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돈이면 다야? 부면 다냐구? 애덤스미스.

by 오윤
#16-1 보이지않는손.jpg 출처: 크리스챤월드

퀴즈. 소위 경제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빙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스미스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니, 이런 워딩을 만들 정도로 애덤스미스는 과격론자였다. 과격론자였지만 그가 쓴 국부론은 섬세하면서도 위대한 책이라 한다.

국부론의 원제는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심리묘사가 누락된 햄릿이 있을 수 없듯 인간심리에 대한 깊은 고찰 없는 경제 이론이나 정책은 허망하기 그지 없다. 지금 부동산 정책이 난관에 봉착한 게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애덤스미스는 과격했지만, 적어도 정책을 입안하거나 글을 쓸 때는 섬세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인간을 이상화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든 허물도 함께 받아들인다. 스미스가 볼 때 인간에게는 공통된 욕구, 성향이 있다.

첫 번째 성향은 바로 ‘모든 인간은 보다 잘 살고 싶어한다’는 명제,

두 번째 성향은 ‘인간은 누구와 교역을 하고 싶어한다’는 명제.


#16-4 국부론.jpg 출처: 매일경제

스미스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억누르기보다 이용하는 것이 부에 이르는 첩경이라 주장한(Buchholz, 2007/2009, p. 45). 그러니깐 잘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이 욕망을 위해 누군가와 교역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막지 말자는 것. 애덤스미스는 이기적 본능이 친절성, 박애심, 희생정신을 압도하는 본능이라 강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괜히 폼잡지 않고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여 가는 것이 사회전체로 볼 때도 서로 화합하고 돕는 것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국부론에 이렇게 쓴다. “공익을 추구할 의도도 없고,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조차 모르는 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는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 결실도 얻게 된다.” 이 구절에 처음 등장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표현은 스미스 경제이론의 뚜렷한 상징이 되어 버렸다(같은 책, p. 47).


#16-2 보이지 않는손.jpg 출처: https://bjoinitiative.tistory.com/


돈의 세계에서 가격이나 이윤은 단순한 추상개념이 아니다. 무엇을 사고 팔 것이며 어떤 가격을 매길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신호 역할을 담당한다. 고수익성이라는 신호탄은 상인들의 귀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특정상품의 생산명령을 내린다. 수익성이 높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상품을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곧 이런 영역에 사람들이 몰리고 경쟁이 심화된다. 단기적으로 신기술 개발에 의한 고소득의 여지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적정선을 초과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산업이란 없다. 자유방임시장은 수많은 이기적인 천둥이들을 끌어들여 경쟁시키기 때문이다(같은 책, p. 51). 이게 중요하다. 우리는 가격이 오를 때 계속 오를 것 같지만 적정선을 초과한 이윤을 남기는 산업이란 없다.


애덤 스미스는 “무엇이 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명징한 답을 제시한다. 분업. 이유는 노동자들의 숙련성과 효율성 때문인데, 흥미로운 것은 분업이 공장 노동자 뿐 아니라 각 도시 간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다. 도시 간 분업이 국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시장이 도시 밖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이때 국부의 비결은 시장 확대, 좀 더 많은 지역들과의 네트워크 되겠다(같은 책, p. 55). 이건 국부를 넘어 어떤 기업, 업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할 때 역시 중요한 변수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확장될 수 있는 시장이 넓은가? 노동의 전문성으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인가? 이게 국부, 기업의 부에 공히 중요한 거다.


흥미로운 것은 아담스미스는 전문적인 분업, 시장의 확장은 부의 근간으로 중요시했지만, 과다한 정보 확산과 번잡한 관계, 자신의 일에 대한 심도 깊은 사유,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 사전,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고고한 철학적 질문들은 부의 장애요소라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가 볼 때 노동자들이 알아야 할 유일한 사실은 양을 치거나, 염색을 하면, 즉 자신의 분업화된 일을 하면 돈이 생긴다는 것 뿐이다. 철학자 화이트헤드 역시 같은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한다. “수많은 책과 연사들의 연설에 의해 되풀이되어 온 경구들 중 대단히 잘못된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오히려 정반대야말로 진리다.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해내는 주요업무가 늘어날수록 문명은 발달한다.”(같은 책, p. 58).


하이에크는 자신의 소위 ‘무식론’을 희생정신과 박애주의에 바탕한 이상세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는 데 활용하기도 하는데, 애덤스미스는 이에 조응하면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종종 사람은 자기자신의 이익을 챙길 때 공익을 위해 봉사할 때보다 사회에 더 많은 이로움을 준다. 공익사업치고 진정하게 사회를 발전시킨 경우를 단 한 건도 나는 알지 못한다.” (같은 책, p. 60).


이런 시크한 양반을 봤나? 공익을 전면에 앞세우는 공간에서 밥벌이를 하는 자로서 참으로 마음에 와닿는 바다. 돈의 세계에서 공익을 외치는 기업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 드러난 얼굴과 보이지 않는 손이 완전 다른 이중 인격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보다 정말 무능력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애덤 스미스와 하이에크의 이야기 역시 과한 느낌은 있다. 국부를 위해 집단 우둔화 현상을 기정사실로 한다고 할까, 불가피하게 생각한다고 할까...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해보면 부, 부, 부를 외치는 지금의 시대, 어쩌면 우리 모두 집단 우둔화의 네트워크에 포획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돈이면 다인가? 부이면 다인가?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건져야 할 질문은 이게 아닐까?

돈이면 다유? 부면 다유?

부부부를 외치는 세상은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돈 밖의 이야기, 내 밥벌이 이외의 이야기에 바보가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참고문헌>

Buchholz, T. G. (2007).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 An Introduction to Modern Economic Thought. 류현(2009).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서울: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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