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독서 87일. 우리를 병들게 하는 무의미한 노력
"당신은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이 두려운 거예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떨까? '지금 아픈 사람한테 뭐라는 거야?'라며 화가 날 수도 있다. '아프다는 데 별안간 웬 두려움?' 하며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 말은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건강한 상태에서 우리는 해야 할 일과 감당할 책임을 갖게 된다. 이 중에 매우 중요한 하나가 '성장과 변화'다. 우리는 불변의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며 자아의 경계를 확장시켜 나간다. 이러한 성숙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어려운 선택과 고통스러운 결과도 따른다. 새로운 일과 사람, 관계, 환경 등에 적응해야 하고 때론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M. Scott Peck) 박사는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을 토대로 우리 내면에 건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음을 간파했다. 새로운 존재로 확대되어 가는 성숙의 과정에서 좀 더 쉬운 길을 택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이 두려워진다.
우리 정신과 의사들은 사람들이 보통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자주 경험한다. 정신치료의 주된 업무 가운데는 환자를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도달하게끔 하는 것뿐 아니라, 위로하고 위협하고 엄격하게 구는 등 모든 방법을 적절히 뒤섞어서 환자가 일단 도달한 그 지점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두려움은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그 자체만으로는 전혀 병적인 것이 아니다.
-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중에서
의사가 환자를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도달하게 하더라도, 그 상태에 머물 수 있게 하지 못하면 많은 환자들이 다시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되돌아가 버린다. 건강한 상태, 그 상태에서 주어지는 과업을 감당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캇 펙 박사는 건강한 상태일 때 느끼는 두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까지 정신과 의사의 역할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강력한 힘은 당연히 있는 것을 억지로 없애려는 무의미한 노력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발밑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일부러 떼어내려고 하지 않듯이 마음에 스며드는 두려움도 억지로 없애려 할 필요가 없다. 두려움은 실제 그림자처럼 이빨도, 손발톱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 그걸 달아주지 않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