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다 Aug 17. 2022

자괴감

나만 늙었다고 한다

매주 청소을 해주시는 청연 매니저님은 너무나 프로페셔널한 청소 실력과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다.

(역대 최고!)

단점은 딱 하나인데, 청소 실력에 비례해서 말도 많으신 편이다.


지난주였나, 처음으로 남편과 매니저님이 마주쳤다.

늘 시간이 어긋났는데 어쩌다 보니 겹치게 된 것.


5분쯤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을 만난 매니저님은 나를 따라와 조용히 말씀하셨다.


“애기 엄마도 시간 들여서 화장도 하고 꾸미고 그래. 살도 빼고.”


읽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원래대로라면 나에게 별로 타격감이 없는 말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꽤 흔히 들어온 이야기라 그렇다.


내 남편은 꽤 동안이고 자기 관리와 가꾸기에 시간을 아끼는 편이 아니다.

반면 나는 그런 쪽에 관심도 덜해서 그런지 자꾸 우선 순위가 다른 일보다 밀리곤 한다.

다시 말해, 멘트 자체가 사실이니 타격감이 없던 것이라고 봐야 맞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무 아팠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말이지.


이내 곧 이 상황이 아프면서도 신기했다.

왜 나는 이제 와서 이런 말에 자괴감을 느낄까.


아마도 그만큼 자존감이 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난 왜 이렇게 가치 없지, 난 왜 이리 소모적인가, 내가 잘하는게 무엇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나, 난 왜 이것 밖에 못하지… 같은 생각들.

이런 생각들이 어떤 것은 사실이 아니고, 한편으로 과장되어 있으며, 그저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한 망상이라는걸 머리로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한때는 지금 내가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하는 것이 원동력이 되었는데, 지금은 자기 비하의 재료가 되고 있다.


사실 내가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대충 알고 있다.

이건 나의 대표적인 번아웃 증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번아웃이 오면 (아직까지는) 몸이 아프진 않지만, ‘이렇게 했는데도 성과가 안보인다’는 생각 때문인지 자존감이 바닥치는 증상이 나타나곤 한다.


그럼 나는 왜 번아웃이 왔나.


글쎄…

일도 일이지만 아이셋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난관이였지 않을까.

그 와중에 남편은 여러모로 너무 바쁘니까.


이 문제를 당면하며, 내가 징징이가 되는 이유는 내가 할수 있는게 징징거리기 밖에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따로 친구를 만난 것도 2년이 훌쩍 넘었고, 심지어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는 본 적도 없다.

힘들다고 해도 일을 멈출 수도, 육아를 접을 수도 없다.

맡길 곳도, 심지어 함께 버텨줄 파트너도 없다.

친정엄마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도움을 주시지만 어느 정도 선이 있으신 분이고, 결국 내 몫은 내가 떠앉아야 하는게 현실이다.

그래야 하는건 나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징징이가 된다.


나만 늙었다니.

억울하다.


사실은 나도 이쁘고 싶고 잘 관리하고 싶은데.

나도 아침 등원 전쟁 치루고 도망치듯 쌩얼로 뛰쳐 나가고 싶지 않은데.

아이들의 뒤척임에 깨지 않고 잠도 푹 자고 싶고, 주말에는 혼자 산책도 하고 싶은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싶다가도 억울하고 아픈 밤.

언젠가는 끝날 일일까.

나도 언젠가는 추억처럼 되새길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드러내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