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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넌 뭐냐?

세상 맛깔나다. 여름 8

by 오늘나


여름 방학을 맞아 우리 집에 놀러 온 사촌 동생과 우리들 최고의 놀이는 언제나 동네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특별한 장난감도 장소도 필요 없었다. 그냥 하루 종일 신나게 뛰어다니다 보면 돌도 씹어 먹을 만큼의 식욕이 생기게 마련이었고, ‘시장이 반찬’이라고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뭐든지 맛있게 먹었다. 시골의 여름은 각종 채소와 과일로 넘쳤고 우리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사촌 동생은 ‘서울 애’라 그런지, 우리가 먹어 본 적 없는 것을 먹고 싶다며 약간의 반찬 투정을 했다. 그중에서도 마요네즈는 거의 매일 노래를 불렀고 왜 우리 가게에는 마요네즈가 없는지 궁금해했다. 수요가 있어야만 공급이 존재했던 우리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는 건 막걸리와 담배였고, 마요네즈는 누구도 찾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마요네즈는 설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했다. “원래 있는데 지금은 내가 다 먹어서 없어.” 마요네즈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깟 마요네즈 따위’ 때문에, 서울 사람들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싶지는 않았다. 마요네즈와 자존심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난 우리 가게에 마요네즈가 없다는 말만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서울 사는 사촌 동생에게 자존심을 내세운 이유는 텔레비전 때문이었다. 텔레비전 속 시골은 부유하고 화려하고 멋진 도시와 달리 가난하고, 더럽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곳이었다. 화가 났다. 비록 충분할 만큼의 돈은 없을지라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일상을 꾸려나가는 곳을, 무조건 도시보다 못한 곳으로만 표현한 것에 화가 났던 것이다. 우리 동네는 논과 밭, 야트막한 산과 개울, 나무와 꽃이 그림처럼 펼쳐진 곳이었다. 도시처럼 화려한 간판들이 번쩍거리진 않았지만 아침마다 빛나는 햇살, 저녁마다 이글거리는 노을, 초록의 산과 밭, 황금빛 논이 융단처럼 펼쳐져 사시사철 아름다웠다. 그래서 억울했다. 내가 살고 있는 소중한 곳을 더럽고 가난하고 무식한 곳으로 만들어 버린 텔레비전에 반항심이 들었다. 반드시 도시 사람들을 이겨서 텔레비전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 노력은 초등학교 내내 아무도 모르게 계속되었고 ‘마요네즈 거짓말’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방학의 끝자락, 외삼촌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사촌 동생이 떠나는 것은 서운했지만 격렬하게 기쁘기도 했다. 외삼촌께서 마요네즈를 사 오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마요네즈를 직접 보다니! 체면상 내색은 못했지만 마냥 신기했다. 사촌 동생은 마요네즈를 보자마자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고, 텃밭에서 오이를 따와 광고에서 보던 것처럼 오이 위에 마요네즈를 정확하게 한 줄로 쭉 짰다. 어찌나 반듯하게 짰던지 예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촌 동생은 상큼하게 한입 베어 물었고 누가 봐도 군침이 넘어갈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오이즙이 입안 가득 넘치며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귀를 청량하게 했다. 맛있어 보였고 먹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먹을 수 없었다. 도시 애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고수다운 방법으로 먹어야만 했다.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말했다. “너희 동네 애들은 마요네즈를 오이에다 먹어?” 여기에서 말하는 너희 동네 애들은 ‘서울 애들’ 전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시킨 적 없지만 나는 혼자서 그 많은 ‘서울 애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난 그냥 먹는데.”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마요네즈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두 동생의 눈길을 모른 체하며, 호기롭게 커다란 숟가락을 들고 마요네즈를 짤 수 있을 만큼 듬뿍 짰다. 맛은 이미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기에 있는 힘껏 입을 벌려 숟가락을 넣고 야무지게 빨았다. 동생들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각본상, 마요네즈를 꿀꺽 삼키며 맛있어하는 표정만 지으면 끝이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NG’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요네즈를 삼킬 수 없었던 것이다. 목구멍도 살고 싶었는지 스스로 살길을 찾아 문을 굳건하게 닫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얗게 굳은 돼지기름을 한 바가지 먹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장독대로 달려가 고추장 뚜껑을 열고 양손으로 고추장을 마구 퍼먹고 싶었다. 참을 수 없는 느끼함과 니글거림이었다. 상큼한 오이 100개와 함께 먹는다고 해결될 맛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하지만 이미 마요네즈를 좋아한다고 큰소리를 쳐놓은 상태였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먹어야만 했다. ‘열려라 목구멍’이라는 주문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가까스로 열린 목구멍으로 마요네즈를 급히 밀어 넣었다. 식도를 타고 돼지기름 한 바가지가 줄줄 흘러내리면 그런 기분일까? 차를 타지 않고도 멀미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마요네즈를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한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반성일 뿐이었다.


차라리 방송사에 항의 편지를 한 통 쓰는 게 나았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오기와 똥고집으로 내 위장만 최고의 형벌을 받았다. 분노의 대상이 무엇이고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런 죄 없는 위장만 고생한다.


참! 그때 마요네즈를 먹고 알았다. 케첩은 양반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섯 숟가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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