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속 낯선 뉘앙스들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영영 단어 사전을 사용하는 것이다. 표현의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1) 원어 설명을 통해 뉘앙스를 파악하고 (2) 다의어의 경우 다른 의미는 또 뭐가 있는지 파악하는 습관이 필요했다. 특정 표현을 어렴풋이 알고 썼다가 오히려 그 정반대의 뜻이거나 전혀 기대한 뜻이 아니어서 당황했던 경우가 통대생에게는 종종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예시로 'strong man'은 힘이 센 사람, 강한 사람이니까 'strongman'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strongman의 또 다른 의미로는 'a leader who rules by the exercise of threats, force, or violence'도 있다. 즉, 독재자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2012년도 미국 타임지가 당시 대선후보였던 박근혜를 두고 'The Strongman's Daughter'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한 후 뒤늦게 이슈가 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띄어쓰기 하나의 힘이 이렇게 크다.
또 다른 헷갈리기 쉬운 표현 하나는 'Friday-faced'다. 예전의 학교 English Literature 수업 때 셰익스피어 등 고전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 접했던 표현이다. 우리나라의 '불금'을 떠올리며 으레 비슷하게 '주말을 앞두고 금요일을 즐기자'는 뜻처럼 활기차고 긍정적인 의미를 생각하였지만 실제 의미는 정반대여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해당 표현의 의미는 사실 '우울하거나 침울해 보이는 얼굴' (someone who is or appears to be glum, gloomy, or depressed)을 묘사하는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쓰일까? 그 배경을 찾아본 바 이 표현의 유래는 이러하다. 성 금요일(Good Friday)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이고,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고기 섭취를 금하거나 엄숙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그의 희생을 기려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Friday-faced'는 우울한 얼굴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기독교적 지식이 풍부하지 않아 딱 요정도만 이해했다... 분발해야겠다.) 물론 한국어 '불금'처럼 영미권에서도 'T.G.I.F. (Thank God It's Friday)라는 체인 식당이 있을 정도로 이제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지만. 번외로 long face도 시무룩하거나 슬픈 얼굴을 나타낸다. 얼굴 길다는 뜻이 아님...!
마지막으로 매우 자주 쓰이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어 통대생들도 자주 헷갈려하는 것은 'development'와 'developments'의 차이다. 전자가 개별과 발전, 그 일련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후자는 주로 가시적인 성과나 성과물 등을 말할 때 (연구 결과, 정치 변화, 새로운 기술 발표 등) 쓰인다. 즉 후자가 좀 더 성과나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어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그 사회와 문화가 오랜 시간 쌓아온 사고방식과 감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단어 하나, 띄어쓰기 하나에도 뜻밖의 역사와 뉘앙스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통번역대학원 시절 습관처럼 영영사전을 찾아보던 경험은 단어의 진짜 얼굴을 확인하는 과정이자, 언어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다잡아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작은 표현 하나에도 귀 기울이고, 그 안에 담긴 배경과 의미를 탐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태도가 결국은 언어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