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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Jul 13. 2021

다시 시작된 워킹맘의 재택근무

... 살려줘요. 제 하루가 어땠냐면요-

일일 신규 확진자 1000명 이상. 4단계.

그리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방과후수업도, 긴급 돌봄도, 그 어떤 예외도 없는 원격수업이다


이제 9세 큰 아들은 집에서 노트북으로 수업을 한다.

4살 둘째 아들은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의 접종 스케쥴도 있어서 가정 보육을 시작한다.

물론 8개월 막내 딸은 어디 가지 않고 여기 있다.

친정 엄마는 수도권 확진자 규모도 있고 집 수리하실 일도 있어서 나주에 계시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재택근무를 한다.


재택근무.

아... 벌써 한숨이 나온다.

하루반 정도 했는데 벌써부터 너무 죽을 것 같아 큰 일이다.

휴가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대안이 없다.


어제오늘 내 하루 일과는 이렇다.


8시, 큰 아이의 아침을 간단하게 먹인다. (간단하게 = 반찬 2가지 이내)

8시 30분부터 큰 아이의 수업을 준비하고 40분에 간단한 조회 후 독서 시간을 시작으로 수업이 시작된다.

9시 쯤에는 둘째 아이의 아침을 먹인다. (아침잠이 많으신 편이라 형과 함께 먹을 수 없다)

가능하면 같은 시간에, 늦어도 9시 30분쯤 막내 오전 이유식을 먹인다.

세 아이의 아침식사 이벤트가 모두 끝나면, 둘째가 혼자 노는 동안 막내를 재운다.

이 시간에 꼭 자줬으면 좋겠는데, 왜냐하면 거의 매일 10시쯤 팀 미팅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실패했다.

결국 셋 다 똘망똘망한 상태에서 첫번째 컨퍼런스 콜을 했다.

디폴트는 음소거. 말할 때만 마이크를 잠시 켜둔다.

그러다 갑자기 나에게 말하러 다가오는 누군가가 포착되는 순간 그 즉시 음소거로 전환.

1시간 가량 미팅 후 매우 심기 불편해져 계시는 세분(각자 불편한 이유는 다름)을 달랜다.

11시 10분부터 큰 아이 점심 시간.

후딱 먹이고 연달아 둘째까지 후딱 먹이고 막내 낮잠 재우기를 시도한다.

다행히 우리집 아이들은 배가 부르면 만사가 편해지는 유형이라 괜찮긴 한데, 요새 셋째 수면 시간이 상당히 줄었다.

하긴... 평소에도 안자는데 오빠들이 있으면 절대 안잔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자겠어....) 

그리고 큰 아이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2시 반.

이때부터 본격적인 지지고 볶고가 시작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순한 맛이었던 것.

공부할 거, 놀거, 준비해서 가져다 바쳐도 상황은 내맘같지 않다.

졸리지만 자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재우려는 엄마가 짜증 나는 셋째.

동생 재운답시고 동생만 보고 있는 엄마가 야속한 둘째.

숙제라는게 해야 하는건 알지만 하기 싫은 것도 사실인 고뇌 속 첫째.

그 속에서 일해야 하는 나.

시간이 흘러 6시가 되면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

그 전에 막내의 오후 이유식을 먹여 두면 좋았겠지만, 늘 그 타이밍을 잡기는 쉽지 않다.

전쟁 같은 저녁 식사 시간.

당연히 나는 함께 먹을 수 없고, 다들 먹고 일어나면 후다닥 처리하는 편.

여기까지 오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이제 남은 거라곤 씻기고 재우는 것 뿐이라.

셋 모두 재우고 나면, 그때부터야 말로 내 시간이다.

조용히 내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그거 때문에 다음 날 회복하기 힘들만큼 피곤하긴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아이 셋 보는게 핵심이지 재택근무나 휴가나 피차 힘든거 아니냐고?

완전히 다르다.

당장 컨퍼런스콜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부터 다르다.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도 내 컨퍼런스콜이 시작되면 집안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수업 듣는 큰 아이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둘째도, 심지어 떡뻥 먹으며 굴러다니던 막내까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엄마에게 이야기하려고 다가온다.

가장 통제 안되고 속없는(...) 둘째는 내가 리액션을 보일 때까지 옆에서 계속 이야기한다.

...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바라는게 아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의미 있는 사운드와 행동으로 반응을 보여주길 원한다.


엄마의 신경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걸 두고 볼 수 없는거다.

그러니 휴가와 재택근무의 차이는 지대하다.


나는 육아란, 조부모님들의 도움 없이, 오롯하게 엄마와 아빠로 구성된 두 부모가 해결하고 커버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뭐 돈을 써서 시터의 도움을 받든 어쨌든 '부'와 '모'를 넘어선 누군가의 희생이나 역할이 당연 전제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재택근무를 할 때면, 내가 애를 셋이나 낳은게 감당 못할 사고를 친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아이들은 귀엽다. 근데 아이들은 누구나 다 귀엽다. 

다만 계속 내가 소모되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가 있다.

사실은, 견딜 수 없어져도 대안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막막함이 더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사와 육아가 제법 잘 맞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비교해 보면,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다.

(그러니 지금 이런 글도 쓰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방심한 것 같다.

그래도 애 셋은 너무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크면 좋아진다지만, 그때쯤이면 나도 그만큼 늙었겠지.


지금은, 다른 생각은 다 접어 두고 어여 코로나나 물러갔으면 좋겠다.



덧. 오해하진 마세요. 남편이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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