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발목을 잡는 트라우마 - <괜찮아 사랑이야>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흉터와 같아서, 잠시 가려져 안 보일 순 있어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의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특이한 건 등장인물들이 인간의 트라우마에 대해 깊은 이해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강박증을 갖고 있는 재열(배우 조인성)은 인기 추리소설 작가로 인간의 내면 심리를 파헤쳐 글로 표현하는 것에 탁월하다.
불안증을 갖고 있는 해주(배우 공효진)는 유능한 정신과 의사로 정신의 병리적 증상에 대해 전문지식은 물론 풍부한 임상경험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이에 대해 재열은 나무에 묶지 않아도 나무를 떠나지 못하는 낙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열] (그림 보며) 사막에 유목민들은 밤에 낙탈, 이렇게 나무에 묶어두지.
[해수] ...
[재열] 근데, 아침엔 끈을 풀어. 보다시피. 그래도 낙탄 도망가지 않아. 나무에 끈이 묶인 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나간 상처를 기억하듯.
[해수] (그림만 보는, 짠한)
[재열] 과거의 트라우마가, 상처가, 현재의 우리 발목을 잡는단 얘기지. 난 화장실, 넌 불안증.
(하고, 서글프게 웃고) 가라. 니가 알다시피 내 침실은 여기거든.
[해수] (가만 그림을 보다, 구급함 놓고) 아침엔, 니가 발라. 덧 안 나게. (하고, 나가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가?
있다면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다. 없다면?
가끔 인생에 특별한 굴곡 없이 비단결처럼 살았노라 말하는 이를 볼 때가 있다.
지복을 타고나 큰 어려움 겪지 않고 무탈하게 사는 것에 늘 감사하다며 덕스러운 품성까지 내비친다.
들으니 어떠한가? 얄미운가? 부러운가?
내 생각엔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진짜 그런 삶을 살고 있거나, 아니면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거나.
몸에 지닌 소품들이 모두 갓 장만한 새것인 사람들을 보면 시간의 손길이 닿는 것에 완강히 저항하는 강박이 느껴진다.
그들이 가진 트라우마는 무엇이기에 아무 흠결 없는 새것으로만 자신을 치장해야 하는 걸까?
지우고 싶은 기억 하나 없는, 상처 입은 적 전혀 없는 무결점의 삶을 살고자 애쓴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불행한 삶을 사는 방법이 될 것이다.
불가능한 걸 끊임없이 바라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또 어딨겠는가?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상처 난 자신을 상처 없는 새것으로 바꾸려는 꿈부터 버려야 한다.
대사 인용 출처) 노희경 대본집 <괜찮아 사랑이야>, 북로그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