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일 저녁 집에서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무엇일까? <동백꽃 필 무렵>과 같은 미니시리즈? <나 혼자 산다>와 같은 예능? 천만에. 일일드라마와 저녁 메인뉴스다. 이 두 장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욕하면서도 즐겨본다는 거다.
“진짜 막장이네.”라고 하면서도 시청자들은 일일드라마를, 메인뉴스를 찾아본다. 이건 오랜 관성이자 습관이기도 한데 왜 그럴까? 인간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끈적하고, 꼬여있고, 기괴하고, 부정적인 이야기(소문)에 좀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수많은 종을 제치고 지구를 재패하게 된 계기를 언어적 능력에서 찾는데, 이른바 뒷담화를 까고 거짓말(허구)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수많은 이방인과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Yoval Noah Harari, 2015). “야 그 집 남편이 옆집 누구랑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에서부터 시작하여 “왕정, 신정, 검찰, 법원, 정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이야기 양식을 우리는 좋아하고, 또 인류는 오랜 시간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지금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미디어 역사에서 저널리즘은 “좋은 뉴스는 뉴스가 아니며, 나쁜 뉴스가 뉴스다”라는 정의 하에 작동해왔다. 이건 나의 정의가 아니라 <타임> 창업자 헨리 루스(Henry Luce)의 정의다. 일상에서 뉴스를 접하다 보면 이 말만큼 뉴스에 대해 명석판명하게 정의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규칙보다 예외를, 규범보다 예외를, 질서보다 무질서를, 질서보다 혼란을, 소통보다 갈등을, 조화보다 불협화음을 좋아하는 거다. 문제는 정도인데, 언론의 자유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디지털의 물결을 타고 기사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부정은 긍정을 압도하는 형국인 것 같다.
이 그림은 하버드대학 토머스 패터슨(Thomas E. Patterson) 정치학과 교수가 미국의 대선보도에 있어 긍정뉴스와 부정뉴스의 비중을 시계열적으로 살펴본 거다, 1960년의 경우 긍정 vs 부정 기사 76:24 이게 1980년대 들어 역전되기 시작하면서 2016년에는 긍정이 29%, 부정이 71%로 상황이 악화된다. 이 그림을 보다 보면 언론의 신뢰 위기는 “네거티브에 대한 강한 선호”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의심을 하게 된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실시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미국 역시 (우리보다 상황이 약간 좋기는 하지만) 38개 조사 대상국 꼴찌에서 7번째, 32위에 그치고 있다. 좀 더 경험적인 증거가 필요하지만 언론 신뢰도 순위와 부정 뉴스의 빈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것을 굳이 통계적으로 검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15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유세에서 “언론은 의회보다 신뢰도가 더 낮다. 한마디로 인간쓰레기(scum)”라고 비난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유권자들이 부정적인 메시지에 의존하는 언론을 믿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언어가 아니었나 싶다.
언론이 부정적 뉴스를 더 많이 보도하는 이유는 심플하다. 그래야 더 많이 보고, 더 잘 팔리고,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더 많이 보기 때문에 (또는 더 효율성이 좋기 때문에) 굳어진 뉴스 관행이라는 것은 이외에도 참 많다. 우리는 흔히 심층보도가 많으면 시청자들이 떠날 거라 생각한다. 리포트 길이가 짧아야 좋다고 생각한다. 익명 취재원의 활용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출입처 중심 / 보도자료 중심의 취재 관행 역시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9년 9월 17일 ‘퀄리티 저널리즘(Quality Journalism)을 위한 탐색: 한국 TV뉴스의 품질’ 컨퍼런스가 삼성언론재단 주관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배정근 교수 연구진은 2018년 한 해 동안 방송된 지상파 종편 메인 뉴스에서 월별로 이틀씩 총 24일간의 리포트를 추출해 리포트 길이, 심층성, 취재원의 숫자, 블러처리한 화면 등을 비교 분석한다. 이에 더해 2018년 뉴스 중에서 특별한 대형사건이 없었던 1주일간 발생했던 뉴스의 포맷을 BBC, NBC, NHK 뉴스와 비교하는데, 이 내용이 흥미롭다.
