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比喩)가 갖는 신기한 힘

새벽독서 59일. '깨닫겠다는 목표를 갖는다는 것'이란

by 단비

새벽독서 59일, 매일 글쓰기 85일, SSWB-Act 코칭 8주 차


새벽독서를 하면서 예전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책을 읽는다. 많은 문장들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며 읽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작은 의미 하나라도 꽉 붙들려는 태세로 문장 하나하나 샅샅이 살피며 읽는다. 우연히 마주친 문장 하나가 잠들었던 의식을 깨우고, 주저앉던 정신을 일으켜 세운다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가 아주 기발한 비유를 발견하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연상이 가능할까?'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비유는 머리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킨다. 짝이 잘 맞는 비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무거운 것을 가볍게 만드는 신기한 힘을 갖는다.


* 비유(比喩):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


아래의 문장은 한참 동안 내 머릿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다. 신기한 힘을 가진 비유 덕분이다.


나는 깨달은 사람도 아니고, 깨닫고 싶은 마음도 없다. 깨닫겠다는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마치 저울 위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몸무게를 줄여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주 잠깐은 좀 가벼워질 수도 있겠지만, 몸은 결국 더 세게 저울을 때릴 것이고 몸무게의 평균은 애초에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 크리스 나이바우어, <하마터면 깨달을 뻔: 인지심리학자가 본 에고의 진실게임> 중에서


세상의 진리를 깨닫겠다는 목표는 몸무게를 줄이겠다는 목표만큼이나 세우는 건 쉬워도 이루는 건 어려운 일의 표본이다. 그리고 세상의 진리를 깨닫겠다고 애쓰는 것은 몸무게를 줄이겠다고 저울 위에서 팔짝팔짝 뛰어오르는 행위처럼 어리석고 헛된 수고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울의 숫자가 잠시 내려가는 순간을 보기 위해 저울 위에서 뛰어오르기를 반복하는 것 같은 어리석음이 나에겐 없을까? 독서마저도 저울 위에서 폴짝거리는 헛수고일까? 어리석은 헛수고를 모두 걸러내고 나면 삶에 무엇이 남을까?


오늘의 새벽독서는 어리석은 헛수고를 생각하며 고요함 속에 마음이 시끄러워지는 시간이었다. 그 시끄러움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몰려와 상쾌한 기분으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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