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관점에서 미디어 환경 변화를 말할 때, 우리는 자주 이런 그림들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디지털미디어를 통한 뉴스 이용 시간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조만간 텔레비전을 넘어설 거다(2018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텔레비전을 통한 뉴스 이용시간은 39분, 디지털미디어를 통한 뉴스 이용시간은 32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TV 뉴스를 소비하는 층이 어르신들로 수렴된다면(2019년 닐슨뉴스미디어리포트에 따르면 50대 이상이 TV 뉴스 시청자의 71%다) 디지털뉴스를 소비하는 층은 실로 다양하다!!! 그러면서 “디지털 퍼스트”를 이야기한다. 이제는 TV가 아니라 모바일로, 유튜브로, 디지털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런 말이 지금 한국 언론 환경에서는 한가해 보인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중심적인 담론이라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언론을 적폐라 생각하는 사람들, 언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는 거다. 여기서 신문, TV, 디지털 어디든 예외는 없다.
2019년 3월 페이스북은 미국에 있어 뉴스의 사막지도(News Desert)를 공개한다. 미국에서 지역 단위의 뉴스(언론)를 볼 수 없는 지역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위 그림에서 음영이 없는 지역이 뉴스의 사막지대로 이해하면 된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디지털의 물결 위에 신문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신문이 과도하여 문제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뉴스의 사막은 너무도 깊고 넓다고 생각한다. 2차원 평면에 그릴 수 없을 만큼...
이에 대해 미디어 오늘 이정환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종합 일간지(종합 뉴스)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걸 다 다루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제댈 다루지 못하는 딜레마, 성실하게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만든 콘텐츠 패키지가 통째로 버림받고 있는 현실을 지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뉴스를 읽지 않는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과 사실과 사실이 연결되는 방식, 실체적 진실을 구성하는 맥락이다. 디지털이라 해서 뉴스와 메시지의 본질이 달라질 게 없다.(이정환, 2019, 3월).”
난 이 말에 동의한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스스로의 직업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시민들은 기자들이 만든 기사콘텐츠를 통째로 모욕하고, 통째로 조롱한다. 최근 정치 커뮤니티 유머방에 올라온 게시글 중 하나다.
이게 씁쓸한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언론에 대한 모욕과 조롱은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실시한 38개 조사 대상국 중 2017년, 2018년에 이어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는 이렇게 분석한다.
“the media are not considered to be sufficiently independent from political or business elites.”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이지 않다고 시민들이 생각한다는 거다. 언론은 이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를 않는다. 대신 이 척박한 불신의 환경 안에서 누가 그래도 신뢰도 1등인지 2등인지만 주목할 뿐이다. 이런 등수는 참 부질없다. 신뢰도를 0점에서 10점으로 매겼을 때 1등은 jtbc (10점 만점에 6.18점), 2등은 ytn (5.97점), 3등은 kbs(5.83점)인데 “그래서 뭐?”라는 질문이 드는 거다.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매우 떨어지지만 이에 반해 자유도는 상당히 높다. 2002년부터 매년 180개 국가를 대상으로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가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자유 조건은 만족스러운 상황(Satisfactory situation)이다. 아시아지역에서는 가장 언론자유가 높고,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우리가 소위 자주 인용하는 해외 언론들에 비해서도 자유도가 높게 나타나는 상황이다.
언론의 자유도는 굉장히 높지만 신뢰도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책임지지 않는 자유, 이 자유에 사람들은 짜증을 내고, 분노를 하고, 조롱을 하고, 궁극에는 언론을 떠나는 거다. 시사인이 조사한 <2019년 신뢰도 조사>에서 유튜브가 기존 언론사를 모두 제치고 신뢰도 2위 (1위를 차지한 jtbc와도 오차범위 안이다. 한마디로 JTBC와 공동 1등이라는 것)를 차지한 것은 이 “책임지지 않는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짜증, 분노, 조롱의 대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는 이런 말을 전한다.
“지금 한국에서 언론에 대한 신뢰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언론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거나, 무슨 말을 해도 믿는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 배경에 고질적인 정파성과 상업성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난 100년간 형성되고 고착된 현재의 언론 생태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모델의 등장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서 자유롭고, 오랫동안 굳어진 취재·보도 관행에서도 자유로운 언론, 그리고 그런 언론이 모여서 네트워크를 이루고, 연대와 협업을 하는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다. 지금의 위기는 <한겨레> 같은 개별 언론사 단위로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공영방송도 마찬가지다. 진보언론과 공영방송을 포괄하는 연대와 협업이 절실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한겨레신문, 2019, 9, 17).”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연대와 협업을 위해서는 새로운 대안적 모델이 필요하고, 나는 이 모델이 공영방송, 공영미디어 테두리에서 태동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미디어 영역에서 유일무이하게 모든 시청자들이 공적인 이유로 돈을 지불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모델이 어떤 모델인지는 현장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어떤 모습이든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경향신문도, 한겨레도, 조선일보도, 네이버도, 디지털 언론도, 하물며 과거의 KBS도 2019년 현재 KBS의 친구가 아니다! 이들과 얼마나 멀어지느냐, 바로 거기에서부터 KBS 저널리즘의 내일이 달려있다!”
이른바 오랜 관행으로부터 안녕, 출입처에서 만난 동종업계 선배, 후배들과의 이별.
미워할 필요는 없더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필요한 거다.
물론~ 잘 안될 거다.
어디 이별이 쉽나요? 어디 만남이 쉽나요?
만나든 헤어지든 일단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는" 한국 언론 생태계에서 KBS 뉴스의 위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러 뉴스가 있지만 그중 <뉴스 9> 하나만 집중적으로 파보도록 하겠다. 이유는? 심플.
KBS 뉴스의 모든 특징은 <뉴스 9>에 담겨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