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은 아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by 김형준


난 말이 참 많은 아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말이 많은 게 ‘흠’ ‘가벼움’이라고 강요되어 왔던 한국사회에서 난 그렇게도 말이 많은 아이였다.



어렸을 때 “물에 빠져도 입은 뜨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 그게 상처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공부를 잘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실력으로 보여주리라.” 마음을 먹고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성적이 슬슬 드러나던 중고등학교에 들어서는 그런 소리를 듣는 경우가 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3학년 때 가장 말이 많았던 시기 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남녀합반이 되었고, 사춘기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발표하면서 사람들 웃기고 그런 게 너무 좋았다. 물론 대부분 선생님은 그걸 싫어했지만 말이다. 담임이었던 국어 선생님은 심지어 내가 하도 나서는 걸 좋아하니까 매 국어 시간마다 나에게 3분 스피치를 하는 시간을 줬다. 수업시간에 떠들지 말고 시간을 따로 줄 테니 얘기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주제를 정해서 매시간마다 앞에 나가 말도 안 되는 스피치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이 인생의 스승이고, 말이 많은 것을 긍정적으로 품어주었던 참 스승이었다. 지금도 그분께 참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앞에 나가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대학 가서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 신방과 수업에서 스피치 수업이 있었고 매시간 글을 써와서 학생들 앞에서 안 보고 발표하고 코멘트를 받던 수업이었다. 평소에 막 하던 말들을 글로 꼭꼭 눌러 담아 말로 시간 안에 간결하게 전달하는 훈련이었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심지어 영어로 하는 스피치 수업은 다 골라 들었다. 내가 영어로 스피치를 쓰고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그걸 비디오로 찍던 수업이었는데 얼마 전에 외장하드에 저장된 예전의 내 스피치를 보면서 이불 킥을 뻥뻥 차기도 했다. 영어는 못하는데 자신감만 가득한 코리안 발음을 막 던지고 있더라. 그런 수업들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중에 티브이에 아나운서로, 기자로, 피디로 나와서 여전히 “말”하고 있더라. 말을 하길 좋아하던 나는 그렇게 교육을 통해 말을 잘하는 법을 조금씩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말하길 좋아하고, 말로 사람들을 웃기길 좋아하던 나도 군대에 가고, 남성 위주의 직장에 들어가면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남자 xx가 실실 쪼개고 다닌다고, 말이 많다고, 엄청 구박을 들었었다. 다 커서도 그런 소리를 듣고 살았다.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로서 사람을 설득하고, 웃기는 게 좋았던 나. 개그맨이 될 만큼 웃기지는 못했고, 세일즈엔 소질이 있으나 남한테 피해 주는 게 싫어서 하지 못했고, 지금은 커뮤니케이션이란 거창한 이름을 달고 밥벌이를 하고 있다. 물론 내가 나서서 말을 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 (말, 글, 생각)을 나눌 장을 마련하고 그곳에 주제를 던지고 소통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인생이 참 그렇다. 말이 많다고 혼나고, 지적받고, 눈치 봐야 했던 어린 시절인데. 한국을 나오고 나서 말이 많아서, 농담을 많이 해서, 오지랖이 넓어서 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더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 나에게 조용한 아시아인 남자의 이미지는 견디기 어려운 스테레오 타입이었고, 미국에서도, 네팔에서도, 가나에서도, 지금 말레이시아에서도 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농담을 던지고,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한다.


그게 내가 미국에서 졸업 연설을 하게 만들어 주었고, 지금의 잡을 주었고, 내 잡을 더 잘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말하고, 질문하고, 친해지려고 하고,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이 멀리까지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말을 잘하기보다 말을 하기를 더 좋아하는 말 중독자의 비겁한 변명 혹은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말이 많다고 하는 나도 "글로벌 무대"에 나오니 어찌나 말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따라잡기 바쁘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묻히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이다. 좋은 생각이 있고, 질문이 있으면 말로 전달해야 한다. 은근과 끈기로만 버티기엔 국제사회의 룰은 냉정하다.



이안이가 또래 남아들보다 말이 상대적으로 빠른 편이다. 이안이가 나처럼 말이 많을지는,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른 감이 있다. 하나 이안이가 그렇다 하더라도 이안이가 커가는 과정에서는 말을 하길 좋아하는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고, 더 잘할 수 있게 이끌어 줄 수 있는 교육과 서포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처럼 말이 많아서 들었던 핀잔과 눈치를 안 받고 말이다.


말은 생각이고 생각을 말로 나누면 공감이 되고 공감이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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