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에 용기 낼 수 있었던 이유
이게 언제지, 2007년인가 2008년쯤.
어쨌든 10년이 더 된 이야기인 것 같다,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
대학을 졸업했고 4년쯤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결혼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
나는 일할 거야, 나는 돈벌거야 하는 생각을 한번도 놓은 적이 없지만, 동시에 난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었다.
다 하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기에는, 과연 내가 둘을 동시에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무척’, 말 그대로 ‘정말 많았다’.
내 고민은 그 길이 내가 간접적으로라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평생 전업주부였던 엄마 덕분에 나는 많이 행복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항상 엄마가 있었고, 엄마가 있는 집이 너무 좋았다.
그 안정감과 따뜻함. 지금 그 시절 집을 떠올려 보면 시멘트 천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렌지 빛 필터가 자동 생성될 정도로 포근했다.
일하는 엄마를 가진 아이들이 누리는 장점을 모르니까, 워킹맘이 되려는 내 선택에 대해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졌던 것 같다.
동시에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욕심껏 일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막연했다.
한번 해보자- 라고 하기에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니까 나 답지 않게 신중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한 대기업의 최연소 여자 상무님을 만났다.
해외대학 MBA 출신에, 컨설턴트 경력을 가진, 지금의 회사로 입사 후에도 매우 빡센 삶을 살다가 뒤늦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임원으로 승진하신 분이었다.
내가 너무 궁금한건 2가지 였다.
그렇게 일 욕심 많고 잘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결혼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었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였다.
상무님은 나와 다르게 그 전까지는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남편을 만나서 평생 같이 살고 싶어졌다고 하셨다.
하고 싶은 걸 안하는 방법은 없으니 ‘그냥’ 하기로 했다고.
의외로 조금은 대책 없는 로맨틱한 멘트가 나에겐 힘이 되었다.
아- 저런 사람도, ‘그냥’ 하는구나.
안하는 방법이 없으니 그냥 하고, 한 다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지금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니 터지는 상황 막아 가면서 살아보기로 했다는 말이.
말 그대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길이 없고 답이 없으니 우선 하고 싶은 걸 한다는 단순한 접근이.
당시 나에게는 상황을 단순하게 보도록 만들었다.
흔히 결혼과 출산이 여성 커리어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 후에 승진까지 가능했나
단점이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좋지만, 무엇이든 이기는 방법의 우선 순위는 강점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많은 워킹맘들이 놓치는게, 자신들이 약해지고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는데, 워킹맘이 되면서 얻는 것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자기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얻었나 보았더니, “approachable을 얻었더라”고 했다.
편하게 대하기엔 조금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을지 모르는 ‘여성’ 직원이라는 성별이 ‘아줌마’가 되고 보니, 남녀노소할 것 없이 편하게 다가오더라고.
거기에 애까지 낳고 나니까 웬만한 어르신들, 중진 임원 분들도 더 이상 자신을 어리게 보지 않고 어른 대접 해주더라고.
게다가 늘 빡세고 어그레시브한 이미지가, ‘엄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면서 동료들에게 좀더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고.
여성이 아줌마가 되는 것.
고작 아이를 낳았다고 어른으로 취급해주는 것.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접근법도, 얻게 된 사실도, 해석하고 활용하는 맥락도 조금은 컬쳐 쇼크였다.
사실은 나 역시 불편한 사실, 사회의 약자가 되어 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인데, 그 속에서 경쟁력을 찾고 활용한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어쨌든 상무님과의 만남은, 내 인생을 통털어 가장 결정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
이제 내 나이도 얼추 상무님과 비슷해져 간다.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내 경험도, 내 의견도 상무님과 다르지 않다.
특히나 빡센 이미지, 강한 여성, 공격적인 태도를, 피하려고 피하려고 해도 여성스럽지도 않은 내가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면 할 수록 통제 되지 않은 채 퍼져 나가던 내 이미지가.
결혼과 출산 만으로 만만하고 친근해진건 정말 만족스러운 성과다.
구글은 신입 임원에게 approachable을 강조한다고 한다.
구글에서 임원이 될 정도면 얼마나 잘 났겠나.
그러니 같이 일하는 팀이 뭘 해도 마음에 안들고 부족하고… 별 다른 의도를 발휘하지 않아도 자기주도적 프로젝트와 일방적 리더십을 갖게 될 위험이 크다.
실무 레벨에서는 어느 정도 그래도 된다.
하지만 리드하는 입장이 되면 나 혼자 일할 수 없기 때문에(그만한 덩치가 아니니까), 그리고 함께 일하는 구성원의 성장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누구든 쉽게 다가오고 피드백을 구하고 의견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리더의 경쟁력’이 된다.
지금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데 후회할까봐 무섭다면,
이 글이 콩알만큼의 희망과 기대와 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