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끝에 남는 것
말끝에 가시가 돋쳐 있으면 상처가 남고, 말끝을 애매하게 흐리면 개운치 않은 뒤끝이 남는다. 매사 말끝이 너무 단호하면 정없이 느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항상 말끝을 흐리면 듣는 이가 매우 곤혹스러울 수 있다.
(매사에 말끝을 흐리는 A가 저기서 뭘 들고 올 때부터 B는 신경이 곧두선다.)
A: 이거 좀...
B: 뭐요?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A: 아, 이거 보시고 좀...
B: 이거 보고 뭘 어떻게 하면 돼죠?
A: 그렇게 급한 건 아닌데요,
B: 그럼 다음 주에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A: 이번 주 내로 해야는데요,
B: 그럼 지금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A: 지금은 저도 좀...
말끝을 흐리는 게 습관이라면 누구보다 본인이 일상생활에서 매우 불편할 것이다. 만약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편을 느낀다는 걸 모르거나, 알아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다른 사람이 왜 불편한지 모르겠다면, 이를 어찌해야 할까?
상대가 말끝을 흐리면 듣는 사람은 그 뜻을 추론해야 한다. 그리고 알아서 뒷 마무리를 해야 한다. 이런 경우 말끝을 흐리는 사람이 상대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이렇다. '내가 잘 말하지 못해도 당신이 스스로 잘 알아들어 주세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라고 말한 건 아니니까, 당신이 어떻게 알아듣든, 그건 내 책임은 아녜요.' 이런 메시지를 남길 생각이 전혀 아니라면 말끝을 스스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말끝을 흐릴 수도 있다.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배려가 되려면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상대가 지지 않도록 하는 것까지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배려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선택권을 양보한 게 아니라 책임을 떠넘긴 것이 된다.
말끝을 흐리든, 아무 말 하지 않든 서로 이심전심 잘 통하는 사이라면 이런 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든 그 대화의 끝에 따뜻한 온기가 남는다면 상대의 말끝이 흐렸는지 또렷했는지는 기억에 남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말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문제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있었던 대화를 각색하기도,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내 안의 타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합니다. 질문이 남기도, 깨달음이 남기도, 감정이 남기도 해서 '남는 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