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다 Sep 30. 2021

나는야 모유수유 애찬론자

모유수유가 좋아요

난 세아이 모두 꽤 길게 모유수유를 했다.

첫째 둘째 모두 거의 2년, 막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난 모유수유가 좋다. 애찬론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가장 큰 이유는 나만 나눌 수 있는 아이와의 교감같은 것이다.

그 묘한 느낌이 있다.

아이를 먹인다는 사실보다 내 몸에서 아이 식사 나온다는 인체의 신비로움(?) 같은 거.

아이가 거기서 나온다는 걸 믿고 쪽쪽 빨면서 집중했다가 딴짓했다가 하는게 재밌다.

내 가슴에 붙어서 땀 나도록 열심을 다 하는 그 옆 얼굴이 너무 귀엽다.

밤에 자다가도 내 목소리가 들리면 눈도 뜨지 않고 입을 벌리며 가슴으로 파고드는 모습에서 오는 충만함 같은 것도 있다.


내가 게으른 것도 한몫한다.

외출할 때마다 짐을 한보따리 싸는 것도 귀찮고 분유를 타는 과정도 번거롭다.

그냥 까기만 하면 되는 편의성이 나에겐 너무 매력적이었다.


물론 내가 모유수유를 애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순 없다.

첫째는 회사에 데리고 다녔고, 둘째는 회사와 집을 오고가며 먹였다.

셋째는 코로나 이후 태어난 아이라 거의 나의 재택근무를 함께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먹일만큼 모유량이 충분한 것도 주요했다.

젖몸살은 필수코스였고 짜서 버리는 일도 많았다.

첫 조카가 큰 아들과 20일 정도 차이나는데, 동생네가 나랑 놀러갈 때면 분유를 안싸올 정도로... 양이 많았다.


내가 모유수유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한 이유는 어쩌면 내가 워킹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돌봄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엄마와 아이가 함께 하는 물리적인 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난 이 상황에서 아이와 애착형성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모유수유를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모유수유를 선호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젖소 취급을 받아도 된다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모유수유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분유를 먹이는 엄마를 비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가 크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로움이 수반되는가.

그러나 이 모든걸 무시한 채, "아이가 통통하네"라는 어른들의 칭찬에 "애미가 젖이 좋아서 그래"라는 시어머니의 코멘트가, 나 역시 반갑지 않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 생활을 하고 산후도우미의 협조를 받는 초반에, 처음 출산한 대다수의 엄마들은 자신의 가슴이 오롯하게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출산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충격적이겠지만, 수많은 출산 관계자(?)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내 가슴의 안부를 묻고 둥의 없이 불시에 만져 보기도 한다.


모유수유의 단점도 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쉽게 아이의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에, (어쩌면) 아이에게는 엄마 몸 중 가장 소중했던 장난감과의 이별을 연습시켜야 한다.

영양분이 부족하니 이유식에도 더 많이 신경써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내가 겪을 불편함은 차지하더라도, 단점은 이렇게 많다.


갑자기 왠 모유수유 고백이냐고?


며칠 전 지인의 산후도우미가 했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에 누가 모유수유를 해요. 다들 초유만 먹이고 단유하지. 별로 좋을 것도 없는데 사서 고생하지 말고 산모님도 단유하세요." 라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모유수유를 한다고 해서, 옛날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냥 모유수유를 '선택'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숨이 막힐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