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 아빠의 아빠
Episode #3 : 아빠의 아빠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감성 육아 일기 ‘아빠라서 미안해‘
Episode #3 : 아빠의 아빠
아내와 나의 직장 문제로 분가를 하기 전까지 3년 동안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이삿날이 결정되고 본가에서의 마지막 날, 딸 아이는 준비라도 한 듯 부모님 앞에서 뒤집기를 선보여 드리고 그렇게 우리의 분가살이는 시작되었다.
자주 찾아 뵙겠다는 약속은 생각처럼 잘 지켜지지 않았고, 부모님 두 분 다 스마트 폰에 익숙치 않으신 탓에 난 가뭄에 콩나듯 아이와 함께 본가에 들러 잠깐씩 얼굴을 보여 드리는게 전부였다. 그렇게 적은 만남중에 한 번, 가족식사를 위해 뒷 자석에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조수석에 아버지를 모셨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귀가 어두워지신 노년의 아버지는 뒷 자석에서 들려오는 딸의 옹알이를 듣지 못하신 채 앉아 계셨고, 난 몇 번의 통역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있던 터였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등을 돌리시고는 딸에게 ‘까꿍‘하며 장난을 거셨고, 딸은 행복한 표정으로 연신 ‘꺄르르’ 웃어댔다. 그 때의 아버지의 그 미소, 딸의 웃음소리가 난 참 생경하고 강렬했다.
나의 아버지. 올해로 팔순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어린시절 6.25 전쟁의 기억을 안고 계신 ‘옛날사람‘이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시며 치열하게 살아오신 그 세대의 수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하셨 듯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던 아버지 역시 가정에 서툴고 투박하셨다. 최근 건강이 안좋아지셔서 일을 그만두게 되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3평 남짓한 시장 골목 고추 방앗간을 일구어 우리 4남매를 키워내셨다. 몇 해 전인가 우연히 잡아보게 된 아버지의 손에서 유독 짧아진 검지 손가락을 보게 된 적이 있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 이유를 묻자 별거 아니라는 듯 하루에 수 백번씩 비닐봉투를 떼어내고 매듭을 묶어대느라 그랬노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손가락이 몽당연필처럼 작아질 만큼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당신께 가정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어쩌면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버지와 난 여지껏 한번도 ‘아빠‘라고 불러보지 못한 그 거리만큼 점점 어려워져만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차를 탈 때면 뒷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아이가 보채지 않게 난 항상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주곤 하는데, 이번엔 아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 옆에는 누가 앉아?” / “응? 희진이 옆에는 엄마가 앉지.”
“그럼 아빠 옆에는 누가 앉아?” / “아빠 옆에? 아빠 옆에는 누가 앉을까?” / “중림동 할아버지가 앉잖아.”
아이는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조수석을 가리키며 할아버지 자리라고 했고, 할아버지와 까꿍 놀이를 했던 그 날의 기억도 신이나서 꺼내 놓았다. 난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넘어갔는데, 그 후로도 아이는 차를 탈 때마다 틈만나면 할아버지 자리에 대해 물었고, 할아버지를 보러 가려면 파란 버스를 타야 하는지, 노란 버스를 타야 하는지 까지 묻기 시작했다. 참 신기했다. 핏줄이 당긴다는게 이런 것일까. 자연스레 아이의 보고픔을 이유 삼아 나의 본가 나들이는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방은 항상 어둡고 차가웠다. 전기요금, 보일러 가스비 아깝다며 불이며 난방을 꺼놓으신 탓도 있겠지만 유독 생기없고 차가운 방안의 공기가 왠지 그늘을 더 드리우는 것만 같았다. 원체 깔끔하신 성격 탓에 당신만의 규칙대로 방 안의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어야 했고 그런 이유로 아버지는 방안에 누군가를 들이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으셨다. 게다가 귀가 잘 안들리시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의사소통이 안되는게 힘드셨는지 방문을 닫고 계시는 날들이 점점 더 늘어갔다. 그래서 였을까. 난 항상 아버지 방 문을 두드릴 때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아버지 앞에 요 작은 녀석이 나타났다. 아버지의 그런 성격을 알 리가 없는 딸 아이는 서스럼 없이 아버지의 방에 들어섰고, 살을 부대꼈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아버지는 그런 손녀의 살가움이 좋으셨는지 기꺼이 당신의 곁을 내어주셨다.
문득, 초등학생 즈음으로 기억되는 어릴적에 아버지의 흰 머리를 뽑아 드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근엄하고 어려웠던 존재인 아버지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만질 수 있었던 그 때의 두근거리면서도 왠지 모르게 따뜻했던 기억. 그렇게 어렵기만 했던 당신께 내 아이는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자연스레 다가가고 있었다. 단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어리광인지, 누군가가 아프다는 말에 유독 신경을 쓰는 나름의 연민인지, 아니면 정말 핏줄은 당기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여지껏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아버지의 저 환한 미소를 꺼내어 준 사람이 바로 나의 딸이라는 것. 아니 어쩌면 내가 닫아두려 했던 어렴풋한 기억속의 따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꺼내어 준 사람이 바로 나의 딸이라는 것. 그리고 내겐 너무 어려웠던 이 모든 일들을 대신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바로 나의 딸이라는 것이 한없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누구야’라는 딸의 질문에 ‘아빠의 아빠’라고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지금껏 한 번도 살갑게 불러보지 못한 나의 ‘아빠‘에게 나를 대신해 모자람을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있는 딸에게 고맙다고 수 백번 말해주고 싶다. 더불어 딸의 기억속에서 할아버지가 더 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아빠의 아빠’로 오래도록 남겨지길 바래본다. 아버지, 아빠. 건강하세요..^^
#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띵곡 : 강산에 – 할아버지와 수박 (1993, 1집 …라구요)
* 어릴 적 제 기억속의 할아버지는 느릿느릿한 걸음에 항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고 장난꾸러기 손주에게 말랑말랑한 귓 볼을 기꺼이 내어주셨던 부드럽고 포근한 분이셨습니다. 강산에씨가 노래한 ‘할아버지와 수박’속에 그려진 할아버지도 참 따뜻한 분이셨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울 할아버지 울 할아버지 보고 싶어
울 할아버지 울 할아버지 나의 친구
울 할아버지 울 할아버지 그리고 파란 수박
코가 찡하도록 생각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