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 돌치레가 가와사키라니...!
11월이 돌이었던 3호는 12월에 가와사키병을 앓고 치료를 받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던 가와사키병. 하지만 겪어보니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아이 셋 키우며 처음으로 입원할 만큼 큰 병(우리집에서는 굉장히 큰 병)을 겪은터라, 아픈 아이를 둔 '엄마의 태도' 같은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알고 있었던 것과 몰랐던 것,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서 남기려고 글을 쓴다.
1. 가와사키병은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러스 검사 같은 정확한 진단법은 없다.
그러다 보니 4가지 이상의 임상이 확인되면 가와사키병이라고 진단한다.
2. 그러나 치료법은 있다.
12시간에 걸쳐 정맥 글로불린 주사를 맞는 것.
치료법이 있는 만큼 사망율은 0.01% 수준이고 재발률은 3~5%로 위험한 질병은 아니다.
다만 입원을 요한다는 점에서 보호자의 노고가 만만치 않은 병인건 사실이다.
3. 전염성은 없다.
한집에 사는 사람에게 옮을 위험은 없다.
4. 가와사키병의 임상 증상은 다음과 같다.
- 5일 이상 지속되는 열
3호는 38도 이상의 고열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고열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37.5도 내외의 미열이 지속되는 경우도 많아 보인다.
항생제를 써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 발진
열꽃과 구분해야 한다. 열이 떨어지면서 몸에 피어오르는 열꽃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발진은 고열(또는 열)과 동시에 올라오는 발진이다.
신체 부위에 따라 발진 모양이 다를 수도 있다.
3호는 배부터 발진이 시작되었는데, 배는 뭐가 난 것처럼 땀띠 같은 발진이었는데, 허벅지 등에는 부분적으로 붉어지는 발적 모양이었다.
- 손과 발, 사지 말단 부종
손과 발이 빨갛게 되면서 부종처럼 부었다.
- 임파선이 부어오름
양쪽 귀 대각선 뒷쪽이라고 할 수 있는 임파선(림프절이라고도 한다)이다. 거기가 부어오른다.
그래서 가와사키병 초기에는 소아과에서 임파선염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고 한다.
- 눈과 입의 변화, 딸기혀
혀가 딸기처럼 빨갛게 되는데 동시에 혀 돌기들이 부어 오르면서 마치 딸기처럼 변한다.
눈이 충혈되고 입술이 붉어지고 건조하게 트는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딸기혀 증상은 무척 중요하다.
알아봤을때, 딸기혀 증상이 나오는건 가와사키병과 성홍열 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그걸 알고 나서, 차라리 가와사키이길 바란게 사실이다.
성홍열은 진단 받으면 병원에서는 보건소에 신고해야 하는 2종(맞나..) 전염병이다.
실비보험사에서 위로금을 지급할 정도라고 한다.
집에는 두명의 아이가 더 있다.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가와사키이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5. 눈으로 보이는 증상은 아니지만, 이 병에 감염되면 심장 초음파를 통해 관상동맥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를 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만일 치료가 늦어지거나 심각해져서 8mm 이상 늘어나면 영구적으로 회복하기 어렵다.
이 경우 평생 혈전이나 협착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내가 처음으로 가와사키병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반드시 기억해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다.
내가 놓치면 돌이킬 수 없어지니까.
1. 반드시 열이 5일간 지속되지 않아도 관상동맥이 늘어났다면 가와사키병으로 진단할 수 있다.
열의 지속이나 눈으로 보이는 임상보다는 심장초음파 결과가 더 주요했다.
2. 모든 임상 증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거나 유지되지 않는다.
가와사키병은 전형성과 비전형성으로 나뉠 만큼 증상이 다양하고 발전 단계를 정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보통 4가지 증상이 확인되면 가와사키병이라고 진단한다지만, 의사를 만난 시점에서 4가지 증상이 모두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증상은 올라왔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증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증상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3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된 증상은 임파선 밖에 없었고 눈 충혈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3. 피검사를 통해서도 가와사키병을 의심할 수 있는 수치들이 있다.
가와사키를 의심하면서 인터넷에 뒤져보면 '가와사키는 피검사 등으로는 확인이 어려워...' 라는 표현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3호가 응급실에서 피검사를 한 결과를 들을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가와사키를 의심하고 있어서 전해질 수치를 봤는데 낮았어요. 이것도 증상 중 하나로 보기 때문에...(이하 중략)" 이라고 하셨다.
가와사키가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어필해서 여러 검사 속에 숨겨진 힌트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왜 이토록 다양한 임상 증상들이 나타나는가?
