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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Jan 08. 2019

조제의 감성 육아일기 '아빠라서 미안해'

Ep #4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감성 육아일기

'아빠라서 미안해'


Episode # 4 :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요즘 들어 새삼 시간이 참 쏜살같이 흐른다. 육아를 하다보니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어제인 듯 싶은 일들이 몇 주, 몇 달전 일들인 경우가 허다하다.

올 해 9월부터 만 6세 미만의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아동수당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는 소식을 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9월이 되었다. 그리고 정작 문제는 오늘에서야 그 신청이 안되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수 차례 우편으로, 문자로 신청여부를 재확인해달라 연락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청을 오늘 내일로 미루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그러한 사정으로 나는 집 앞 주민복지센터를 찾아갔다. 다행히 9월 30일까지가 최종 신청 마감일이었고, 난 센터 직원분들의 정중한 조언과 따가운 눈총속에 신청을 마칠 수 있었다. 총 10만원. 앞으로 0세 기준으로 최대 72개월간, 그러니까 내 딸이 만 6세가 되는 2021년 12월까지 매달 지급 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선, 돈을 준다하니 반가웠다. 가뜩이나 부족한 살림에 이따금씩 딸 아이 손에 쥐어주는 쌈짓 돈마저 반가울 터인데 나라에서 이렇게 지원을 해준다니 감사하기 그지 없었다.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좋아하는 돼지갈비와 보리굴비를 2주에 한 번은 사주겠구나, 아니면 가도가도 질리지 않는다는 뽀로로 파크를 좀 더 자주 데려갈 수 있겠구나. 그렇게 잠깐동안 이러저리 생각을 하고 났더니 갑작스레 헛헛한 마음이 밀려왔다. 우선은 벌써부터 돈 쓸 생각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던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거니와 이 얼마 안되는 금액이 우리의 현실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 아닌 의심이 들기도 했다.

당장 나의 삶을 살펴보게 된다. 유치원 교사인 아내의 월급은 그 직업의 숭고함(?)과 업무량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렇다. 그리고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하는 나의 직업은 마치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처럼 하루하루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 내야하고 그 마저도 외면받기 일쑤이며 자연스레 수입은 변덕스럽다. 그 퍽퍽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대출금은 속절없이 빠져나가고 생활비는 줄여야 할 곳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작아져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나는 어릴적부터 절약하는 삶에 익숙해 있었고, 가족들 모두 크게 아픈 사람없이 지내고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다 싶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마트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집어들다 가격을 확인하고는 슬쩍 내려놓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가 장난감가게에서 한 개에 2만원씩 하는 브라키오 사우르스 공룡 피규어를 집어 들 때마다 바로 옆 천원짜리 뽑기 기계안 조약한 공룡들로 서둘러 아이를 이끄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어린이집 등하교길 주차장에 가득한 고급차들을 피해 저 먼 구석 한 켠으로 오래된 내 소형차를 멈춰 세우는 나를 보게된다. 괜찮은 줄 알았던 일상 속 많은 모습속에서 조금은 작아져 있는 나를 볼때마다 서글픔과 왠지 모를 미안함과 마주하게 된다. 왜 혼자일 땐 괜찮았던 많은 것들이 아빠라는 이름을 달고나면 결국에는 항상 미안함으로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롭다면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도 자주 다니며 더 많은 곳을 보여줄 수도 있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떡 하니 몇 십 만원짜리 전동차를 사 줄 수도 있을 것이고, 내 낡은 자동차에게 안녕을 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살인적인 더위에 전기세 걱정없이 마음껏 에어컨을 틀고 살 수 있는 환경, 유치원 교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아내가 조금 더 교사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아빠가 육아휴직을 마음껏 쓰고도 삶이 보장되는 그런 환경들을 난 꿈꾼다. 부자아빠를 갖는게 아이들의 꿈이 되는 세상 말고, 가난한 아빠들이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나는 꿈꾼다.

<딸이 좋아하는 파스타를 맘껏 사줄 수 있는 아빠이기를>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아빠일까. 문득, 어떤 연예인이 TV에 나와 네 살 이전에는 기억을 못하니 잘해 줄 필요가 없다고 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그래서 어쩌면 내 딸은 적어도 지금은 가난한 아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 할테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내 딸에게 난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았고 자신을 많이 사랑해 준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 그게 아마도 세상의 많은 아빠들의 바람이 아닐까. 아동수당 10만원이 우리의 삶을 바꿔주진 않겠지만 육아하는 아빠, 엄마들에게 조금의 숨 쉴 곳이 되어 주길,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해 주길 바라고 또 바래본다.

# 싱어송라이터 조제의 띵곡 : Ben Folds – Still Fighting it (2001, Rockin’ Suburbs)

1990년대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피아노 록 뮤지션 중 하나인 벤 폴즈는 2001년 아들 루이스위해 만든 곡 ‘Still fighting it’발표습니다. 우리에게는 ‘무한도전‘의 삽입곡으로 많이 알려져 친숙해진 곡이죠. 어린 아들에게 어른이 되는 건 아픈 일이지만 우리는 자라고 여전히 세상과 싸우고 있다고 얘기해주는 가사에서 저는 부모가 아이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We’re still fighting it
(우린 여전히 싸우고 있단다)

And you’re so much like me
(그리고 넌 나를 많이 닮았구나)
 I’m sorry (미안하다)

마지막은 미안하다는 말이네요. 부모는 자식에게 늘 미안해지는 존재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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