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입찰 사업은 이렇게 평가하는구나
최근 약 9억 정도 되는 정부 입찰 사업의 평가 위원으로 참석했다.
발표를 듣고 최종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자리였다.
정부 입찰 사업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겸, 또 상당히 이색적인 경험을 한 부분도 있어서 기록삼아 남겨 둔다.
나는 약 8명의 평가 위원 중 한명 이었고 총 4팀이 발표하는 자리었다.
내 앞에는 ‘평가위원’이라고 쓰여 있으니 당연히 발표하는 분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
게다가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안면이 있다 해도 더더욱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사전에 입찰 관련 서류들이 주어지긴 했지만 발표할 기업의 제출 자료는 그 어느 것도 사전 제공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미리 컨택하여 비리를 저지를 수 있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기업은 자료를 수백장 제출하셨던데 그걸 약 30분 정도 시간 안에 모두 살펴 보고 꼼꼼히 평가하는건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가 위원이 되어 보니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보였다.
먼저, 타사 대비 우리의 경쟁력 1~2가지를 명확하게 정리해서 확실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모든 기업이 비슷하 수준으로 갖추고 있는 역량이 있다. 대체로 기술적인 부분, 과제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스킬셋 영역이었다.
그 위에 각 후보 기업의 차별성이 더해지는데, 이 차별적인 경쟁력을 비교하여 내 마음 속 원픽을 결정하게 된다.
나머지 부분은 비등비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표하면서 딱 한번 언급했다고 해서 전달이 되는건 아니다.
평가 위원들은 이 발표 내용을 처음 보기 때문에 귀에 잘 안들어온다.
그것보다는 전체 발표 내용을 관통하여 경쟁력을 꾸준히 어필할 수 있는 구조로 정리하는 것이 더 확실하게 와닿았다.
대략 원픽을 정하면서 점수를 부여하기 때문에, 발표할 때 평가 항목을 빠짐없이 다루는건 중요하다.
실제로 배점이 낮은듯한 부수적인 평가 항목의 경우,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인지 발표하면서 빼먹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그 기업에 점수를 잘 주고 싶어도 모르는 내용에 대해 평가를 할 수 없으니 평균 점수를 주기도 부담스럽다.
그래도 가장 괘찮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선정되도록 다른 항목에서 점수를 조정하긴 한다.
그러나 평가 위원은 1명이 아니기 때문에, 치열하게 경쟁할 만한 상대가 있다면 이런 점수, 그러니까 배점이 낮은 듯한 부수적인 항목의 점수가 캐스팅 보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소소하게 여기는 편법이 치명적인 결함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총 4팀의 발표를 들었는데, 놀랍게도 그 중 2개 팀의 발표 자료에 내 얼굴이 있었다.
내가 나온 컨텐츠가 마치 자사의 컨텐츠, 자사의 샘플인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모르는 분들이고 나도 모르는 분들이었다.
내 이름도 공개 안되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으니, 그 자리에 내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거다.
그러나 평가 위원인 내 입장에서는, 저작권이고 초상권이고 길거리 쓰레기인줄 아는 기업의 손을 잡아주기는 어려웠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별게 나에게는 참 치명적으로 와닿았다.
난 아직도 내 얼굴이 나오던 그 순간, 내 얼굴을 아는 사업 운영자가 나를 보며 일으키던 동공 지진을 잊을 수가 없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평가위원 간의 논의는 없었다.
평가지 취합 후 최하점과 최상점을 제외한 나머지 점수의 평균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엄숙하게, 인사 이외의 대화도 자제했고 쉬는 시간도 대화 없이 각자 볼일만 봤다.
그래도 한 기업 당 할당된 평가 시간이 짧은 건 아쉬웠다.
솔직히 시간을 더 많이 준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준비해주신 기업을 생각해서 좀더 긴 시간 평가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