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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Jul 25. 2021

둘째의 운수 좋은 날

까까를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아침부터 햇빛에 눈이 아플 것만 같은 토요일이었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일어난 둘째는, 뭔가 유독 이상한 아침이라고 생각했다.

아침 차려주겠다고 말하는 할머니는 뭔가 분주해 보였고, 주말이면 늦잠꾸러기가 되는 이모도 일어나 있었다.

가장 이상한건 형아였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학교 가는 날도 아닌데, 형아는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내복 아니네…”


형아는 “아까 내복에 주스를 흘려서” 갈아 입은 김에 외출복을 입었다고 했다.


둘째가 생각하기엔 조금 이상한 하루였지만 아침 맘마는 맛있었고, 왠일인지 형아가 오전부터 놀아줬다.

낚시 놀이도 해주고 괴물 놀이도 해줬다.

형아가 장난감도 줬다.

맨날맨날 만졌다가 혼나던 푸쉬팝이 있는데, 오늘은 만졌다고 혼내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놀라고 줬다.

둘째는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둘째의 행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양파깡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가 편의점으로 사러 가자고 했다.

형아랑 같이 가야 할 것 같아 망설였는데, 엄마가 귓속말로 “형아는 먹을 과자가 있으니 우리 둘이 몰래 다녀오자”고 했다.


“형아랑 아가애기(동생) 말고 엄마랑 둘이? 나만?”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신나게 따라 나섰다.


둘째가 양파깡을 사고 집으로 가는데 지하 주차장에 아빠랑 동생이 있었다.

아빠는 “물고기가 많은 곳을 알아냈다”고 했다.

지금 바로 차 타고 가야 해서 내려왔다고 했다.

물고기… 물고기 라니.

얼마쯤 차를 타고 와서 엄마가 어딘가에 주차를 하고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있는 냇가로 갔다.


물고기!! 진짜 물고기 였다!!!!

그것도 엄청 많았다.

낚시대가 없어서 잡지 못했지만, 진짜 엄청 엄청 많았다.


청계천에서 만난 엄청 많은 물고기들


더워도 신이 났다.

잠자리도 있었다.

둘째가 술래가 되서 잠자리랑 술래잡기를 했는데 다들 엄청 빨랐다.


엄마가 바로 옆이 서점이니 책을 사준다고 했다.

하지만 둘째는 배가 고팠다.

둘째가 돈까스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엄마와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돈까스를 사줬다.


뭔가 다 둘째 마음대로 되는 날이었다.

서점에 가서도, 장난감이랑 세트인 책을 골랐는데도 엄마가 알겠다며 사줬다.

그것도 2개나 사줬다. 이미 트럭책도 샀는데 말이다.


심지어 돌아가는 길에는 고기랑 맘마를 먹고 가자고 해서 식당에 갔다.

식당에서도 둘째는 엄마를 독차지했다.

물론 가끔 아빠가 데리고 있는 동생을 봐주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을때만 이었다.

밥 먹는 내내 엄마는 둘째에게 말을 걸고 웃어주고 칭찬을 했다.


둘째는 오늘 하루가 꿈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형아가 생각났다. 그리고 조금 미안해 졌다.


집에 가는 길에 과자를 사러 편의점에 가겠다고 했다.

평소대로라면 엄마가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안된다고 했겠지만, 왠지 오늘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둘째 뜻대로 편의점에 갔다.

둘째는 형아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고 싶었다.

그래서 포카칩을 샀다.

형아가 어제부터 포카칩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엄마가 알겠다고 해놓고는 포스틱을 사왔었기 때문이다.

이 포카칩을 보면 형아가 좋아하겠지…

둘째는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집으로 돌아왔다.


형아~~~~~”


이상하게 적막하다.

이건 누가 봐도 빈집이었다.


엄마. 형아는? 할머니는? 이모는?”

응~ 형아는 할머니랑 이모랑 같이 나주 갔어.”


이젠 제법 말을 잘하는 둘째였지만, 고장난 것처럼 엄마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엄마, 형아 어디 갔어?”

응. 형아는 나주 할머니집 갔어.”


엄마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한 둘째는, 품안의 포카칩을 보니 마음이 울컥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둘째를 보며 엄마는 초조한듯 말했다.


우리 둘째는 다음주쯤 엄마랑 같이 내려가자. 알았지?”

“… 응. 알아써…”


둘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슬프고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형아… 내가 포카칩을 사 왔는데… 왜 먹질 못하니…



덧. 형아가 오면 같이 자겠다고 버티던 둘째는, 잘 자야 형아한테 가는 날이 빨리 온다는 말에 무사히 잠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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