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대화 25. 말(言)의 틈(闖)

말의 틈새로 전해지는 소리 없는 말

by 단비

말의 메시지는 음성보다 비음성(몸짓, 표정, 시선 등)에 의해 전해지는 부분이 더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말(言)보다 틈(闖)의 역할이 더 큰 게 아닐까?


(힘든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A: 와, 뭐 그렇게 쉬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 다 있냐?

B: 덕분에 말 안 하고 듣기만 해도 돼서 오히려 편하던데.

A: 듣고만 있는 게 네 역할이 아니라고.

서로 의견 차이를 좁혀야 할 거 아냐?

B: 그래, 맞아. 그런데 끼어들질 못하겠더라.

A: 다음엔 좀 끼어들라고. 악역은 맨날 나만 하냐?

B: 난 눈빛과 표정으로 많은 말을 전했어.

그 사람 나중엔 눈치도 보고, 염치도 좀 챙기던데.


남는 생각

틈(闖)은 말(馬)이 머리를 내밀고 문을 나오는 모양을 본뜬 한자라고 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言)의 틈(闖)으로 사람의 감정이 드나드는 걸 볼 수 있다.


글을 읽을 때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라는 것처럼, 말을 할 때도 상대를 이해하려면 말의 틈을 들여다봐야 한다. 몸짓의 활기, 표정의 온기, 시선의 생기는 소리로 나온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끊임없는 말소리로 가득찬 대화는 피곤하고, 침묵으로 뚝뚝 끊기는 대화는 불편하다. 굳은 자세로 버티는 대화는 힘들고, 표정 없는 얼굴로 나누는 대화는 지루하다. 생기 잃은 시선을 주고받는 대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좋은 대화는 말의 틈새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든다. 활기를 띠는 몸짓, 온기를 품은 표정, 생기 넘치는 시선으로 주고받는 대화는 거기에 어떤 내용을 얹어도 저절로 리듬을 타며 술술 풀릴 것이다. 이런 대화는 언제라도 기꺼이 나눌 맛이 나고, 살아가는 날들에 멋을 더한다.


당신이 나누는 대화에선 말의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고 있습니까?



실제 있었던 대화를 각색하기도,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타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남기도, 깨달음이 남기도, 감정이 남기도 해서 '남는 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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