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다 Oct 03. 2021

결혼과 출산으로 후회할까봐

가보지 않은 길에 용기 낼 수 있었던 이유

이게 언제지, 2007년인가 2008년쯤.

어쨌든 10년이 더 된 이야기인 것 같다,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

대학을 졸업했고 4년쯤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결혼은 점점 현실이 되었다.

나는 일할 거야, 나는 돈벌거야 하는 생각을 한번도 놓은 적이 없지만, 동시에 난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었다.

다 하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기에는, 과연 내가 둘을 동시에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무척’, 말 그대로 ‘정말 많았다’.


내 고민은 그 길이 내가 간접적으로라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평생 전업주부였던 엄마 덕분에 나는 많이 행복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항상 엄마가 있었고, 엄마가 있는 집이 너무 좋았다.

그 안정감과 따뜻함. 지금 그 시절 집을 떠올려 보면 시멘트 천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렌지 빛 필터가 자동 생성될 정도로 포근했다.

일하는 엄마를 가진 아이들이 누리는 장점을 모르니까, 워킹맘이 되려는 내 선택에 대해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졌던 것 같다.


동시에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욕심껏 일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막연했다.

한번 해보자- 라고 하기에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니까 나 답지 않게 신중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한 대기업의 최연소 여자 상무님을 만났다.

해외대학 MBA 출신에, 컨설턴트 경력을 가진, 지금의 회사로 입사 후에도 매우 빡센 삶을 살다가 뒤늦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임원으로 승진하신 분이었다.

내가 너무 궁금한건 2가지 였다.


그렇게 일 욕심 많고 잘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결혼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었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였다.

상무님은 나와 다르게 그 전까지는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남편을 만나서 평생 같이 살고 싶어졌다고 하셨다.

하고 싶은 걸 안하는 방법은 없으니 ‘그냥’ 하기로 했다고.


의외로 조금은 대책 없는 로맨틱한 멘트가 나에겐 힘이 되었다.

아- 저런 사람도, ‘그냥’ 하는구나.

안하는 방법이 없으니 그냥 하고, 한 다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지금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니 터지는 상황 막아 가면서 살아보기로 했다는 말이.

말 그대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길이 없고 답이 없으니 우선 하고 싶은 걸 한다는 단순한 접근이.

당시 나에게는 상황을 단순하게 보도록 만들었다.


흔히 결혼과 출산이 여성 커리어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 후에 승진까지 가능했나


단점이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좋지만, 무엇이든 이기는 방법의 우선 순위는 강점을 강화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많은 워킹맘들이 놓치는게, 자신들이 약해지고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는데, 워킹맘이 되면서 얻는 것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자기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얻었나 보았더니, “approachable을 얻었더라”고 했다.

편하게 대하기엔 조금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을지 모르는 ‘여성직원이라는 성별이 ‘아줌마 되고 보니, 남녀노소할  없이 편하게 다가오더라고.

거기에 애까지 낳고 나니까 웬만한 어르신들, 중진 임원 분들도 더 이상 자신을 어리게 보지 않고 어른 대접 해주더라고.

게다가 늘 빡세고 어그레시브한 이미지가, ‘엄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면서 동료들에게 좀더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고.


여성이 아줌마가 되는 것.

고작 아이를 낳았다고 어른으로 취급해주는 것.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접근법도, 얻게 된 사실도, 해석하고 활용하는 맥락도 조금은 컬쳐 쇼크였다.

사실은 나 역시 불편한 사실, 사회의 약자가 되어 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인데, 그 속에서 경쟁력을 찾고 활용한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어쨌든 상무님과의 만남은, 내 인생을 통털어 가장 결정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

이제 내 나이도 얼추 상무님과 비슷해져 간다.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내 경험도, 내 의견도 상무님과 다르지 않다.

특히나 빡센 이미지, 강한 여성, 공격적인 태도를, 피하려고 피하려고 해도 여성스럽지도 않은 내가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면 할 수록 통제 되지 않은 채 퍼져 나가던 내 이미지가.

결혼과 출산 만으로 만만하고 친근해진건 정말 만족스러운 성과다.


구글은 신입 임원에게 approachable을 강조한다고 한다.

구글에서 임원이 될 정도면 얼마나 잘 났겠나.

그러니 같이 일하는 팀이 뭘 해도 마음에 안들고 부족하고… 별 다른 의도를 발휘하지 않아도 자기주도적 프로젝트와 일방적 리더십을 갖게 될 위험이 크다.


실무 레벨에서는 어느 정도 그래도 된다.

하지만 리드하는 입장이 되면 나 혼자 일할 수 없기 때문에(그만한 덩치가 아니니까), 그리고 함께 일하는 구성원의 성장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누구든 쉽게 다가오고 피드백을 구하고 의견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리더의 경쟁력’이 된다.


지금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데 후회할까봐 무섭다면,


이 글이 콩알만큼의 희망과 기대와 팁이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력 단절, 괜찮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