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대신 빵, 빵 대신 베이컨

생계에 대한 영어 표현들

by 인터프리터

수술로 인한 병가가 끝나고 내일이면 업무 복귀를 앞두고 있다. 오랜만에 출근하려니 선배 및 동료들이 반가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밀리고 밀린 업무 때문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아쉬운 점도 있는데, 원래 9월 초에 신입 PD들을 대상으로 하는 4박 5일짜리 PD 캠프에 참가할 계획이었는데 병가를 내면서 포기했다...ㅎ 병가까지 내놓고 염치없게 또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 (그치만 너무 가고 싶었기에 매일 열불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열.받.아.)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제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어제부터 슬슬 운동도 재개하고 집에서 요리도 하면서 어느 정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내일이면 환자 라이프를 모두 청산하고 다시 밥벌이를 하러 나간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과 그 일에서 얻는 수입을 말하는 '밥벌이'. 영어로는 livelihood (생계, 생활 수단), means of living / means of subsistence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 way to make a living (먹고살기 위한 방식), day job (생계유지를 위한 본업) 등이 있겠지만, 밥벌이처럼 특정 문화권의 주식을 은유적으로 사용한 유사 표현이 있다면 바로 'breadwinner'라고 할 수 있다. Bread와 winner 두 단어의 결합으로, 서구권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 음식으로 여겨져 온 '빵'을 '획득'해오는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다. 즉 생계부양자나 가장이라는 의미에 좀 더 가깝다. 이처럼 '밥벌이'와 'breadwinner'은 둘 다 먹고사는 문제를 표현하지만, 밥벌이는 일 자체를 말할 때 쓰인다면 breadwinner는 거의 항상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쓰인다는 차이가 있다.


'Breadwinner'라는 표현과 유사한 또 다른 표현은 바로 'bring home the bacon'이다. '생계를 유지하다'는 뜻의 해당 표현은 직역하자면 '베이컨을 집으로 가져오기'인데, 역시 여기에도 음식이 은유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이 생긴 데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재밌는 설명 하나. 12~13세기 던모 플리치 트라이얼 (Dunmow Flitch Trials)라는 전통 행사에서, 1년간 서로 욕하거나 싸우지 않고 지낸 부부에게 베이컨 한 덩어리를 상품으로 제공하곤 했다.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행사의 승자는 겨우 여덟 부부였는데, 실제로 싸우지 않고 잘 지냈다고 해도 무려 12명의 배심원 앞에서 그 자격(?)을 증명해야 했기에 조건이 꽤나 까다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베이컨이 가정의 풍요와 안정적인 가정을 상징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물론 문헌 등에서 실제로 해당 관용구가 쓰이기 시작한 건 20세기 이후라서, 문화적인 배경 정도로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결국 내일 다시 밥벌이의 세계로 돌아간다. 누군가에게는 밥이고, 누군가에게는 빵, 베이컨이겠지만, 결국 모두 같은 이야기다. 먹고사는 일. 표현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이것이 바로 언어가 재미있는 이유 아닐까. 우리는 각자의 밥, 빵, 베이컨을 위해 내일 아침 다시 집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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