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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Jun 12. 2023

늘 곁에 머물렀던 식물들

식물생활의 시작

기억을 되돌아보면 늘 주변에는 식물이 머물렀다. 베란다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엄마의 여러 화분들, 자취방에 있던 작은 선인장, 외가에 가면 현관 앞에 놓여 있던 화분들. 그리고 길을 따라 심어 있는 듬직한 나무들과 때가 되면 피어나는 꽃들. 그들은 일상 속 깊숙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그렇기에 애써 식물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길을 걸으면서도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딱히 이름을 알 필요도 가꿀 필요도 없는, 당연시하던 존재였다. 그러던 식물이 어느 날부터 내게 의미 있는 생명으로 다가왔다.

식물과 더불어 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집들이 선물로 화분 한두 개를 요청했던 것과 다르게, 엄마는 여러 화분을 보내왔다. 꽃 화분 4개와 작은 나무 화분을 베란다에 옮기고 나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죽어가던 식물도 살려내고 한 식물을 20년 동안 키워온 엄마라면 큰 어려움 없이 잘 가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였다. 하다못해 물은 언제 줘야 하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식물과 한 공간에서 살던 시간이 많았지만 단 한 번도 물을 주거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지난 온 시간들에 비해 내가 식물을 위해서 무언가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죽지 않고 잘 자라는 모습에 원래 식물은 혼자서도 잘 자란다고 착각했다. 지금에서야 엄마와 외할머니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에 그들이 여러 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때 맞춰 생명수를 주고, 식물이 잘 자라는 환경으로 가꿔야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어찌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살아왔는지. 주변에 머물렀던 생생한 초록빛은 누군가의 정성을 담뿍 받으면서 살아왔을 것인데.


그제야 주변에 있는 나무와 들풀까지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하물며 다른 이의 화분에도 기웃거리며 식물들의 삶을 지켜보게 되었다. 무심히 지나쳤던 자리에는 어떤 생명이 움트고 있는지, 봄이 되면 어떤 꽃을 피우는지, 얼마큼 자라났는지. 식물 식구를 들이면서 식물생활이라는 뜻밖의 삶의 한 챕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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