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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나다 Jun 23. 2024

나는 그저 돈덩어리!

돈덩어리가 종이돈을 아무렇게나 싹둑싹둑 잘랐다.


병원을 퇴원하던 날에도 우리 동네 큰 아빠가 찾아왔다. 나를 데리러 온 것이다. 큰 봉고에 큰 아빠와 아빠 그리고 엄마와 내가 탔다. 집에 내려가기 전에 부산의 외삼촌 집에 들렀더니 외숙모는 김장을 미처 하지 못 했을 엄마에게, 내 키보다 큰 것 같은 커다랗고 파란 통에 김치를 가득 담아 주셨다. 음식 솜씨가 꽤 좋은 부산 외숙모는 갖가지 반찬들도 챙겨 주셨고, 엄청 비싼 고급 인형 선물 세트를 내게 안겨줬다.





선물 받은 유미의 집인지 미미의 집인지 아니 궁전인지 기억이 안 나는 그 예쁜 인형은 아무도 가지고 놀지 못하게 매번 스티로폼박스까지 챙겨 상자에 예쁘게 정리해서 옷장에 집어 놓고 보관했었다. 아끼고 아끼던 그 인형의 집은 튤립모양처럼 생겼고 튤립을 펼치면 화장대도, 욕실도, 침실도, 거실도 나왔던 꽤 디테일했던 인형 집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드디어 마루 인형이 학교에서 인기를 끌던 시절 새벽같이 일어나 그 인형집 세트를 바리바리 챙겨 학교에 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이미 그전부터 한 명씩 인형을 학교에 가지고 왔던 우리들에게 담임 선생님은 이런 인형을 학교에 가져오지 마라고 혼을 냈다. 아끼고 아끼던 그 인형은 그 이후로 흥미를 잃어 옷장 속에 계속 갇혀 있었다.






병원을 퇴원했지만 나는 붕대를 감은 채 계속 방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가끔 어른들이 찾아와서 나에게 용돈을 줬고, 어느 날 어떤 분이 준 만원 짜리 한 장은 내게 순식간의 놀잇감이 되었다. 내가 앉은 채로 손이 닿는 책장 어딘가에 있던 가위를 집어 들었고, 나는 만 원짜리 지폐를 싹둑싹둑 잘랐다. 처음에 잘려 나갔던 큰 조각들은 다시 내 손에 쥐어져 어느새 성냥개비 나무심 크기 정도로 작게 잘려 나갔다. 잠깐 동안에 엄청 잘게 수십 개의 조각들로 돈을 자르는 나를 뒤늦게 발견한 엄마는 나를 엄청 혼내며 등짝을 후려쳤다.


엄마는 그 돈을 이어 붙이려고 했는지 아니면 은행에 가지고 가서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종이여서 그냥 한번 잘라 본 것들이 엄마에게는 절대 잘라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돈이었던 것이다. 단칸짜리 집에서 살다 그 시절 천만 원의 빚을 지어 겨우 가게를 얻고 집을 이사했는데, 병원생활 엉망이 되어 버린 한 달 동안 나의 수술비와 병원비는 또 수백만 원의 빚을 지게 했기에 엄마에게는 일만 원의 돈도 귀했었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많은 돈을 쓰게 했던 나는 커 가면서도 수십 년 동안 수 없이 많은 돈을 들여야 했던 가슴 아프고 무거운 돈덩어리였다.






부산까지 매번 가지는 못 하기에 읍의 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녔다. 발목 이상을 절단을 해서 아직 걸을 수 없었고, 그래서 버스를 타고 다니지 못했기에 매번 택시를 타고 병원에 다녔다. 병원에 가서 나의 치료하는 것은 이상한 간장 색깔을 가진 약물에 발목을 담갔다가 오는 것이었다. 어린 언니도 그 병원행에 함께할 때가 있었는데, 하루는 엄마가 언니를 놔두고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언니는 그때가 충격이었는지 지금도 원망스럽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야기한다. 짐을 이고 지면서 한 아이는 업거나 안았을 것이며, 잘 따라오겠지 했던 큰 아이는 정신없는 와중에 깜박한 날이 있었는가 보다. 어느 날은 어둑해진 밤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진짜 너구리를 본 것도 기억이 난다. 엄마와 택시를 타고 먼 곳을 왔다 갔다 하던 것이 끝났을 즈음, 아니 아빠가 우리 가족의 새 차를 뽑은 즈음 엄마와 값비싼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생활은 끝났다.


아빠가 새 차를 가져온 날은 늦은 밤이었다. 동생은 일찍 잠들었고, 언니는 뭘 아는 건지 흥분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아픈, 아니 아직 발이 없어 걷지 못하는 나를 업고 언니는 새 차를 끌고 오는 아빠를 마중 나갔었다. 우리 집에 아주 오랜만에 차가 생겼다고 언니는 무척 좋아했었고, 그 차는 내가 의족을 맞추러 먼 길을 왔다 갔다 할 때 귀한 이동 수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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