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자신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할 때 말문이 열린다.
아이는 왜 부모와의 대화에서 말문을 열지 않을까?
(학부모와 청소년상담사 간의 대화)
학부모: 애가 저랑은 길게 얘기하려고 들질 않아요.
상담사: 공감하면서 경청해 주면 말을 많이 하던데요.
학부모: ‘공감과 경청’ 그거 저 너무 잘 알아요.
근데 저희 애는 그런 거 전혀 안 먹혀요.
상담사: 어머님은 아이를 너무 잘 아셔서 그런 가봐요.
전 아이를 잘 몰라서요, 진심으로 궁금하거든요.
상대를 너무 잘 안다는 생각이 대화의 말문을 막기도 한다. 뭐라 말해도 듣고 싶은 대로 들을 것 같고, 말을 한다 해도 바뀔 게 없을 것 같을 때 상대는 말문을 쉽게 열지 않는다.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가도 몇 마디 끝에 말문을 닫게 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만이 아니라, 부부나 형제자매처럼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길고, 많은 경험을 함께 한 사이일수록 오히려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가 더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말문을 열기가 어렵거나 또는 쉽게 말문이 닫혀 버릴 때가 있다.
잘 안다는 생각, 모를 리가 없다는 착각이 거리낌 없이 밖으로 나오려는 말(言)을 막는 것은 아닐까? 나오려는 말(言) 입장에서는 기존에 어떻게 알고 있든, 뭐라고 생각하든,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밖으로 나오고 싶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섣불리 나왔다가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서 도로 들어가 버리는 건 아닐까?
상대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할 때 '모른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나 자신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한 마음, 호기심에 가까운 순수한 관심을 가질 때 대화의 말문은 충분히 오랫동안 열려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착각이 오히려 우리를 영원히 모르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 김종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중에서
실제 있었던 대화를 각색하기도,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타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남기도, 깨달음이 남기도, 감정이 남기도 해서 '남는 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