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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Sep 24. 2021

터울 조절에 실패했다

육아 종합 선물 세트가 된 상황

아이가 크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어른들은 "처음이니까 어려운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냥 그맘때 아이가 주는 힘듦, 투정, 상황 같은 것이다.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해 나갈 수록 자연 해소되는 문제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 문제가 있다.

차라리 처음이라 어렵고 두번째라 더 쉬워지면 좋으련만.

아 물론 1라운드보다 2라운드가 더 쉽긴 하다.

다만, 그것은 '난이도가 낮아짐'이 아니라 '난이도에 익숙해짐'이기 때문에, 다른 문제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상황 전반의 난이도가 올라가 버리면 2라운드라고 해서 조금도 수월해지지 않는다.

마치 게임에서 내 레벨이 올라가면 몹들의 레벨이 함께 올라가거나 핸디캡이 늘어나는 상황처럼 말이다.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우리집이 외출을 준비한다고 가정해 보자.


9세.

그는 어디로 갈지 언제 갈지 간섭하면서 가고 싶은 곳과 아닌 곳이 분명하고 외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거기는 가기 싫고 지금은 가고 싶지 않고 그렇게 가고 싶지 않고 자기는 딴데 가고 싶고 지금 그걸 하러 가는건 엄마 아빠만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할 줄 아는 어린이. 정말 돌아버리겠다.


4세.

어디 근처로 외출이라도 할라 치면 씻지 않으려고 이히히히 거리며 도망다닌다. 

옷을 입히면서도 한참을 씨름해야 하는데 장난을 치는 데 정도라는 걸 모른다.

이미 나가기 전에 에너지의 50% 정도는 소진해버리고 말지만, 지치면 안된다.

차가 다니는 길이 위험하다는걸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모르는 상황이며, 실내 실외 할 것 없이 냅따 뛰는 놈을 잡으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1세 (10개월).

의사 표현도 적고 준비도 쉽다. 그냥 안아 들면 그만이라.

그러나 한번의 외출을 위해서 챙겨야 할 짐이 쇼퍼백으로 하나 가득.

그렇다. 말 그대로 하나 가득이다.


힘들게 준비해서 외출하면, 그 다음부터는 버틸만 하면 좋으련만.

나에게 펼쳐질 미래가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한쪽 어깨에 빵빵하게 차오른 쇼퍼백을 매고 아기띠 혹은 유모차로 셋째를 모신 채, 둘째가 뛰지 못하도록 혹은 안전하도록 온갖 역량을 총 동원하여 다독이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면 첫째에게 SOS를 날리지만 우선 내게 돌아올 답은 "아~ 싫은데. 왜 그래야 되는데."가 분명하므로, 이 과정에서도 설득과 납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다.

나는 터울 조절에 실패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어야 할 문제를 동 시간대에 복합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어제는 남편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딱 2년만 지나면 편할 것 같은데, 내가 그 2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몇분 후면 둘째가 하원한다.

한시간 정도 지나면 첫째도 하교한다.


아- 저 가을 하늘에 있는 구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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