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입시 9
하필 왜 그 책이었을까? 그것이 강력한 복선이자 무시무시한 예언서가 될 줄 알았더라면, 근처에도 안 갔을 것이다.
기적 같은 기말고사 성적은 꽃길 가득한 겨울 방학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비록 1학년 내신이 흉한 상처로 남아 있기는 했지만, 흉터는 옅어질 것이고, 교육 방송(EBS)이라는 천군만마까지 얻었으니, 걱정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조카의 계획은 단순했지만, 정확했다. 종일 미술 학원에 있어야 하는 목·금·토요일을 제외한 날에는 교육 방송을 보면서 2학년 교과 예습하기! 국어와 영어, 그리고 사회탐구 중 조카가 선택한 ‘윤리와 사상’, ‘정치와 법’, ‘한국 지리’까지 다섯 과목만 하면 되니 시간은 충분해 보였다. 조카의 열정이 최대치였던 터라, 두 번의 예습도 가능해 보였다.
조카의 계획을 일일이 간섭하는 대신,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스스로 계획을 짜는 것도, 그걸 실천하는 것도 공부의 한 과정이니까 말이다. 내 역할은 간단했다. 조카가 아침 기상을 알리는 전화를 하면 받아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확인하고 격려만 해주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헛된 꿈이었는지를 알기까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조카의 전화가 오지 않은 것이다. 점심까지 기다리다, 결국은 먼저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마지못해 몸만 일어났을 뿐, 정신은 여전히 잠에 취한 듯 몽롱한 조카의 목소리에,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건 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변하는 건 없었다.
나무늘보보다 잠이 많은 조카가 혼자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진시황제의 불로장생 찾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부모는 모두 출근하고, 방학까지 했으니, 조카의 아침잠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무한 증식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더구나 노력에 비해 너무 잘 나온 기말고사 성적 탓에 한 없이 느긋해진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 딴에는 일찍 일어나겠다며 10분 간격으로 알람 설정을 하긴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소리에 더 피곤해져 깊이 잠들어 버렸고, 결국 목적 잃은 날카로운 알람 소리만 아침을 가득 채웠다.
“음······. 오늘도 늦잠 잔 거야?”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죄송해요. 저도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요.”
“그러니까 일찍 자라고 했지?” 무척이나 날 선 답을 날렸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푸념의 답이었다.
‘대학에 가고 싶다며? 그럼 어떻게 해서든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할 거 아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차마 뱉지 못했다. 의미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조카도 본인이 달라져야만 한다는 것은 천 번, 만 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겠다는 결심과, 알람 설정의 달인이 되었지만, 매번 거기서 끝나곤 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된 조카의 오전은 햇볕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중요해도 너무 중요한 시기에 겨울잠을 자는 곰이 된 조카의 모습에 맥이 풀렸다. 웅녀의 후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아닐 테고,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도 아닐 텐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이의 모습에 있는 대로 속이 상했다. 속상한 마음에, 조카들이 어릴 때 사주었던 ‘소가 된 게으름뱅이’ 그림책 탓까지 하게 되었다. 괜히 그 책을 사주어서 제목대로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안다. 한창 크는 아이에게 잠이 몰려왔다는 것을, 뒤늦은 시작을 만회하려 미술 학원에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힘들었던 시간을 잠으로 풀었다는 것을, 게다가 잠 많은 부모의 유전자까지 더해져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사정을 살필 틈이 전혀 없었다. ‘대학에 꼭 가고 싶다는 녀석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보면서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게으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걱정과 실망만 깊어졌다.
그러다 보니 부끄럽게도, 조카를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왔다. 명상이라고 우기려 해도, 사람의 감정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채는 조카가 나의 깊은 한숨을 모를 리 없었다.
“고모,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면, 그냥 말로 해주세요.”
“음······. 아니야.”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게 싫어서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감정의 날까지 더해져, 일촉즉발의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시간이 이어졌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선택지를 만지작거렸다. 조카와 거리 두기! 그러지 않으면 나의 날카로움이 조카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최대한 정제된 단어를 선택하고 연락하는 횟수를 줄이는 것으로 나름의 거리를 두었다.
알록달록 싱그러운 꽃길만 가득해 보였던 겨울 방학은, 그렇게 말도 안 될 만큼 암울함만 덕지덕지 바른 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비빌 언덕을 꿈꾸며 야심 차게 맞이한 겨울 방학은, 비비는 것은 고사하고 다가오지도 못할 만큼 억센 가시를 뻣뻣하게 세운 고슴도치가 된 채, 아프고 차갑게 끝나버렸다.
윗글은 2021년부터 약 2년 동안 조카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