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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Aug 12. 2021

숨박꼭질이 좋을 나이

바로바로…

1호와 2호의 에너지는 무더위도 꺽을 수가 없다.

목청은 어찌나 좋고 연기는 얼마나 잘하는지.

저 창의력 대장들은 집안 모든 살림살이로 칼과 방패를 만든 다음, 한바퀴 돌아서고 나면 악기로 만들어 연주하고 있다.


본인 우선주의이신 남편께서는 아랫집을 핑계로 시끄러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를 연발하신다.

(확실하게 말하지만, 좀 시끄러울지언정 층간소음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다.)


이 에너지를 건설적… 이진 않지만 생산적… 으론 어려워도 어쨌든 발산하는 방법은 데리고 나가는 것 뿐이다.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면 숨박꼭질이 필수다.

숨박꼭질을 하자고 하면 2호는 “제안이가 1등이야!!”를 외친다.

무슨 뜻이냐고??

2호는 가장 먼저 발견되는걸 좋아한다.

저 말은 자기가 1등으로 발견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눈에 띄는 곳에 숨고, 그것도 불안한지 “찾는다!”와 동시에 “제안이 여기 있어요!!”를 외친다.

마치 우연히 발견한 것마냥 “찾았다!!”를 외치며 다가가면 머리를 긁적이는 시늉을 하며 “아잇- 제안이가 걸렸네”하며 아쉬운 척 연기를 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좋아한다.


1호는 동생이 찾지 못할 곳으로 숨는 데에 재미가 들렸다.

그래서 숨기 전에 꼭 내가 어디에 숨는지 확인한다.

내가 저 아이의 벤치마킹 대상인 셈이다.


내가 몇번 술래하면서 속성으로 게임을 끝내버렸더니 그 뒤로는 술래를 시켜주지 않는다.

나는 늘 숨는 포지션인데 최근 아주 좋은 자리를 찾았다.


1호한테도 안걸린 비밀 포인트


저기 누워 있으면 9살 4살 창의력으로는 아직 상상도 못한다.

무엇보다 저기 자리 잡으면 이 무더위 속에서도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고 심호흡 한번에 머리가 맑아진다.


비밀 포인트에서 바라본 하늘.


어두워진 하늘을, 언제 이렇게 나른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살랑거리는 사람과 까아만 하늘과 “엄마 어딨어”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짐이 반복되는 동안,


진짜 그 잠깐이 꿀 같은 휴식이 된다.


둘째 목소리에 울음이 담기기 시작하면 조용히 미끄럼틀을 내려와 “짜잔!!”을 외쳐준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에게 마법사, 최소 숨박꼴질 천재가 된다.


숨박꼭질을 질릴 만큼 하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먹고 집으로 향한다.

미끄럼틀을 등지니 묘하게 아쉽다.


숨박꼭질이 좋을 나이, 바야흐로 38.


아-


그리고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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