위에 표는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한 거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메인뉴스가 다루는 아이템수” “리포트 당 길이”, “취재원수”, “화면블러/음성변조 비율”, “심층성”에 있어 한국의 지상파, 종편 메인뉴스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거다. 매일 25~30개 내외의 아이템이 메인뉴스를 통해 방송되고, 리포트의 평균 길이는 2분 내외다. 1980년부터 이어진 한국의 방송뉴스 리포트 스타일은 1분 40초가량의 기자 리포트 안에 두 개의 사운드바이트(기사 내 인터뷰)가 등장하는 일종의 ‘도식’이 존재한다고 하는데(이재경, 2004), 여전히 이 도식은 유효하다. 한 기사당 취재원수는 BBC, NHK보다 떨어지는 평균 3~4명 수준이고, 이야기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양식의 하나로서 화면블러와 음성변조 비율은 BBC, NHK, NBC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의문+평가+비판점”까지 제시하는 심층기사 비율도 BBC, NHK, NBC가 50~60% 수준을 기록한다면 한국의 주요 채널은 35~40% 수준에 그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의 의심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관행들, 이른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으로, 뉴스룸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노력으로 구축되고 진화해온 TV 뉴스의 양식들이 한국 뉴스 장르에 대한 불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
2019년 1월 1일, KBS 뉴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저녁 뉴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7시 종합뉴스로 확대, 9시 메인뉴스로 심층성을 강화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 개편을 통해 영향력과 신뢰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슬프게도 영향력과 신뢰도 모두 상황은 모두 좋지 않습니다. 영향력을 가늠하는 시청자 규모는 2017년 330만 명에서 2018년 283만 명, 그리고 금년에는 267만 명으로 떨어졌고(닐슨코리아 제공), KBS 뉴스를 신뢰하지 않는다(신뢰하지 않는다 +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시청자는 2018년 4분기 50.0%에서 2019년 1분기 53.1%, 2019년 2분기 54.7%로 늘어났다(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제공).
KBS 뉴스의 신뢰도가 떨어지거나 거의 변화가 없다는 조사 결과는 매우 다양한 조사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입니다. 가령 <시사인>이 전국 성인남녀 1019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신뢰도 조사 중 “가장 신뢰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뉴스 9(4.6%)>는 JTBC <뉴스룸(10%)>,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6.0%)>에 이어 3위에 그쳤다. 프롤로그에서도 설명했지만 같은 조사에서 KBS의 뉴스매체로서 신뢰도는 JTBC, 유튜브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런 수치들을 보다 보면 생산자(기자)든 수용자든 습관과 관성을 바꾸는 일은 참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큰 변화가 없는 이상 <뉴스 9>의 신뢰도가 한국 언론에서 돌연변이와 같은 느낌으로 자리잡기는 앞으로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설상가상. 여전히 평일 저녁 시간 일일드라마와 함께 <뉴스 9>는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지만, 이 시청률도 장기적으로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이유는 아래 그래프에 나타나 있다.
KBS <뉴스 9> 현재 시청률은 10년 전 대비하여 절반 수준이고(비단 “뉴스 9”만 그런 것은 아니고, 지상파 채널의 모든 콘텐츠에서 공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경쟁력 하락 속도는 2016년~2017년 전후로 하여 매우 빨라졌으며, 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흐름을 1~2년의 변화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아주 긍정적으로 KBS 내부의 변화가 발빠르게 잘 이루어진다 해도, 그보다 빠르게 변하는 외부 환경, 가령 1) 모바일 등 디지털 미디어의 성장과 이와 맞물린 TV 시청량의 감소 2) 평일 저녁 시간대 여가시간 및 TV 이용 패턴의 변화, 좀 더 구체적으로 저녁 9시에서 8시로 한 시간 앞당겨진 뉴스 시청시간의 변화 3) KBS1 일일드라마의 경쟁력 하락(인접효과의 감소) 4) MBC, tvn, jtbc 미니시리즈의 9시대 전진 배치 등 주요 드라마, 예능의 격전지가 된 저녁 9시대 경쟁상황의 변화 등등이 내부의 변화를 잘 이끌어내더라도 예전만큼의 시청률 수치가 나올 수 없게 만드는 이유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한숨 쉴 필요는 없다. KBS 메인뉴스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단 하나의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저녁 9시가 되면 10가구 중 1가구 이상이, 전국 5000만 명 중 270만 명 이상”이 KBS1에 머문다는 거다. 이것은 <JTBC 뉴스룸>, <SBS 8뉴스>,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자 숫자를 다 합한 것에 버금가는 숫자이며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매우 높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더 중요한 사실은 뉴스라는 게 다른 장르와 달리 습관과 관성이 중요한 시청 동기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KBS는 단기적인 시청률은 보지 않고, 오로지 장기적인 신뢰 구축을 위한 진지한 노력, 가령 지역뉴스를 강화하고, 시청자 참여를 늘리고, 단순 팩트와 진영 논리를 넘어 맥락을 짚고 뉴스 이면을 파헤치는 지대를 넓히고, 감시와 비판을 넘어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는 솔류션 저널리즘을 지양한다 해도 시청률이 갑자기 폭락하는 일은 절. 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과거의 관성과 습관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실험들을 일상의 현장에서 과감하게 진행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전 세계 꼴찌이기 때문이고, 기레기로 은유되는 한국 언론의 과도한 정파성과 자유경쟁은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강력한 장애요소로 작동하고 있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해야한다”의 세계와 “할 수 있다”의 세계는 너무도 다른 세계다. 그래서 “~해야한다”로만 끝나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공허하다. 공영방송의 저널리즘과 관련한 무수한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다만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일정 부분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게 실질적 진보라 한다면 분명히 그 한 걸음을 나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그 돌파구 중 하나가 어쩌면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서, TV가 아니라 디지털에서 그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단순 미래형이나 당위형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 현장에서 조금씩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새로운 실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어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