: Oxfo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