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을 총 동원한 위로

위로수집 일지 10

by 단비

오랜만에 온 가족이 친정 집에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여느 때처럼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실없는 농담과 유치한 장난말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드는 아주 친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왜 그런 건진 나도 모른다.


가족들은 흘깃 나를 보고는 그냥 못 본 것처럼,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눈빛을 교환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엄마만 조용히 내 옆에 앉아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계속 눈물을 닦아주셨다. 아기를 재우는 것처럼 아무 말없이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다.


다음 날 저녁에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꼭 낮 동안 서서히 차오른 눈물이 단지를 가득 채우고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전 날과 똑같이 옆에 앉아서 눈물을 닦아주며 가슴을 토닥이셨다.


그 다음날 엄마와 나는 단둘이 시골 농막으로 갔다. 작고 아담한 별장처럼 지어진 농막은 엄마의 최애 힐링 스팟(spot)이다. 엄마는 농막에 들어서자마자 신기하게 생긴 향 받침대를 꺼내어 향을 피우셨다. 외국 갔을 때 사온 아주 비싼 향이라고 한다. 가는 연기가 한들한들 피어올랐고 은은한 향이 안개처럼 퍼졌다. 아주 비싼 보이차도 끓여주셨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목 넘김이 아주 부드러운 차였다.


그러고는 커다란 란탄 의자를 창가로 가져와 나를 앉히고선 발을 쭉 뻗어 창틀에 올려놓게 했다. 살이 닿는 발목 밑에 수건을 푹신하게 깔아주셨다. 창밖을 보니 창틀 안에 한라산이 빼곡히 들어찼다.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엄마는 새소리도 들어보라고 했다. 방금 운 녀석은 수컷인데, 조금 있으면 암컷이 뭐라고 화답을 한단다. 진짜 아까와는 조금 다른 새소리가 났다. 나는 암컷 소린가 하고 있는데 엄마가 “어? 이건 못 듣던 소린데, 새로 온 녀석인가 보네.”라고 하신다.


이날 저녁 난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낮 동안 눈물이 차오르지 않았던가 보다. 엄마는 오감을 총 동원해서 날 위로했다. 좋은 향기, 부드러운 맛, 멋진 경치, 신기한 소리, 잔잔한 토닥임.


사람의 감정이나 경험은 단순히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감각들의 조합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모든 감각이 동원된 엄마의 위로는 아프고 괴로운 이 시간이 어두운 고통으로만 채워지지 않도록 해주었다. 내 가슴을 토닥인 엄마의 굳은살 배긴 손은 더욱 그러하다.


고맙고 미안해서라도 한 번에 탁 떨치고 감정의 너울을 다스리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또다시 몹시 답답하다.


신기한 향받침대, 타면서 재가 동그랗게 나선형으로 구부러지는 신기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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