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밖에 안되었는데....
1.
난 하지 말아야지. 애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더 중요해. 한가하게 그걸 듣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니. 애들도 학교 닫아서 집에 있고. 나는 바쁘다. 이런 핑계로 클럽하우스 가까이에도 가지도 않았다. 페북에 올라오는 클럽하우스(클하) 프로필들을 보면서 궁금했지만 왼손으로 오른손을 꼬집으며 참았다.
2.
그러다가 그래 앱이 어떻게 생겼는지 레이아웃만 보자. 초대장은 요구하지도 않았고 아이디만 확보해놓자는 심정으로 다운로드하여 이름만 일단 저장. 허나 초대장을 받아서 가입하는 방법 이외에 내부에 지인이 있으면 어떤 알고리즘에 따라 초대를 수락해주기도 한다....라는 걸 지인이 덜컥 수락해준 후 알게 되었다.
3.
그렇게 문고리를 잡고 딸려 들어간 클하. 2일째 클하를 헤매며 느낀 간단한 소회를 남겨본다. 아마 여러분들도 조만간 클하에서 같이 놀게 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오기에. 글을 시작하기 앞서 나에게 초대장은 없다. 2장 있는 초대장 중 1장은 안드로이드를 쓰는 친구에게 낭비(?) 하기도 했다. 참고로 아이폰만 된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아이패드 있으신 분은 그걸로 됩니다. 아이폰 중고 가격이 이것 때문에 오른다는 게 단지 농담으로만은 들리지 않는 상황.
4.
클하를 쉽게 설명하면 여러 개의 강연/수다들이 벌어지는 엄청 큰 콘퍼런스에 이 방 저 방을 순식간에 옮겨 다니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동냥을 할 수 도 있고 질문도 할 수 있다. 모든 게 원초적인 오디오로 운영이 된다. 가장 기본적인 모드로 가장 창의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곳. 클럽하우스다.
5.
때마침 휴가와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어디 놀러 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락다운 상황 속에서 클하는 세상과 소통하는 워키토키 같았다. 특히나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에 목말라하는 나에게 한국 분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었다. 게다가 업계에서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분들의 이야기를 정장 입고 콘퍼런스 안 가도 집에서 설거지하면서도 들을 수도 있고 질문할 수 있다는 게 신세계였다.
6.
일단 들어가면 우리에게 보이는 방은 제한적이다. 내가 누구를 팔로우하냐에 따라서 보이는 방이 알고리즘에 따라 보이고. 관련 검색어를 찾아 방에 가는 기능은 아직 없다. 방에 들어가면 방장이 모더레이터 역할을 하고, 원하면 몇 명과 그 기능을 나눠서 진행한다. 그다음엔 스피커. 말하고 싶은 사람. 마이크 버튼을 누르고 바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 마지막은 리스너들이 있다. 리스너에서 스피커로 가려면 손을 올리면 된다. 폰을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실수로 손을 올려서 스피커로 올라갔다가 부랴부랴 다시 리스너로 내려온 경험. 나만했을지도?
7.
한국 초기 유저들의 프로파일이 재미있다. 첫날에는 스타트업, 투자, 방송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위주의 주제와 방들이 보였는데 2일째로 넘어가며 성대모사 방, 아무 말 대잔치 같이 가벼운 주제 방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 관심사들이 주식 투자지만 너무 그런 주제만 있는 것 같아서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친구들과 고민해보기도 했다. 어젯밤에는 구x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의 인사설명회(?)같은 세션도 있어서 아 이렇게 스피커 위주의 정보전달의 방도 가능하겠단 생각을 했다.
8.
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세 가지 정도의 소통 모드가 있더라. 첫째는 스피커 위주의 정보전달 방. 약간의 정보적 권위를 가진 스피커들 몇 명이서 경험과 인사이트를 나누며 질문자 받아서 질문에 답하는 스타일. 좋은 인사이트를 편하게 얻을 수 있고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지만 청중의 참여가 질문으로만 제한되는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이 종종 있다. 둘째는 모더레이터는 대부분 듣고 스피커들을 하고 싶은 사람들 다 불러서 여러 명의 스피커 (10명 미만)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질문보다는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누며 동등하게 교류하는 곳. 민주적이 만 스피커가 많아지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수도 (깊이가 낮아지는) 있고 코디하기도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아주 가벼운 주제로 많은 스피커들을 모아서 다들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방이 있다. 성대모사 방도 그렇고, 래퍼들이 와서 하는 방도 그렇고, 클하에 관한 다양한 경험들 나누는 방도 그렇다. 누구나 와서 할 얘기가 있거나 들으며 재미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깊이나 전문성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9.
결국에는 개인의 취향이고 앞으로 클럽하우스 방들은 더 다양 해질 것이다. 빠르게 증가하는 유저들이 만들어낼 주제의 다양성만 보장된다면 클하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오디오 베이스가 레트로 감성에 소구 해서 의외로 90년 대생들도 많이 보인다. 사실 오디오는 70-80년대생이 더 익숙한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0.
오늘 오후에는 급기야 서버가 마비가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아마도 서버에 처리해야 할 데이터들이 너무 많지 않았을까. 초대 베이스로 이루어지지만 1:2로 늘어나는 가입자는 코로나 전파속도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 그것도 전 세계 적으로 말이다. 난 말레이시아 방, 나이지리아 방, 미국 방, 일본방, 중국어 방 (중국은 며칠 전에 서버가 막혔다고 한다)들이 막 보이는 게 확실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11.
클하 창업자가 주최하는 오리엔테이션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몇천 명이 모여서 클하에 대해 궁금한 점 개선점을 매주 수요일에 듣는다고 한다. 아직 초기라서 서비스 개선 의지가 충만하고. 심지어 안드로이드 개발자 (she라고 해서 역시 미국! 했다)를 얼마 전에 리쿠르팅했다며 곧 준비한다는 말도 했다. 프라이버시에 관한 질문들도 충분히 공감하는 모습도 보였다. 중국 정부가 며칠 전에 클하를 막았다는 얘기도 하며 이 플랫폼이 가져오는 표현의 다양성에 관한 부분도 잠시 언급했다. 초기팀이 10명 정도가 만든 베타 서비스가 이거라면 이 회사가 크면 얼마나 많은 기능을 제공할까 싶기도 하다. 동시에 채팅창을 만들자는 제안에 창업자는 "가장 심플한 오디오 베이스 모드를 바꿀 생각은 없다."라는 말에서 어찌 보면 기능이 많지 않은 지금이 오디오에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12.
클하에 대한 경험은 너무 좋고 소통의 쾌감도 있지만, 너무 빠지는 단점이 있다. 꺼도 귀에서 클하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얼마나 경험의 강도가 강한지 알 수 있을지도. 물론 코로나로 대면이 줄어든 지금 소통에 대한 욕구가 최고기에 더 흥행하는 걸지도 모르겠고. 우리가 다시 대면 사회로 간다고 해도 오디오로 연결되는 이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나도 시작해볼까 생각한다면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나중에 네 탓하지 말아라." 첫 며칠은 클하에 시간과 관심을 엄청 쏟을 확률이 다분하기에. 모쪼록 휴가에 즐거운 경험과 소통을 하는 중이다.
이미 클하에 계신 분들은 제 이름 찾아서 추가해서 맞팔해요. See you in the Clubhouse!