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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Jul 20. 2021

엄마도 일하는 사람이라고!

1년이 지나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재택근무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나의 재택근무와, 큰 아이의 원격 수업과, 둘째 아이의 가정 보육과, 최근 방바닥과 원수가 된 듯한 막내.

우리 모두 집돌이가 되었는데 남편이 다니시는 그곳은 왜 또 출근인가.


암튼.

새벽 3시쯤 일을 하다가 잠들었을때 눈이 안떠졌음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월요일 아침이 왔다.


큰 아이 등교 안시켜도 되니 이른 출근하신 남편의 속내는, “일찍 가서 일찍 와야지”일거라고 믿는다. … 그래야 할거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못한 설거지도 내 몫으로, 치우지 않았던 거실도 내 몫이다.

거기에 남편이 던져 놓고 간 마스크 포장지를 버리는 것도 내 몫이고 밥 달라고 소리지르는 둘째 놈도 내 몫이다.

오전에 있을 회의 준비도 내 일이다.


생각해 보면 그냥, 내 일과 내 몫이 많았을 뿐이다.

그래서 조금씩 쌓여 왔던 스트레스와 억울함이 턱밑에 있는걸, 내가 몰랐던 것 같다.


원격 수업하던 큰 아이가 무슨 미술 도안을 프린트해야 하는데 안된다고 했다.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 그게 안되면 직접 그리면 된다고 하시는듯 했다.


직접 그리면 되지. 한번 그려봐~.”

아~ 몰라~~ 엄마가 그려줘. 난 이런거 못그린단 말이야~~~~~!!!!”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겠지만, 짜증 섞인 아이의 말투에 나도 가시가 뾰족해 졌다.


엄마도 오전에 컨퍼런스콜 있어. 지금 엄마가 어떻게 이걸 그려줘. 해봐. 할 수 있잖아..”

아~~~ 엄마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 그냥 그려주면 안돼?”

아들. 엄마 방금까지 동생 아침 차려주고 지금 잠깐 앉은거잖아. 엄마 지금부터 회의 준비해야 해서 그래.”

회의한다고 해놓고 맨날 별거 안하면서. 그냥 이야기만 하는거잖아.”


순간 숨이 온몸이 일시정지 되었지만 심호흡 한번에 다행히 정신이 돌아왔다.


그런거 아니야. 엄마랑 회사 이모삼촌들이 미리미리 준비해서 다 같이 의견만 나누니까 아들이 보기에 그렇게 보이는거지.”

아~~~ 왜~~~~~ 엄마 맨날 집에서 놀잖아~~~~~~~~”


야!!!!!!!!!!!!! 엄마도 일하는 사람이라고!!!!!!!!!!!!!!!”


순간 단전에서 올라온 샤우팅에 나도 놀라고 아이도 놀랐다.

그래도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왜 우리집 사람들은 나에 대해 ‘집안일 하고 돌봐주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먼저일까.

다들 먹고 노는데 쓰는 돈은 전부 내가 벌잖아. 그런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는 사람일까.

회의가 적은 것도 아닌데 회의 있다고 하면 무슨 몹쓸 이벤트라도 생긴 것 같은 반응이고,

내가 컴퓨터 앞에 있든 전화를 하든 쫒아다니면서 말을 걸고 밥 달라 장난감 찾아 달라 나가자 콧물을 닦아달라…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실 이게 큰 아이만의 잘못도 아니고, 아니 잘못이랄 것도 아닌게 평소였다면 잘 설명하고 다독였을 일인데.

이건 명백한 화풀이었다.

아침부터 쌓인 마음이 여기서 터져버린 것.

아이 눈에는 보이지도 않은 버튼을, 사실은 내가 눌러놓고 니가 눌렀다고 책임을 전가하며 소리지른거나 다름 없다.


미안, 아들. 방금은 엄마가 잘못했어. 그냥… 엄마도 일하는거랑은 상관 없어. 이건 니가 할 수 있는 일인데 미루려고 하는 거만 설명해주면 되는데, 엄마가 지금 회의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예민해진 마음이 갑자기 튀어 나온 것 같아.”


사과는 했지만 마음이 안좋다.

내가 겪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이 상황도 답답하다.

모두 자기 유리하게만 생각하고 판단하는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 같은거긴 하지만.

그러니까 엄마는 노는 거였음 좋겠고 내 아내는 자기 마음대로 일과를 선택할 수 있는 거였음 좋겠는건데.


워킹맘의 재택 근무는 언제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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