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당한다”
그런 마음으로 돈의 세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었고, 그 법의 시행과 동시에 새로운 전셋집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새집 마련해 나가야 될 때까지는 이집에 사세요.”
마음씨 좋았던(?) 집주인의 목소리는 이 법의 시행과 함께 물 건너 갔다. 본인도 전셋집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했고, 전세값이 너무 올라 자기 명의의 집으로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은 들지만, 그렇든 말든 어쨌든 집은 빼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깐, 삶은 때로는 나와 멀어보이는 어떤 정책이나 환경의 변화로 나도 모르게 큰 변화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아~ 도대체 왜 니가 나한테 그러는 거야!!!”
울부짖어도 일단 대안은 마련해야 하는 법. 그래서 공부를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공부는 공부대로 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조금 있다. 잠깐의 푸념을 해보자면...
나는 이번 정권의 선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희망의 끈도 놓고 싶지 않다. 다만 선의도 희망도 냉정한 현실 앞에서는 쉽게 무력해진다. 당위만 앞선 구호, 나이브한 정책과 무능력, 과도한 자기 확신, 나는 옳고, 너희는 틀렸어라는 자세는 이 무력함을 앞당긴다.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씁쓸하게도 나는 돈의 세계를 공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몰라도, 그냥 일하고, 월급날이면 통장에 꼬박꼬박 저금도 하고, 좋은 기업과 단체를 후원도 하고, 사람들에게 맛난 점심도 사고, 돈의 세계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세계라면 좋을 텐데, 젠장 세상이 그렇지 않단다. 꼬박꼬박 저금만 하는 사이 집값은 몇 배가 오르고, 일은 안하고 맨날 주식창만 보던 누군가는 갑부가 되고, 뭐라고 할까, 누구도 내 자산을 빼앗아 간 적이 없는데 삥을 뜯긴 느낌이고, 이거 내가 세상 잘못 사는 것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드는 시절이다.
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극단의 시대”아닐까 싶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극단으로 치닫는 흐름이다. 어디랄 것도 없이 모든 공공담론의 영역에서 좌우파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는 누가 더 큰 목소리로 누가 더 거친 언어를 내뱉는지를 다투는 것 같다. 그 사이에 경제적 불평등도, 사회적 갈등과 혐오 문화도 점점 더 극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돈은 있는 자들 사이에서만 돌고 돌고, 그 사이에 소득양극화와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다. 이 극단의 시대 중심에는 경제, 그리고 그 경제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가 있다. 내가 돈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다.
“모르면 당한다.”
이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고, 그리하여 돈의 세계를 공부하고 이 세계에서 당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왜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이익을 방어하고, 증대하고, 영속화하는데 탁월한 정보와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고, 무엇보다 그들의 특권을 이용하기 쉽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쪼그라들 개연성이 높다는 거다. 그래서 적어도 돈의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내 스스로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권리이자 중요한 의무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워낙 이 영역에 무지하다보니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경제 세계, 그것도 주식 시장에 많은 부분 경도되어 있고, 그것도 초식 수준의 개괄뿐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협소하다. 그러나 이 험악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 정도의 초식도 모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금부터는 좀 판을 넓혀 돈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이론적으로 살펴본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이야기는 경제학자 토드부크홀츠와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의 이야기다. 토드부크홀츠의 이야기는 일단 재미있고 편하다. 수다쟁이 이야기꾼이 술자리에서 경제사의 흐름을 지루하지 않게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다. 반면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의 이야기는 빈부격차가 커지고 좌우 갈등이 커져가는 돈의 세계에 좋은 경제학이란 없을까, 문제의식이 돋보인다.
일단 토드부크홀츠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지난 수 세기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목소리에서 캐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쟁겨보려 하는데. 관점은 하나 극단의 시대, 우리 안에 참고하면 좋을 아이디어들이다.
돈의 세계, 그것을 공부하는 경제학이 뭘까,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전제로 한다.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중 하나를 택해야 하고, 더 높은 아파트와 더 넓은 공원 중 하나를,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휴식 사이에 하나를 택해야 할 때, 경제학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드러내는 학문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복잡한 수식으로 계산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정치다. 그리하여 20세기 이전까지만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경제사상사라 불리는 것 역시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부와 경제학자들 사이의 충돌과 협력의 변천사이기도 했다.
다음 장부터는 이 충돌과 협력의 변천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어떻게? 인물 중심으로, 우리가 어디선가 한번즈음 들어봤던 인물들이 돈의 세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으며, 2020년을 지나는 우리가 거기서 건져낼만한 아이디어들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한다. 그 첫 번째 타자는? 소위 경제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애덤스미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