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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Apr 05. 2023

학부모 상담을 다녀왔다

초4 남아의 희망과 절망

1호 학부모 상담이 다가왔다.

고작 15분인데 이게 왜 이렇게 떨릴까. 다행히 4학년 담임 선생님은 매우 다정하시고 따뜻한 시선을 가진 분이시라 학부모로서도 덜 긴장하게 해주신다. 물론 그렇다고 뇌에 힘을 풀면 안된다. 뇌에 힘을 뽝 줘야 한다. 나에게 학부모 상담은 뚜렷한 목표가 있다. 바로 1호에 대해 “이래도 되나? 보통 애들은 다 이렇나?” 싶은 부분에 대해 여쭤 보는 것. 혼자 아무리 고민하고 인터넷 뒤져봐야 답이 안나오니 그쪽으로는 프로이신 선생님께 물어보려는 목적이 있다.


어쩌다 보니 시간이 맞아서 아이 아빠와 함께 했다. 우리는 상담 시간보다 15분 가량 일찍 도착했다. 긴장해서가 아니다. 분실물센터에 가서 1호의 넥타이와 간절기 점퍼를 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호의 물건들은 그 곳에 없었다. 이번에는 꼼짝 없이 재구매인가.


시간이 되어 교실에 들어갔다. 아이 담임 선생님은 반갑게 맞이해주시며 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인사치레였을까. 선생님은 남편을 보며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잘 생겼나 했더니 아버님과 똑같이 생겼네요!! 어머니, 나중에 잘생긴 사람하고 결혼하는 비법 좀 알려주세요.”라고 하셨다.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이셨겠지만, 선생님은 너무 좋은 분이니까, 행여나 진심이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렸다. 잘생긴건 결혼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저도 몰랐는데 이제는 안다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1호의 강점은 명확했다. 압도적인 포용력과 스스럼없는 표현력을 내세운 교우관계.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한테 끌려 다니거나 할말도 못하는 호구는 아니다. “우리 반이 32명이라 내 친구는 31명”이라고 말하는 아이. 작년 담임 선생님은 1호에 대해 ”우리반에서 고마워/미안해/괜찮아/도와줘/니가좋아 라는 말을 가장 잘하고 많이 하는 아이“라고 설명하셨다. 그게 바로 1호의 강점이다.


학업적으로도 상당히 총명하며 특히 문해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해 주셨다. 글쓰기를 시켜보면 컨텐츠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1호의 치명적인 단점이 떠올랐다. 마침 눈 앞에는 1호가 작성했다는 자기소개 문서가 있었다.


“아이가 워낙 악필이라서요, 지도하시기엔 괜찮으신가요?”


선생님도 알고 계신 사항이라 어색하게 웃으시며 말하셨다. “그쵸. 필체로는 저희 반에서도 거의 최악이긴 해요.”

그러다가 목소리를 반톤 올리시며 희망을 이야기하셨다. “그런데 좋아질거에요. 다 자기가 필요하면 알아서 고쳐지는데, 살면서 불편하면 고치게 되죠.”


그러나 나는 그 쪽으로 반대 사례를 알고 있다. 남편을 보며 덤덤하게 물었다.


“아버님, 살면서 불편해지면 스스로 자연스레 나아지게 되던가요?”


남편은 1초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오. 선생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아무리해도 나아지질 않아요. 물론, 제가 초등학교 때는 저것보다는 잘 썼던 것 같습니다만.“


그 와중에 지가 아들보다는 낫단다, 하이고.


컨텐츠는 좋은데 심각한 악필.

이건 1호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남편 역시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로스쿨 다닐 때, 시험을 봤는데 교수님께서 남편의 답안을 모범 답안으로 뽑아 스캔파일을 인터넷에 올려주신 적이 있었다. 답안 여기저기에는 교수님께서 밑줄을 그은 다음 물음표 표시를 해두신 흔적이 있었다. 읽다가… 무슨 글자인지 모르시겠는거지…  내가 남편이 써둔 메모를 보면서 이게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것은 한자”라고 답한 적도 있다.


아무튼 남편의 적극적인 자기 변호로 악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애매해졌다. 그렇담 피할 수 없는 1호의 두번째 단점을 언급할 때다.


“그리고 물건도 자주 잃어버리고 아직 가방 싸는 것도 봐줘야 해요. 책을 놓고가거나 숙제를 까먹는 일도 많고요.”


선생님께서는 이런 부분은 “아직은 생활지수가 좀 낮은 편이죠”라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이건 도와주면서 어른이 기다려야 하는 부분이라고. 원래 남자 아이들이 좀더 늦기도 하고, 아예 방치하지만 않으면 늦더라도 조금씩 잡혀 나갈거라고.

(벗은 옷은 빨래통에-라고 천번쯤 말하면 좋아질까…)


1호가 종종 시험을 엉망으로 볼 때가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학습 능력은 우수한데 생활 지수가 받쳐주지 못한데서 오는 격차”라고 해석해 주셨다. 모르는게 아니고 어려운게 아닌데, 쉽게 말하면 꼼꼼하지 못해서 시험 보는 법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한번은 1호가 영어 시험 점수가 과하게 낮은 적이 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굉장히 해맑게 “내가 답지에 옮겨 적어야 하는데 깜박했지 뭐야”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 터져 나가는 것은 오직 내 복장 뿐…


조금 찡한 일도 있었다. 선생님은 1호가 4학년 답지 않게 아기아기한 성격이고 아직 눈물도 많아서 애틋하고 귀엽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조금 마음이 아팠다. 집에서 1호는 2호와 3호를 돌봐야 할 큰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기아기할 수도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학교에서라도 선생님께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짧지만 알찬 학부모 상담이 끝났다. 고작 15분이지만 선생님과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많은 것들이 정리된 기분이 든다. 선생님이 워낙 프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구 상에 유일하게 나만큼 내 아이를 지켜보는 사람과의 대화라는 묘한 유대감 때문인 것 같다.



학부모 면담을 끝나고 나와보니, 들어갈 때는 긴장해서 보이지 않았던 만개한 벚꽃이 보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오전에 아이들과 공원놀이를 갔다가 찍어주신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상담 내용이 무엇이든 1호는 여전히 즐겁다. 앞으로도 아이의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알차게 채워져 가는 학교생활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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