가와사키병은 혈관염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염증이 중간 크기의 혈관을 타고 다니며 갑자기 자리 잡아 문제를 일으키고, 떠나면 대뜸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혈관이 있는 곳, 예컨대, 혀나 입술, 관상동맥 같은 곳에서 증상이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마치 온 몸 여기저기서 바이러스들이 게릴라전이라도 치루듯 각종 증상이 터져 나오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의 면역력이 떨어지는듯한 조짐은 있었다.
본격적으로 열이 나기 전, 약한 감기 증상이 지속되었고 약을 먹으면 잡혔다가 안먹으면 슬슬 증상이 올라오는, 그런데 병원을 가기에는 좀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초기부터 가와사키병을 의심했던 이유는 발진이었다.
지금까지 감기에 걸려도 열은 안나던 아이인데, 38도를 웃도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이 나고 얼마 안되서 배에 땀띠 같은 발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열난 아이를 너무 오래 안고 있어서 정말 땀띠라고 생각했는데, 8시간쯤 지나자 허벅지를 중심으로 열꽃처럼 홍반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열이 나면서 동시에 피부에 올라오는 발진이 만만치 않은 증상이라는건 안다.
게다가 발진의 모양이 제각각이라면 더 심각한 사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모든 질병을 외울 순 없으니 심각(이라고 하기에는 의사들이 보기엔 별거 아니지만)한 증상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발진이었다.
새벽부터 열이 났고 밤에 발진이 올라오고 다음 날 아침 발진이 다른 모양으로 허벅지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 무렵, 손이 붉어지며 부종처럼 부어올랐다.
본격적으로 가와사키를 의심하며 귀 뒤를 만져보니 오른쪽 임파선이 부어 있었다.
바로 동네 소아과에 갔다.
소아과에서는 분명 가와사키로 볼 수 있는 증상들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임상인 5일 간 지속된 열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하긴 어렵다고 했다. (열이 난지 48시간도 안된 시점이었다)
하지만 열이 난지 얼마 안되었어도 관상동맥이 늘어났다면 가와사키병으로 진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동네 소아과에서는 별다른 처방은 받지 않고 상급 병원으로 갈 수 있는 진료 의뢰서를 써주셨다.
다음 날, 발진이 옅어 지면서 손의 부종이 가라앉았다.
붉어졌던 것도 다 빠졌다.
입술과 함께 눈도 충혈된다는데, 입술은 좀 빨간 것 같지만 눈은 전혀 충혈되지 않았다.
(3호는 완치되어 퇴원할때까지 눈은 충혈되지 않았었다)
열을 제외한 증상이 빠지기 시작하자 '아닌가?' 싶은 상태가 되었다.
그냥 임파선염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임파선염도 큰 병원에 가는게 더 좋으니까 가야지 마음만 먹고 있을 무렵, 딸기혀가 올라왔다.
그때까지 돌렸던 모든 행복 회로를 멈추고 입원 가방을 쌌다.
가와사키병은 동네 소아과에서 초기 오진률이 높은 병이라고 한다.
맘카페나 블로그 후기를 찾아보면, 은근 많은 사례들이 '항생제로 열이 잡히지 않아서' 큰 병원에 갔다가 가와사키 진단을 받곤 했다.
다 초기 오진으로 항생제를 먹다가 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까. 항생제를 먹어도 열이 잡히지 않는 것이 가와사키병의 임상 중 하나라고 설명한 글도 봤다)
그만큼 증상만으로는 좀 독한 바이러스성 질병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일 거다.
나 역시 응급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받은 진료에서 "가와사키병이 아주 흔하진 않고 임파선 부은걸 제외하고는 독한 바이러스에 걸렸을때 나타나는 증상과 동일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고요" 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가와사키병은 치료 시기만 놓치지 않으면 완치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이를 5일이나 열에 시달리게 하는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치의 선생님도 그렇고 담당 교수님께서도 "엄마가 빨리 오셔서 일찍 치료한 덕분에 빠르게 호전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돌이켜보면, 열 5일 안기다리고 곧장 상급 병원 응급실로 쳐들어간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동네 소아과에 가서 아이 증상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진료 의뢰서를 받아 왔다.
5일 기다리지 않아도 심장 초음파 결과가 있으면 가와사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급 병원 외래는 여러모로 망설여지는 선택이었다.
대기도 길고 갔는데 의뢰서 보고도 발열 상황을 기다려보자고 하면 끝나는 일이라.
그래서 그냥 열이 안떨어지기도 하니 응급실로 들어갔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소아응급센터는 서울대병원이었다.
물론 3호가 접수한 후 곧장 소생실로 들어갈만큼 굉장히 응급한 환자가 들어와서 30분 이상 대기실에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다른 변수 없이 빠르게 검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3호의 증상이 전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료를 보는 특정 시점만 놓고 보면 가와사키병이라고 할만한 임상들이 몇가지되지 않았었다.
실제로 응급실에 들어갔던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전신 발진과 임파선이 부은 것, 딸기혀가 된 것 정도가 관련 증상이었다.
그래서 열이 처음 났던 시점부터 열나요 앱에 열과 해열제 복용, 기타 증상들을 기록해뒀고, 응급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A4에 주간 캘린더 그리듯 날짜와 시간 별로 나누어, 어떤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언제 사라졌는지 도표화 시켰다.
(사진으로라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지금은 없다. 교수님이 가져가셨다.)
실제로 병원, 특히 대학병원에 가면 여러 사람들이 같은 것을 여러번 묻는다.
열은 언제부터 났는지, 어떤 증상이 있었고, 언제 사라졌는지 등등.
인턴이 와도, 레지던트가 와도 그 질문들을 시작하면 그 도표를 보여줬고, 다들 그 종이를 사진으로 찍어가곤 했다. (교수님께서만 그냥 들고 가버리셨...)
덕분에 응급실에 간 당시에는 사라졌지만 가와사키병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을 잘 전달할 수 있었다.
응급실의 첫 진료에서부터 가와사키병 가능성을 우려하며 어필했던 것도 빠른 치료에 도움이 되었다.
"가와사키는 아니고 독한 바이러스..."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능성이 1%라도 있으면 관련 검사 부탁 드려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다 보니 피검사를 하면서도 전해질 수치 등을 보게 되었고 심장 관련 수치들도 확인해주셨다.
그리고 곧장 심장 초음파를 결정하셨다.
눈치 없는 진상 보호자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고 우려스러운 태도로 가와사키병 가능성을 어필했던 이유는, 이게 오직 임상으로만 판단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병이 있을 순 있다.
성홍열이 그렇고 인플루엔자가 그렇다.
하지만 이들은 진단 키트가 있어서 간단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실제로 3호 역시 응급실에서 독한 바이러스를 의심하셨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인플루엔자 검사부터 진행했었다.
임상으로 판단한다는건 얼마나 잘 관찰했느냐에 달렸다.
아이를 가장 오랫동안 관찰해 온 엄마의 설득과 어필이, 의사들에게도 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아이마다 다르지만 가와사키병에 의한 임파선 변화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오른쪽 임파선이 부었다"고 말하기 전에는 먼저 만져보려고 시도한 간호사나 의사가 한명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열이 나기 시작한지 3일 만에 정맥 글로불린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심장 초음파 결과 관상동맥이 조금 늘어나 있었고 소아심장을 전문으로 하시는 교수님께서 전담으로 배정되며 응급실에서부터 글로불린을 맞게 되었다.
12시간 글로불린을 맞은 다음 이틀 간 열이 나지 않아야 한다고 들었는데(열이 나면 2차 투여), 정확히는 12시간 맞은 다음 이틀 간은 열이 날 수 있지만, 그 후에는 열이 나지 않아야 하는 거였다.
실제로 3호는 글로불린을 다 맞고 나서 이틀 간은 계속 열이 났다가 해열제 먹으면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물론 의료진 모두가 초조한 시간이었다.
아침 7시 경, 마지막 해열제를 먹고 나서 오전에 교수님이 회진 도시면서 "다시 열이 오르면 오후에 2차 투여 진행해야 할게요. 기적처럼 멈추면 좋겠네요."라고 말씀하실 정도.
그리고 정말로 기적처럼 열이 멈췄다.
하루 더 지켜보자고 하셨고 다음 날 바로 심장 초음파를 한번 더 봤다.
극초반에 살짝 늘어났던 관상동맥은 완전하게 돌아갔고 퇴원이 결정됐다.
응급실 포함 일주일 정도 병원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이후 매일 소량 아스피린이 처방되었다.
퇴원 후 3주를 조금 넘긴 시점에 외래를 잡고 초음파 검사 후 교수님을 만났다.
3호는 치료 시점이 매우 빨라서인지 초반에 봤던 초음파에서 혈관이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퇴원 전에 이미 회복된 상태였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니 아스피린 투여를 멈추겠다고 하셨다.
가와사키병 진단을 받고 4주 정도 되는 시점.
6개월 후 외래가 잡히긴 했지만, 투약도 없는 완전한 완치 판정을 받았다.
비록 생백신 예방접종은 모두 11개월 후로 밀렸지만, 아스피린을 끊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었다.
(아스피린을 먹을 때에는 피가 나면 잘 멈추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매우 조심스럽다고 한다)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입원을 해봤다.
하필 입원한 곳은 소아심혈관 병동.
과장 조금 보태면 우리 3호 제외하고는 모두가 생사를 오고 가는 환자들이었다.
일주일 간의 입원 끝에 3호는 완전히 회복했고, 나는 허리병을 얻었다.
(너무 아파서 디스크인 줄 알았다. 그냥 삔 거라고 한다.)
다신 겪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이 정도 에피소드로 넘어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저 이것이, 내 삼재의 오프닝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